<1부> “쨘, 풀하우스다.” “웃, 이 새끼. 아닌 척 하더니―.” “포커 페이스란 말이 괜히 있는 줄 아냐?” “겨우 그거 갖고 잘난 척 하긴. 스트레이트 플래쉬다!” “이씹―. 또 너냐.” “너 속임수 썼지! 안 그럼 어떻게 네 번 연속으로 이겨!” “지랄한다. 꼬우면 꼽다고 말할 것이지. 싸나이가 인신공격이냐.” “얼씨구. 그래, 말 한 번 잘 했다. 요즘 싸나이들은 친구가 작업 거는 여자 가로채는 게, 그게 싸나인 모양이지?” “아직도 그거 갖고 꽁해있냐? 기집애같이 삐지긴. 알았다, 알았어. 내가 지현이한테 말해서 여자 세 명 조달할 테니까 그만 화 풀어라.” “뭣? 그거 진짜냐?” “남아일언 중천금.” 내 친구 놈들 중 애인이 있는 건 헌록이 새끼밖에 없다. 나머지 세 명, 나 홍병권이, 배극인이, 이완배 이렇게는 옆구리가 시린 서글픈 솔로. 네 놈 중 유일하게 애인이 있는 관계로 세 놈의 부러움과 시기를 받던 헌록이 새끼의 제안에 모두 흥분한 상태가 되 버려 더 이상 포카 패는 돌 아가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열 판 남짓 치고 나자 슬슬 엉덩이가 들썩거리던 참이라 자리에서 일어나 한 구석에 처박아 논 책가방을 챙겨 들었다. “나 먼저 갈란다.” “벌써 가게? 너네 부모님 오늘도 안 들어오신다며.” “안 들어오셔도 집에 들어왔는지 안 들어왔는지 꼬박꼬박 체크하기 때문에 일찍 들어가 봐야 돼. 너네나 많이 쳐라.” “그래. 내일 지현이네랑 스케줄 잡아서 미팅자리 만들 거니까 시간 비워둬.” “오케―.” 기집애들 따위, 별로 땡기지도 않았지만 건성으로 대답하고 뒷문 쪽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뒤에서는 지현이네 친구들이 이쁘냐, 지현이보다 못 생긴 애가 나오면 다구리 한다느니 하는 잡담들이 오가고 있었다. 열 일곱 살, 보통은 게임이나 여자친구에 신경 쓰고, 친구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이. 나라고 뭐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 줄 아나.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부모님 때문에 사람 사는 것 같지도 않은 집 따위,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나마 한 살 위의 형이라도 없으면 예전에 가출해 버렸을지도―. 막 그런 생각을 하며 문고리를 잡는 순간, 바깥쪽에서 도어가 돌아가더니 곧이어 문 사이로 담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별명 에이즈. 한 번 걸리면 죽는다고. 선생들 중에서도 아주 악질로 소문난 놈이라 웬만큼 논다 하는 애들도 에이즈 앞에서는 설설 기고 있는데. 씨팔―하고 욕설을 속으로만 내뱉으며 잽싸게 뒤로 시선을 주었다. 아직도 녀석들은 카드들을 책상에 펼쳐 논 채로 여자의 육체에 대한 음담패설을 주고받고 있는 중이었다. “선생님, 늦으셨는데 퇴근 안 하셨어요.” 모타리도 작은 놈이 성질은 더러워서. 너만 성질 있냐? 선생만 아니면 옛날에 엎어버렸을 거다. 선생의 앞을 가로막으며 억지 웃음을 지어보였다. “뭐야, 새끼야. 언제부터 친한 척이야. 비켜―.” 이 새끼 저 새끼 하지마라. 내가 니 새끼야? 씨발. 공부 못하면 짐승 새끼고 공부 잘 하면 사람 새끼냐? 니가 가르치는 인간다움이란 고작 그런 거냐? 뒤에서 녀석들이 황급히 포카판을 치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꽤나 좋은 힘으로 내 가슴팍을 쳐낸 담임은 모든 걸 봐버린 후였다. “이 새끼들, 너네 지금 뭔 짓하고 있었어?” 포카 카드를 여러 장 쥔 자세로 선생이 다가오자 치우지도 내놓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일어난 완배 새끼에게 담임이 다가가자마자 기싸대기를 날려버렸다. 짜악―――!!! 힘이 좋은 건지, 텅 빈 교실이라 소리가 잘 울려서 그런 건지 녀석의 얼굴은 엄청난 소리와 함께 옆으로 확 돌아가 버렸다. “문헌록이, 배극인이, 이완배. 니놈들일 줄 알았다. 너네가 하는 짓이 다 그렇지.” 그대로 녀석들의 뺨을 갈겨버린 선생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홍병권이 넌 니네 부모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들고 있던 교무수첩인지 폭행수첩인지를 세로로 세워 내 머리통을 내리찍어 버린다. 머릿속이 찡할 정도의 통증인데도 픽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문제아라고 전교적으로 낙인찍혀도 유명인 자식이란 이유로 난 직접 손대지 않고 그냥 책으로 때리는구만. 하긴, 나 때리면 우리 엄마한테 받아먹은 엘에이 갈비, 그거 도로 토해내야 하겠으니 곤란도 하겠지. 우리들, 신성하다는 학교에서 포카 칠 정도로 막 나가는 놈들이라는 거, 우리 스스로도 잘 아는 사람인데. 그래도 적어도 선생보다는 우리가 낫지 싶어. 우린 적어도 뒷다마는 안 까잖아. 난 위선 떠는 인간이 세상에서 제일 싫거든. 얼굴만 봐도 아주 구역질이 나서 죽을 것 같아. “어쭈? 엇다대고 눈 부라려? 안 깔아?” 눈 똑바로 뜨고 있는 내 머리통을 교무 수첩으로 휘갈긴 선생이 또다시 침을 튀겨댄다. 씨발. 빨리 하고 끝내. 마음에도 없는 연설, 계속 하단 억지로 참고 있는 목구멍에서 점심 때 먹은 거 진짜로 다 올라온다니까. “아주 구제불능이야, 이 새끼들. 나도 어디 너네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그렇게 학교 다니기 싫으면 자퇴서 내고 꺼져버려. 반평균만 깎아먹는 새끼들. 너네들만 없으면 내가 두 다리 쭉 뻗고 자겠다.” 학교 명예 차원에서 퇴학은 시킬 수 없으니 알아서 자퇴서 내란 소리지. 그깟 학교의 명예.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네 젊은 인생이 무너지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거야? “너희 세 놈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의자 들고 서 있어. 서서 자퇴할 건지 말 건지 잘 생각해 봐. 부모님 때문에 다니기 싫은 학교 억지로 다닐 생각하지 말고. 취미 없음 일찌감치 치우고 장사를 하든가 그런 거 생각해 봐. 홍병권이 넌 나 따라오고.” 교무실로 따로 불러 상담을 하시겠다? 저 놈들과 난 다르다 이거겠지. 저 세 놈들은 어떻게든 갈궈서 자퇴서 받아내고 나만은 다독이고 얼러서 정신 차리게 하겠다고. 다 좋아. 다 좋은데. 선생, 진짜 병신이야? 이 내가, 유명인의 자식이라고 서민 집 새끼들하고 차별하는 거 뻔히 아는 내가, 선생이 얼른다고 말 들을 정도로 순진해 보여? 비죽이 웃음이 비집고 나왔지만 묵묵히 선생을 따라 교무실로 향했다. “…….” “…….” 하교 시간이 한참 지나있기 때문인지 텅 비어있는 교무실 구석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담배를 빼어문다. 교무 수첩을 신경질적으로 책상위에 던져버리고 뭐 씹은 표정으로 말없이 담배만 뻑뻑 피워대는 모습을 보자 마음 한 켠에서 은근슬쩍 걱정이 고개를 든다. 기분이 디게 안 좋은 모양 이네. 뭔 지랄을 또 떨려고 개폼 다 잡는 건지. 앞에 사람 세워놓고 앉으란 소리도 안 하지, 그렇다고 뭐라고 얘길 하기를 하나.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홍병권.” 할 말 없으면 집에 가겠다고 말할 참에 담임이 피우던 담배를 눌러 끄고 이름을 불렀다. “대답 안 해?” “……예.” “너 요즘 왜 이래, 임마. 뒤늦게 사춘기냐.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중학교 때 다 끝낸다드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성실하던 놈이 몇 달 새 갑자기 삐딱해진 이유가 뭐냐. 집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있으면……니가 해결해 줄래? 사극이니 트렌디 드라마니 하는 것들 찍느라 한 달씩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부모란 것들 잡아들일 수 있어? “유명 연예인 부모님에, 품행방정한 형에, 집이 없어, 돈이 없어. 뭐가 문제냐, 복에 겨운 놈아. 내가 너 같았음 전교 일등을 하고도 남았겠다.” “…….” 조금씩 열을 받아가는 건지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저 혼자만 피지 말고 나도 좀 나눠주지. 아까부터 서 있던 데다 잔소리까지 따블로 들으니 스트레스가 쌓여서 나도 한 대 빨고 싶은 맘이 간절한데. “이번 시험 성적도 완전 개차반이야. 들어올 때 성적 기억하냐?” 십등이었던가, 기억도 잘 안 나는데. “너네 어머니, 그 바쁜 와중에도 여기까지 오셔서 잘 좀 부탁한다고 인사까지 하고 가셨다. 넌 미안하지도 않아? 자식 된 도리로써 최소한 먹칠은 안 해야지.” “선생님, 죄송한데.” 횡설수설 지껄이는 말, 더 이상 듣기 싫어 중간에 말을 잘랐다. “과외가 있어서 가봐야겠는데요.” 과외는 무슨. 학교 공부도 안 하는 놈이 잘도 하겠다. 있는 거 돈밖에 없는 집안이라서 서울대 다닌다는 안경잽이 하나 들여놨길래 적당히 약 올리고 겁을 줘서 쫓아버렸다. 한 다섯 명 정도 바뀌었을까. 이젠 포기한 건지 학원 다니란 소리도 안 한다. “새끼가 어른 말씀하시는데 말 끊고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공부한다는 소리에 기분은 좋은 건지 장초를 눌러 끄고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는다. “방황, 적당히 하고 정신 차려서 공부해야지. 그래야 좋은 학교도 가고 너 원하는 일도 할 수 있는 거야. 너도 너네 형 닮아서 머린 좋을 거다.” “형 얘기 하지 마십쇼. 형은 형이고 저는 접니다.” 씨발―. 안 그래도 더러웠던 기분이 형 얘기가 나오자 다시 더러워지려 한다. “알았어, 새끼야.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가 봐. 위에 있는 세 놈한테 반성 다 했으면 집에 가라 그러고.” “……계십쇼.” 교무실 문을 닫고 나오며 침을 탁 뱉었다. “씨발.” “왜 또 욕이냐. 아무데나 침이나 뱉고. 담임한테 한 소리 들었냐.” “―――!!!” 예상치 못한 데서 목소리가 들려 순간적으로 혀를 깨물 뻔했다. 놀래서 고개를 들자 나와는 다른 단정한 블레이저에 가방을 멘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이게 누구야. 학생회장 홍병주 씨.” “비꼬지 마라.” 니 얼굴만 보면 저절로 꼬인 말이 나가는 걸 어쩌라고. “오늘은 보충도 없는데 이 시간에 학교에서 뭐하냐.” “알 것 없잖아. 니 할 일이나 잘 하셔.” “말 좀 곱게 못 해? 같이 가자. 나도 학생회 일 막 끝나서.” 내게 바싹 몸을 붙여오길래 반사적으로 팔을 확 쳐내고는 멀찍이 떨어졌다. “말했잖아. 니 할 일이나 잘 하라고. 나한테 관심 꺼, 학생회장 나리.” 선생, 착하던 놈이 갑자기 왜 이러냐고 물었지. 내가 왜 이러냐고. 근데 당사자인 나도 잘 몰라. 내가 왜 동성에다 근친인 형을 좋아하는 건지. 왜 형만 보면 미쳐버릴 것 같은지. 씨발―. “흐읏…….” 포르노 비디오의 여자처럼 달뜬 신음을 뱉으며 얼굴을 붉히는 형의 모습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도저히 남자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색스러운 그 모습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형, 날 봐.” 남자와의 섹스 따윈 전혀 모른다. 난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 채 형의 은밀한 내부로 들어가고 있었다. “병권……아……하앗…….” “으…….” 정말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단순히 좋았다든가 쾌감이 느껴진다 따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만큼 형의 내부는 정말로 날 미치게 만들었다. 너무나도 좁고 뜨겁고 값비싼 침대처럼 푹신하며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잔뜩 흥분한 내 것을 더욱 깊숙이 끌어들였다. “하아……하앗…….” 저 따위의 말을 할 리가 있냐. 오버하고 있네. 그러니까 싸구려 삼류란 거야. 그런 식으로 포르고 테잎 속의 남녀를 비웃어댄 나였지만 형의 내부에서 서투르게 몸을 움직이며 나 역시도 그런 신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혀……형……. 형, 사랑해. 정말 사랑해.” 브레이크를 잡을 수 없는 거친 열정으로 형을 몰아쳐 몸속에 정액을 내뿜으며 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홍병권―! 사랑하는 동생아!” 뭐? 형이 날 사랑해? 몽롱한 의식 사이에서 갑자기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보인 건 골프 셔츠를 단정히 입고서 내 침대 위에서 빤히 날 내려다보고 있는 형의 모습. Shit―――!!! 순간적으로 비명이 튀어나갈 뻔한 목구멍을 간신히 막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지개도 켜지 않고 갑자기 일으킨 몸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애써 무관심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피곤한 것 같은 표정이라 되도록이면 깨우기 싫은데 그래도 너무한 것 아니냐. 시간이 벌써 열 두 시다. 일어나서 밥 먹어.” “뭐야, 내 방에 누가 멋대로 들어오래.” “매정한 놈. 형이 동생 방에도 좀 못 들어가냐? 누가 들으면 친형제 아닌 줄 알겠네.” 보기 좋은 눈썹을 살짝 찡그린 형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홀아비 냄새 난다. 한겨울도 아닌데 문 좀 열어놓고 자면 안 되냐?” 뒤로 돌아선 저 가느다란 허리와 그 아래로 쭉 뻗은 다리로 무심코 시선이 향하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뭐하냐, 멀거니. 카레라이스 했으니까 씻고 와라.” 다행히 내 표정은 못 본 건지 형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부엌을 향했다. “세수 제대로 해. 맨날 눈꼽 붙이고 다니지 말고.” 평소 같았음 그 소리에 꽥 소리를 질러버렸겠지만 잠에서 막 깬 상태여선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선지 난 멍하게 내 손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꿈……꿈이었구나. 그렇게 생생했는데. 형의 표정, 신음소리, 달콤한 숨결, 부드러운 맨살의 촉감과 그곳의 느낌까지 너무 선명했는데―. 차라리 지금이 더 꿈인 것만 같은데. ‘누가 들으면 친형제 아닌 줄 알겠네.’ 차라리 그랬으면―. 다시금 간밤의 몽정으로 시큼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이불에 얼굴을 박으며 중얼거렸다. 질척질척하게 냄새를 피워대는 담요를 세탁기에 처박고 부엌으로 가니 형은 이미 카레밥을 반쯤 비우고 있는 상태였다. 모양 좋게 담겨있는 카레밥. 분명 맛도 끝내주겠지. 형이 만든 거니까. 공부도, 운동도, 사교성도―뭐든지 완벽한 형이니까. 뭐든지 잘 하면서도 결코 뻐기지 않는 형을 모두들 좋아하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난 말이야, 형. 형이 조금은 부족했으면 해. “뭐하냐, 밥 놓고 제사 지내냐.” “남이사 밥을 먹든 말든.” “형한테 하는 말버릇이 그게 뭐냐. 옛날엔 안 그랬는데 요즘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 중간고사 성적도 더 떨어진 것 같고.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 “장래희망 교사야?” “뭐?” “아니면 신경 꺼.” 나보다 한 살 밖에 안 많은 주제에 어른인 척 하지 좀 마. 얼마나 역겨운지 알아? 입맛이 뚝 떨어져 삼분의 일 정도만 먹은 카레밥을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부엌을 빠져나왔다. “맛 드럽게 없네. 나 나갈 거니까 오만원만 꿔줘.” “어디 가는데.” “미팅 나가.” “…….” 분명 잔소리를 해댈 것이라 생각했는데 대답이 없어 돌아보니 항상 사람 좋아보이는 꽃미소를 달고 다니던 형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 “…….” “가지 마.”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날 보던 형이 한참만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니가 뭔데 가라 가지 말라야.” “너 성적 너무 떨어졌어. 공부해야 돼.” “웃기고 있네. 돈 빌려주기 싫으면 싫다고 말할 것이지.” “그런 거 아니야.” “나가. 옷 갈아입어야 되니까.” 형이 뭔가 말하려고 하는 듯 했지만 짜증이 솟구쳐 그대로 형을 밀어버리고 방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뭐야, 대체 왜 그런 얼굴을 하는 건데. 왜 날 기대하게 만드는 건데. 언제적 헤어스타일인지 머리에 무스를 잔뜩 처바른 채 초조하게 다리를 떠는 극인이, 완배놈과 섞여 파트너를 정할 때까지도 내내 형의 표정은 내 머리를 괴롭혔다. 제법 미끈해 보이는 기집애가 바로 앞에 앉아 짧은 스커트 사이로 허연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꼴리지 않는 놈이 있다면―. 그 놈은 미친 놈이거나 임포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 오늘 오전에도 야한 꿈 꾸고 몽정을 했으니 임포는 확실히 아니고. 그럼 미친 놈이겠네. 앞에 놓인 쥬스로 목을 축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너 미친 놈 맞잖아. 이제 인정해, 홍병권. 같은 남자를, 그것도 친형을 보고 욕정하는 게 정신 똑바로 박힌 놈이냐? 미친 놈이지. “지현이한테 얘기 들었어. 홍창업 씨 아들이라며? 병주 오빤 우리 학교에서도 유명한데. 전에 축제 포스터 들고 찾아왔을 때 우리 학교 애들 난리도 아니었거든. 연예인 아들에, 학생회장에 그런 꽃미남이라니.” 앞에서 쫑알거리는 기집애의 수다가 점점 귀에 거슬리고 있다. “공부도 전교 일등이라며? 너무 대단해. 세상에 그런 완벽한 사람도 있구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이 기집애야, 넌 내가 궁금한 거냐, 아니면 내 형이 궁금한 거냐. “아직 여자친구는 없어? 동생이니까 잘 알 거 아냐. 내 말 듣고 있어? 야―. 너 정말 매너 꽝이야.” “그럼 여기서 찢어지자. 나도 너한테 별 관심 없었걸랑. 잘 가라.” 기집애의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게 그나마 시원했다랄까. 집에서 나올 때보다 훨씬 더 나빠진 기분으로 까페를 뛰쳐나왔다. 씨발. 여기도 홍병주, 저기도 홍병주. 재수없는 새끼. 요즘은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도 많이 한다드만 그 새낀 어디서 죽지도 않나? 하고 많은 인간들 다 놔두고 왜 너 따위가 내 형이 된 건지 진짜 묻고 싶다. 너 정말 싫어. 싫어서 미치겠다고. ……지 않아. 싫지 않아. 싫어야 되는데 싫지 않아. 오히려―너무 좋아서……그래서 미치겠어. 누가 내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주먹을 날려버릴 것 같은, 잔뜩 날이 선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을 땐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는 초저녁 즈음이었다. 어차피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부모님은 오늘도 안 들어오실 거고. 또 형이랑 단둘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군. 현관 문 앞에 멈춰 서서 벨을 누를까 망설이다가 문을 열어주는 형의 얼굴과 맞닿으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아 귀찮지만 열쇠를 따고 들어갔다. “…….” 집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썰렁한 걸 보니 형도 밖에 나간 걸까. 거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잠바를 벗으며 생각했다. 하긴, 예비 고삼에 공부벌레 라곤 해도 형은 아직 파릇한 고등학생. 모처럼의 일요일에 시내 나가지 말란 법 없다.나처럼 여자애와 미팅도 할 수 있는 거고. 유명 연예인의 자식인데다 공부도 얼굴도 뛰어나니 여자애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겠지. 기분이 씁쓸해지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일찍 왔네?” “―――!!!”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줄 알았다. 바로 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로 돌아보자 방금 목욕을 하고나온 듯 타월을 허리에 감은 형이 서 있었다. “인기척 좀 내고 다녀. 깜짝 놀랐잖아.” “너가 무심한 거야.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곤. 상대방은 속이 타는지도 모르고.” 대체 무슨 소릴 중얼거리는 거야. 말을 하려면 알아듣기 쉽게 똑바로 말하든가. “미팅 잘 안 됐어? 여자애들이 별로였나 봐?”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꽃미소를 뿌리며 맞은편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다. 씨발. 남 잘 되는 게 그렇게 배가 아프냐. 뭔가 말을 해야 되는데 이놈의 눈깔은 짧은 수건 한 장을 달랑 걸친 채 아슬아슬하게 꼬인 허연 허벅지에만 고정이 돼 있다. 어라……. 나, 느껴버린 건 아니겠지? 설마―. 아까 전에 제법 글래머틱한 기집애가 다리를 꽜을 때도 전혀 미동도 안 하던 놈이 같은 거 달린 사내놈 다리에 서버린다면 진짜 그건―. “너가 채인 건 아니야?” 흥분하면 곤란한 상황에 흥분해버린 놈을 잠재울 땐 애국가가 최고라고 극인이놈이 그랬다. 타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형은 만면에 여자애들 백 명은 너끈히 죽어 넘어 갈 미소를 띄며 반대쪽 다리를 꽜다. 씹―. 완전히 KO패. 애국가를 속으로 사정없이 불러보지만 완전히 마음 따로 몸 따로. 건강한 십대의 분신은 완전히 서버려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는 건 꽉 주먹 쥐어진 내 손 옆에 입고 나갔었던 잠바가 놓여있다는 걸까. 형이 알아차리기 전에 얼른 잠바 에 손을 뻗어 바지를 뚫고나올 듯 튀어나온 앞을 절묘하게 가리며 엉거주춤 내 방으로 향했다. 씨발. 평소엔 별로 넓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마루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넓어 보이는 건지. 절름발이마냥 다리를 질질 끌며 걷는 내 뒷모습을 이상하게 볼 형을 생각하니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다. “나가서 밥은 먹고 온 거냐?” “아니.” “그럼 짜파게티 삶아먹을까?” “됐어, 나 피곤해서 잘 거니까 깨우지 마.” 지금 내가 밥 먹게 생겼냐. “너 아침에도 밥 안 먹었잖아. 밥 조금만 하고 양장피 시켜서 먹을까?” “안 먹는다잖아―. 왜 귀찮게 굴어?” “왜 소리는 질러! 오냐 오냐 했더니 정말―. 너, 형한테 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초조함에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더니 좀 심했던지 천사표인 줄로만 알았던 형이 버럭 화를 내며 내게 다가온다. 성큼성큼 다가올 때마다 느껴 지는 무스크의 향기. 그리고 새하얀 나신. 눈앞이 아찔하다. “저리 꺼져.” 그대로 형을 밀어버리고 방문을 닫았다. 문에 기대선 귓가와 목덜미가 뜨겁다. “헉―. 제길―.” 아래에서 급하게 해결해 달라 아우성치는 통에 그대로 바지와 팬티를 벗어 내린 채 잔뜩 흥분해 시퍼런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온 그것을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으―――!!!" 손이 닿자마자 느껴지는 굉장한 쾌감에 저절로 신음이 터져나온다. “하아……혀……형……병주 형…….” 병주 형의 늘씬하고 하얀 다리를 떠올리며 귀두에서부터 밑둥까지 급하고 거칠게 훑어 내린다. 꿈속에서 봤던 병주 형의 색스러운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귀두부분에 끼워 사정을 유도한다. “야, 너. 도저히 안 되겠어. 얘기 좀 해―!” 그 순간이었다, 클라이막스를 느낌과 동시에 형이 방문을 열어버린 것은. “…….” “…….” 이게 대체 무슨 개같은 상황이냐. 정액이 찔끔찔끔 흐르는 심벌을 손으로 쥔 우스꽝스런 자세 그대로 난 완전히 굳어버렸다. “너…….” 형 역시도 꽤나 당황한 듯 잠긴 문고리를 딴 열쇠를 손에 든 그대로 우뚝 멈춰선 상태. 대체―무슨 말을 하려고. 친형의 이름을 내뱉으며 자위나 하는 동생 따위 더럽다고. 꼴도 보기 싫다는 그런 말? 제발 부탁이니 다시는 보지 말자는 그런 말만은 하지 마. 형을 볼 수 없게 된다면 난―. 지금 이 순간을 회피하고 싶은 심정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급하게 뛰어 들어간 거였냐? 난 또―.” 씨익 웃으며 내 방으로 들어 온다……? 뭔데, 지금 이 상황은. “혀……형……. 그러니까…….” “친구들끼리 야한 비디오라도 봤던 거냐?” 아직 팬티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서 있는 내게 형이 싱글거리며 점점 다가온다. 뭐야, 왜 자꾸 오냐고. 형을 피해서 점점 뒷걸음질을 치다 보니 뭔가가 턱 걸린다. 불끈 서버린 아랫도리를 드러낸 그대로 침대위에 자빠져버린 우스운 상황. 그것도 형 앞에서. 죽고 싶은 기분이란 게 이런 걸까? “씨발―.” 부질없이 욕만 내뱉고 있는데 매트리스 위에 자빠져있는 내 위로 형이 몸을 겹친다. “왜, 사정이 잘 안 돼? 형이 도와주리?” “무슨―.”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잔뜩 흥분해 눈물 방울처럼 정액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는 내 것에 형의 손이 착 감긴다. “―――!!!” 꿈속에서만 상상해왔던 상황. 형이 내 위에 올라탄 채 내 것을 만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흥분했다기 보단 오히려 쇼크 상태에 가깝다고나 할까. 이미 한도를 넘어버린 성기야 그렇다 쳐도 머릿속과 몸은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혀……형…….” 굳어져버린 혀를 간신히 풀어 형을 올려다봤다. “괜찮아. 별 거 아니니까. 형이 도와줄게.” 귓가에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인 형이 몸을 일으켜 내 허벅지를 타누른 자세로 기립 상태에 놓여 있다가 딱 일시정지 상태가 되 버린 것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흐으읏―.” 형의 다정한 말투에 그만 긴장이 풀어져버린 걸까. 좀 전과는 다르게 그 작은 손길에 내 온몸은 뜨겁게 반응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꽤 노는 척 하지만 여자와는 키스조차도 해본 적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철 들면서부턴 줄곧 형을 의식해 왔으니까. 부모님과 주의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라이벌로써,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 웃음과 부드러운 말투에 두근대버리는 연정의 상대로도.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푹 빠져버렸는 걸.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형이―형이 좋아. 너무 너무 좋아. 지금 이 상황이 너무 간절해서 나타나는 환상이라도. “하―.” 형의 부드러운 손이 귀두에서부터 밑둥까지 천천히 훑다가 한꺼번에 잡고서는 아래위로 흔들기 시작한다. 따뜻한 손바닥에서 흔들리는 그것이 마치 지난 꿈속의 형의 내부와도 같은 느낌이어서 난 완전히 컨트롤을 잃어버린 채 허리를 튕겨버렸다. “제발―.” 제발 그만 좀 해. 머릿속의 전구가 확 나가버릴 것 같은 상황에 쥐어짜듯이 외쳤다. 누구보다도 형 앞에서는 추한 꼴 보이고 싶지 않아. 이제 충분하니까 그만둬 줘. 내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형은 여전히 싱글싱글 웃으며 내 중심을 잡은 손의 움직임을 빨리 했다. 아래위로 피스 톤질을 하면서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귀두를 조이기 시작한다. “흣―.” 파앗―.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면서 눈앞에 보이던 형의 얼굴이 일순 사라져 버렸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척추를 타고 흐르는 찌르르한 묘한 느낌. 열 다섯 살 때부터 자위 행위를 해온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완벽한 절정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침대 시트를 행여나 놓칠 새라 부여잡고 있지만 온 몸이 공중에 떠버린 듯한 부유감―. 동시에 저 깊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회귀하는 듯한 안락감. 끝도 보이지 않는 햇빛에 일렁이는 강 속을 파고드는 듯한 시원함. 짧은 몇 초간, 나는 온갖 종류의 감각을 다 맛볼 수 있었다. 아아―. 정말 이대로 있을 수 있다면―. 그리고, 다시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나의 정액이 주르르 흐르고 있는 형의 맵시 있는 손. “…….” 목에서 울컥 하며 뭔가가 넘어올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눈꼬리에서 미지근한 물기가 주륵 흘러버린다. 너무나도 가늘은 실 하나가 팽팽하게 당겨 져 아슬아슬한 채로 이것저것 겨우겨우 지탱해오다가 일순간 터져버린 것 같은 상실감. 깊숙한 곳에 비밀스럽게 감춰온 형에 대한 감정이 들켜버 렸으니, 그것도 이런 모욕적인 몰골로. 난 이제 어떡해야 할는지. 깊은 절망감에 축축해진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병권아―.” 숨죽여 흐느끼는 내 몸을 부드럽게 껴안으며 형이 속삭였다. “괜찮아. 아무 것도 아니야. 남자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야. 오히려 형은―너도 이제 어른인 것만 같아서 기분 좋은데.” 뭐라고? 형의 말에 베개에 묻었던 얼굴을 들어 형을 바라봤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형의 손에 사정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니야? 형의 이름을 부르며 욕정한 것이 아무 것도 아니야? 눈가에 흐른 눈물을 입술로 닦아주는 형의 몸을 팍 밀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작자해. 성교육은 너 따라다니는 기집애들한테나 하시지.” 젠장, 오늘 밤은 극인이네 집에서 하루 신세저야 할 것 같다. “야―. 배극인―.” 쓰레기통에 처박힌 것 같은 기분에 방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갔더니 새끼, 아니나 다를까 도색잡지를 후다닥 침대 밑에 숨기느라 바쁘다. “이 새끼, 엄만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시끄러워, 변태 새끼야. 초저녁부터 뭔 지랄을 떨었길래 방안에 냄새가 진동을 하냐?” 비릿한 정액냄새에 인상을 찌푸리자 극인이놈, 아주 사색이 된다. “그……냄새 많이 나냐?” 후다닥 달려가서 창문을 여는 놈을 보다 책장 뒤 틈에 끼워진 담뱃갑을 찾아내 한 대 빼어물었다. “담배 거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냐.” “니가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까지지 뭐. 침대 밑에 잡지랑, 비디오, 책장 뒤에 담배. 장판 밑에 콘돔. 참고로 콘돔은 한 번도 뜯어본 적 없음. 더 말해주리?” “……됐다. 근데 이 시간에 또 무슨 바람이 불었냐? 아까 현준가 하는 여자애, 너한테 채였다고 울고불고 난리 났었다던데.” 그러고 보니 낮에 그 싸가지 없던 기집애가 생각난다. 좀 전에 너무 쇼킹한 일을 겪어선지 하루도 안 됐는데도 얼굴도 생각 안 나는―. “몰라. 그딴 기집앤 생각도 하기 싫어.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니까 너 밑에서 자.” “여기가 니 집이야? 빌붙어 자려거든 니가 밑에서 자.” 생긴 거 답지 않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진 극인이놈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귀에 거슬린다. “씨발―. 진짜 드럽게 시끄럽네. 하루만 빌려주면 안 돼?” 물고있던 담배를 얼굴에다 휙하니 던져버렸더니 과연 조용해진다. “…….” “…….” “……미안하다.” “괜찮다. 너 이러는 거 하루 이틀이냐. 그 잘나신 형이랑 또 싸웠나부지.” 예리한 놈. 어떻게 알았냐. “멀쩡하던 놈이 꼭 니네 형이랑 트러블만 나면 히스테릭해지잖아. 아무도 못 건드릴 정도로.” 그랬나. 형은 나에게 그 정도의 존재였나. 침대에 팔베개를 하고 누운 채 고개만 옆으로 돌려 극인이놈이 낑낑대며 바닥에 이불을 펴는 걸 쳐다봤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여교사 시리즈 사탄 언제 나오냐고?” “아니―!! 만약, 만약에 말이야. 지인이가 널 좋아한다면 어떡할래?” 지인이는 극인이놈보다 두 살이 어린 누이다. 꽤나 애교도 많아서 내가 유일하게 이뻐하는 기집애. “에엑? 그게 날 좋아한대? 미쳤나?” “그러니까 만약이라잖아, 돌빡아.” “휴, 난 또.” 눈에 띄게 안심하는 그 표정에 반대로 내 기분은 처참하게 수렁으로 가라앉아 버린다. “만약이란 없어. 그런 일 있으면 지 죽고 나 죽고지. 더럽게 친남매끼리 그게 뭐냐? 패가망신도 정도가 있지. 씹―. 너 땜에 기분만 더러워졌잖아. 책임져, 씹새야!” “역시……그렇겠지?” “책임지랬더니 왠 딴소리야!” 그런 일이 있고나서 형을 보게 되는 일이 너무 두려웠다. 첫날은 극인이, 둘째날은 완배, 셋째날은 헌록이네. 이렇게 친구 세 놈 집을 순례하고 오늘은 어디서 잘까를 고민하며 후문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일 학년과 이 학년은 서로 층이 다르다고는 하나 마음만 맞으면 못 찾아올 것도 없고. 그런 마음이 없더라도 재수가 없다보면 복도에서 딱 맞닥뜨릴 수도 있는 거다. 열라 피해다녔다. 수업만 딱 끝나면 준비실이니 도서실이니 하는 데로 가서 구석에 자리 잡고 담배를 피우다 종이 울리면 부리나케 튀어가는 식으로. 든 것도 없어 필통만이 덜거럭 소리를 내는 가방을 고쳐 매고 잠겨진 후문을 막 뛰어넘는 순간, 후문 밖에서 날 올려다보는 형과 딱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씹―.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벽에 어정쩡하게 걸쳐진 다리를 다시 빼내고 안쪽에 뛰어내렸다. 그리곤 부리나케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홍병권!!” 언제 담을 뛰어넘은 건지 뒤쪽에서 형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절대 잡힐 순 없지.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얼굴을 봐. “야―. 거기 안 서?” 서란다고 서는 놈 드라마든 만화든 한 번도 못 봤다. 전교 일등이라더니 순 헛똑똑이. 그런 생각을 하며 운동장을 빠져나와 학교 밖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역사가 오래 된 이 골목은 꽤나 복잡한 미로니까 잘만 달리면 형을 따돌릴 수 있을 거다. 나야 등교 시간부터 학주 피해 담배 피느라고 눈 감고도 다 외울 지경. 그러나―. 첫 번째 문방구 골목을 지나 갈림길에서 쇠퇴한 여인숙 골목으로 접어들 때까지도 형은 끈질기게 나를 추격하고 있었다. 이씹―. 입에서는 이미 단내가 나고 심장이 더 이상 뛸 수 없을 만큼 격렬히 뛰는데―. 잊고 있었다. 형은―안경잽이 범생이가 아니라 사실은. 중학교 때 육상부로 활약했었다는 것을. 왜 그걸 잊어버렸던 거지? “홍병궈언―.” 제발 부탁이니까 그만 포기 좀 해 줘. 속으로 외치며 달려보지만 다리는 서서히 풀려가고 눈앞이 노랗게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헉헉―.” 결국 나는 골목을 돌고 돌아 다시 큰길로 접어드는 부분에서 무릎을 짚고 멈춰서 버리고 말았다. “이제―헉―다 도망쳤냐―.” 정말 악마 같은 새끼. 이러니까 내가 널 미워하는 거다. 내 속마음 따위는 모르는 채로 형은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손목을 부서져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씹―. 아프잖아. 이거 놓고 말해.” “또 도망갈 거면서.” “안 갈 테니까 놔.” 그제야 손을 놔준다. “…….” “…….” 어쩐지 형을 똑바로 볼 용기가 없어 시퍼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손목만 뚫어지게 노려봤다. 뭐야, 할 말 있으면 빨리 말하라구. “나 봐.” “…….” “안 봐? 평생 안 볼 거야?” “…….” “휴―. 병권아,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넌 충격을 받은 것 같지만 형도 며칠에 한 번씩 몽정도 하고 자위행위도 해.” “―――.” “남자의 생리현상이니까 누구나 같을 거야.” “하지만 상황이 다르잖아.” 형의 손에 그렇게―그렇게 되버렸는데. “그래, 내가 좀 짓궂었던 거 사과할게.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제 됐지?” 형이 내 앞에서 구십도로 허리를 굽히며 사과하고 있다. 전교 일등에다 학생회장인 형이. 모두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형이―. “돼……됐어.” 어쩐지 볼멘 목소리가 나와 버렸는지 다시 고개를 든 형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어린다. 그런데 그 얼굴이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도 다크 서클이 생긴 눈 밑이며 푸석해 보이는 피부 따위가 심장을 콕콕 쑤셔오고 있다. “집에……가자.” 그래서일까. 형이 내민 손을 평소처럼 내쳐버리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다 잡아버렸다. 다 큰 형제가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라니. 어쩐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걸. “어제 아버지 오셨었어. 니 성적표 보시고 오늘 너 꼭 집에 붙잡아놓으래.” Shit―――!!! 간만에 들어온 집은 정말이지, 일 년은 사람이 살지 않은 집같이 냉기가 돌았다. 평소에도 연예인 부모님 때문에 조용한 편이었지만 나까지 며칠 집을 비워버려 이 넓은 집에서 형은 혼자 얼마나 쓸쓸했을까. 막내라 오냐 오냐 키웠다고 나,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닌가. 오늘도 늦으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쳤는지 소파에 반듯이 누워 잠든 형을 바라봤다. 사흘 동안 무지하게 찾아다녔는지 그새 얼굴이 핼쓱해졌네. 천성이 착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 내가 어디서 굶지나 않았는지 나쁜 짓을 하진 않았는지 걱정하며 잠도 제대로 못 잤겠지. 두근……. 두근……. 아, 이놈의 심장이 미쳤나. 왜 갑자기 난동을 부리고 지랄이야. 어제 준비운동 없이 달리기를 무리하게 해서 그런가. 시간 내서 병원이나 한 번 갔다 오든가 해야지. 그건 그렇고, 형은 말라도 진짜 예쁘구나. 기집애들이 난리칠 만도 하네. 뽀얀 피부에다 반듯한 이마에 부챗살같은 속눈썹 에―.쭉 뻗은 코에다 입술은 대춧빛이지. 저 입술이 날 향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릴 땐 얼마나 섹시한지―. “…….” 베란다 창 너머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이 섹시한 입술은 빛깔만 대춧빛인 게 아니라 맛까지도 너무 달콤하구나. 부드럽고 촉촉하고 너무 따뜻해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느낌이야. 조금만 더 맛보고 싶어. 좀 더 짜릿하게. 그 예쁜 입술이 크게 소리 내어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고른 치아와 붉은 혀는 또 어떤지. 입술만큼이나 달콤할까. “헛―.”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형의 입술에 열렬히 키스하는 중이었다. 정말 나 미친 걸까. 아무리 요즘 제정신이 아니라지만. 스스로를 질책하며 머리를 마구 두드려대는데 순간, 손을 꽉 잡혀버렸다. “뭐하는 거냐. 안 그래도 나쁜 머리에.” “―――!!!” 삐그덕 대는 목을 억지로 돌려 쳐다본 곳에는 형이 여전히 소파에 누운 채로 내 손목을 잡은 채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언제부터 깼어?” 정말 묻기는 싫지만. 금방 깬 거겠지? 내가 키스한 건 모르는 거겠지? 속으로 거의 기도를 하며 타액이 묻어 섹시하게 번들거리는 형의 입술을 쳐다봤다. “니가 나한테 키스했을 때부터.” “뭐?” 머릿속에서 뭔가가 쿵 떨어진다. “니가 나한테 키.스.했을 때부터.” 그러면서 씨익 웃으며 자신의 입가에 묻은 내 타액을 손가락으로 슥 닦은 형의 모습은 몇 달 전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본 ‘마담 O’ 시리즈의 마담 O를 방불케 했다. 역시 형 따위는 질색이야. “흥―. 나한테 장난친 복수야.”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병신, 이 따위의 변명은 아이큐 구십의 저능아도 안 믿겠다. “아아, 그래?” 역시나 날 보는 형의 얼굴은 싱글벙글. 그 모습에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려는데 일순간 형의 눈빛이 반짝―한 것 같다면 착각일까. “그럼―.” 여전히 누워서 날 올려다 보는 자세로 형이 내 목을 확 끌어당겼다. “왁―!!” 소리를 미처 내지르기도 전에 내 입을 막아버린 무엇. 이 따뜻하고 몰캉몰캉한 것은 분명 내 기억에 남아있는―.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느리게나마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눈을 떠 바로 앞에 있는 허여멀건 것에 초점을 맞췄다. 반듯한 이마, 부챗살 같은 속눈썹, 쭉 뻗은 코. 이건 형 얼굴인데. 그 아래 대추같은 입술은―입술은―? 으아아아, 나 지금 형에게 키스당하는 거야?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댄 채 가만히 온기를 나누던 형은 처음부터 열려진 내 입술 사이를 가르고 혀를 집어넣고 내 치아를 훑기 시작했다. 가만히, 가만히 간질이듯 몰캉몰캉하고도 까슬한 혀로 내 치아와 입천장을 간질이던 혀가 얼어붙은 듯 웅크리고 있는 내 혀를 찾아내 부드럽게 감기 시작한다. “흐―읍―.” 아까전의 내 키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농밀하고 뭔가 찌르르한 그 느낌에 나 자신도 모르게 작게 소리를 뱉고 말았다. 계속해서 내 혀를 감고 움직이는 통에 내 입안은 형의 타액과 내 타액이 뒤섞여 식도를 타고 넘어가기 시작했지만 어째서일까. 전혀 더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입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에 무아지경이 되 버려 어느 새 형의 몸에 바싹 다가가 형이 내게 한 것처럼 형의 목을 끌어안고 서툴게 혀를 움직여대고 있었다. 츄웁―츕―. 한참동안이나 내 입안을 희롱하던 형의 혀가 서서히 빠져나가며 내 입술을 한 벝 훑고는 촉 하는 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하아―하아―.” 굉장히 낯 뜨겁고도 긴 키스에 얼굴이 새빨개져 버린 채 숨을 헐떡이는 내게 형이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며칠동안 가출한 벌이야.” “…….” 뭐라고 대꾸도 못한 채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있는 내 귓가로 언제부터 울렸는지 현관의 벨 소리가 연신 울려대고 있었다. “니, 지금 이걸 성적표라고 받아온 기가?” 요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란 정치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아버지는 극중에서와 다름 없이 일상생활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다. 실제로도 경상도 사람이긴 했지만 열 다섯 어린 나이에 탤런트가 되겠다며 상경해 누구라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했었 지만 이번의 역을 맡으며 자신의 사투리가 어눌하다는 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예술을 향한 그 열의만큼 자식들에게도 정성을 쏟아주길 난 얼마나 바랬던가. “주디가 붙었나. 와 말을 못하노.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그게 아니면 아이다 말이 있어야 될 기 아이가.” 듣기 싫은 경상도 사투리로 자꾸 채근하는 그 목소리에 반발심만이 끓어오른다. “머리가―머리가 나빠서요. 그래서 공부 못하겠는데요.” “―――.” 예상치 못했던 내 대답에 잘난 아버지와 잘난 형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야가―야가 지금 뭐라카노. 니가 지금 맞고 싶어서 환장했제.” “때리세요. 때리고 그냥 저 포기하세요.” 근친상간에―게이에. 뭐, 어차피 화려한 꼬리표니 낙오자라는 꼬리표 하나 붙인다고 뭐 달라지겠어. 슬며시 입꼬리에 힘이 들어간다. “긴 말 할 거 없다.” 막내아들을 낳고, 잘해줄 때는 정말 살살 녹을 정도로, 꼭지 한 번 돌면 즉사하게 두들겨 패던 아버지의 손이 오늘은 어쩐 일인지 올라가질 않는다. 대신 한숨으로 속의 분을 표시할 뿐. 이제 인정하나보지. 당신도 늙었다는 걸. “내일부터 학원 다니라. 아니믄 그룹 과외를 하든지.” “하기 싫은데요. 공부하기 싫다니까요, 아버지.” 그 순간 확 위로 치켜져 올라간 거친 손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는데―. “…….” “…….”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눈을 떠보니 형이 아버지의 손을 곽 붙들고 있다. “놔라.” “아버지, 참으세요. 저 놈이 때린다고 될 놈이고 학원 보낸다고 공부할 놈입니까.” 우리 나라 옛날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 말리는 시누이 어쩌고 하는 게 있었던가. “그러지 말고요. 과외는 돈도 들고 하니까 제가 조금 시간 내서 가르칠게요.” “미쳤어, 형?” 뭐라는 거야, 저 인간이. 요즘 우리 두 사람 관계 스스로도 잘 알면서. “과외하다 소문나면 그렇잖아요. 아버지, 공인이신데.” “그라마―니한테 맽긴다. 책임지고 가르칠 수 있제?” 대답 대신 날 보는 형의 눈꼬리가 가늘게 휘어지는 걸 보며 속으로 갓뎀을 외쳤다. 담배는 언제 피워도 맛이 좋지만 어째서인지 옥상에서 피는 것은 맛이 좀 다른 것 같다. 밝은 햇살과 파란 창공과 부드러운 오월의 미풍과 또 그 바람에 흩날리며 춤추는 담배 연기까지도 너무 기분이 좋다. “하아―. 그래서 미연이가 나한테 곰 한 마리를 줬걸랑. 배를 누르니까 달링 알러뷰―달링 알러뷰―이러는데 그게 나 마음에 든다는 뜻 아니겠냐.” 같이 야자를 띵 까고 옆에 누운 완배놈이 헌록이로부터 소개받은 기집애 얘길 삼십분을 내리 쫑알대고 있다. “걔가 그렇게 좋냐.” “이쁘진 않아도 무지 귀여워. 웃으면 보조개도 들어가는 게 얼마나 귀여운 지 꽉 깨물어주고 싶다니까.” 비실비실 미친놈처럼 웃어대는 완배놈의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내 주의는 온통 완배의 입술에 머물러 있다. 내가 기집애한테는 반응이 없고 형에게는 반응이 있다고 해서 꼭 형을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성 취향이 남달라서 남자들한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야, 이완배.” “왜.” “우리 키스하자.” 진지하게 고민한 내 제의의 대답은 완배가 담배를 손으로 놓치는 것이었다. “뭣? 앗뜨―.” 담뱃불에 손등이 데어 쓱쓱 문지르고 나자 완배놈은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는데.” “진심이다.” “진심이라고?” “응, 나랑 키스하자.” 두 번째 되풀이된 내 제의에 대한 이번 대답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완배는 잽싸게 몸을 돌려 달아났고, 나 역시도 잽싸게 쫓아가 놈의 뒷덜미를 잡은 뒤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콰당―. 엄청난 소리가 나며 완배가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무시해버리고 놈의 배위에 올라타 앉아버렸다. 나보다 덩치가 좋은 놈이었지만 씨멘트 바닥에 누워 나까지 깔고 앉아있는 자세가 되버리자 어쩌지를 못하고 바둥거리는 움직임만이 미세하게 느껴졌다. “새끼, 안 비켜? 야, 비켜! 어이, 동네 사람들―! 변태가 애 잡아요! 미친놈아, 미칠려 거든 곱게 미치거나 정신병원에나 들어가 버려!”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지만 이 시간에 옥상에 올라올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에 휘휘 내젓는 완배의 양볼을 꽉 쥐고는 입을 맞췄다. 방법은 알고 있다. 이론상은 예전부터, 실전은 어제부터. 형이 하던 것처럼 입술을 혀로 촉촉이 적시면서 간질이다 입술이 천천히 열리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그리고 치열과 입안 구석구석을 훑어주다 상대의 혀를 감아올린다. 머릿속으로 형과의 경험을 떠올리며 복습을 시도했지만 내 어설픈 시도는 완배의 입안을 가르고 들어간 데에 서 불발되고 말았다. “욱―.” 완배 입안으로 반쯤 들어간 혀를 잽싸게 회수하고는 한쪽 구석으로 달려가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담배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런데 뭔가가 분명 있었어. 형이 아닌 상대와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역시 형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오늘도 야간자습 안 했다며. 너네 선생님이 보통 화나신 게 아니더라. 어제도 성적표 때문에 한 소리 들었다면서. 그래가지고 어쩌려고 그래.” “어제 형이랑 키스하고 나서―.” 날 보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는 형에게 민감한 말을 꺼내자 입이 딱 굳어버린다. “나 호모인가 하고 생각했어. 솔직히 남자랑, 그것도 친형이랑 했는데 태연했다는 게 정상아닌 거잖아.” “그래서?” 실버 그레이 빛깔의 조끼를 입은 형은 더없이 화사해 보이는 미모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순발력 있게 무표정을 가장하는 부분에서는 카리스마랄까. 성숙한 남자의 모습이 느껴진다. “그래서 시험 차 오늘 딴 남자하고도 키스해봤걸랑? 형하고 한 것 같은 똑같은 딥 키스. 사실은 섹스를 해보고 싶었는데―.” 쾅―――!!! 여전히 무표정 그 자체였지만 옆 벽에 와서 꽂히는 주먹으로 형이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너 정말 나한테 맞고 싶냐?”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닐까 하고 내도록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형. 이제는 조금 자신감이 생겨. 동성이고 친형이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부딪쳐나 보자고. “맞기는 싫은데. 이왕 나한테 터치할 거면―.” 그대로 형의 목을 감고 입술을 갖다댔다. “키스로 해줘.” 가까이 맞대어진 형의 눈이 조금 커지는 것 같더니 사르르 다시 감기며 혀로 내 입술을 간질이기 시작한다. 그래, 이거야. 남자라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 홍병주이기 때문이야. 내가 형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형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키스가 그렇게 달콤했던 거야. 정신없이 서로의 몸에 밀착해 부딪치던 입술이 떨어져나가고 살며시 내리깐 눈으로 입술과 입술 사이로 이어진 타액이 보인다. 그것을 슥 핥으며 쾌활하게 말했다. “형, 내게 할 말 없어?” 이제까지 봐왔던 그 어떤 미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띄운 형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홍병권, 사랑한다…….” “사실 딴 남자랑 키스하고 나 토했었어, 너무 더러워서.” “다신 그러지 마. 또 한 번 그랬다간 그놈은 죽이고.” “죽이고? 난?” “입술이 퉁퉁 부을 때까지 키스해버릴 거야.” 킥킥 웃으며 고개를 숙이는 내게 형이 다시 한 번 짧게 키스해왔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키스했는지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은 꽤 지나있는 상태였고 자러 들어가는 나를 형이 질질 끌다시피 해서 자신의 방에 기어코 앉히고야 말았다. 지금 내 앞에는 수학 문제지가 놓여있고 키스 때문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로 내 입은 퉁퉁 부어있다. “안 하면 안 돼?” “안 돼.” “사랑한다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 “혀어엉――.” “애교 부려도 소용없어.” “……쳇.” 깍쟁이, 기집애같은 놈, 공부벌레, 샌님 등등. 샤프펜슬을 들고 투덜거리는 날 보고 형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하자.” “……?” “한 문제씩 맞출 때마다 내게 너한테 키스해줄게.” “틀리면?” “틀리면 니가 나한테 키스해.” “에, 그게 뭐야. 맞거나 틀리거나 똑같잖아.” “달라.” "뭐가?“ “니가 하는 건 서투른 뽀뽀고, 내가 하는 건 어른들의 키스니까.” 여유작작 미소 짓는 형을 보고 있자니 앞으론 죽자고 공부를 파고들어야 할 것 같다. 다음 글의 결론을 추론한 것으로 가장 타당한 것은? 일부 학자들은 민족의 성격이나 문화 창조의 능력이 인종적,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고, 인종, 언어, 문화의 공통성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가들 중에는 완전히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소수 민족들이 모여서 하나의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경우가 있으며, 동일한 혈통과 문화 배경을 가진 민족이 여러 지역과 문화 속에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있다. ① 민족은 국가의 본질을 구성하는 절대적 요소이다. ② 민족은 통일한 사회, 통일한 장소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이다. ③ 문화, 역사, 정치 등의 객관적 요인만으로 민족을 정의하기가 어렵다. ④ 공동체 의식만을 민족을 구성하는 유일한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 ⑤ 민족에 기반을 둔 국가의 형성을 지상 목표로 하는 민족주의의 이념은 거부되어야 한다. 벌써 유월이라는 것을 알리듯 더위에 약한 내 손바닥 안의 샤프펜슬이 땀에 절어 미끈미끈하다. 조금씩 더워져가는 날씨에 인내심이 사각사각 쥐 갉아먹듯 사라져 금방이라도 책상을 발로 걷어차 버리고 일어서고 싶은데 다행히 이번 문제가 마지막 문제인데다 난이도가 꽤나 낮다. 척 보면 알겠다. 빙글빙글 손가락 위에서 돌리던 샤프로 삼 번을 체크하고는 생색이라도 내듯 탁 샤프를 내려놨다. “다 풀었냐?” 나에게 문제집을 던져주고 자신은 자신대로 문제집을 풀던 형이 고개를 든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시마이야!” “그래, 체크하고 나서 간식이라도 먹자. 팥빙수 사와서 냉동실에 넣어뒀어. 너 단 거 좋아하잖아.” 냉동실에서 꽁꽁 얼었을 팥빙수보다 내게 함박미소를 보내는 형의 얼굴에 마음이 더 시원해졌다. “음. 스무 문제 중에 두 개 틀리고 다 맞췄네. 제일 처음엔 두 개 맞고 다 틀리더니.” “뭐―.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삼 주나 됐으니까.” 시원한 방바닥에 자빠져버리는 내게 형이 몸을 겹쳐왔다. “오늘은 특별히 잘 했으니까 서비스를 해줄까?” 서비스? 의문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내 눈가에 가볍게 입술을 대며 형이 오렌지 색의 티셔츠를 걷어 올린다. 더운 날씨라 런닝 셔츠도 입지 않은 맨가슴에 형의 입술이 내려왔다. “혀엉―.” 자그맣게 항의의 말을 뱉어보지만 들리지 않는 듯 작게 웅크리고 있는 짙은 갈색 유두에 입을 맞췄다. 분명히 사용하지 않아 퇴화했다고 믿는 그 부위에 형의 입술이 닿자 놀랍게도 짜릿한 감각과 함께 그것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타버릴 것 같은 부끄러움에 형의 머리를 밀어내려고 하자 형이 유두에서 입술을 떼고 내 손목을 한 손으로 부드럽게 그러잡았다. 그러고 는 다시 유두로 돌아가 혀끝으로 살짝살짝 핥기 시작했다. 이 부분이 이렇게 민감한 곳이었던가. 살짝 입술만 대도 짜릿함을 느끼던 그곳은 이제 형이 혀로 핥아주자 손끝까지 파도가 요동치는 듯한 감각을 전해왔다. “이……이상해.” 더 이상 벌개질 수 없을 만큼 벌개져 버린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형이 싱긋 웃었다. “남자도 여자처럼 여기를 느껴.” 저 여유작작한 미소라니. 남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있는데 형은 그야말로 마이 페이스.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제 그만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형이 작게 속삭이고는 일으켜 세운 유두를 입안에 머금고 강하게 빨기 시작한다. 잔뜩 빨아 당겨서 입안 깊숙이 넣은 뒤엔 혀로 가볍게 간질이면 서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대는데, 포르노로만 봐왔던 애무란 게 이런 거였나. 이렇게 미칠 것 같고 사람 눈이 뒤집혀질 만큼 좋은 거였나. 계속 되풀이되는 형의 애무에 내 몸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벌어진 입안은 심하게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말라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형의 무릎으로 타눌러진 다리 사이의 그것이 점점 고개를 들고 있다. 형도 그것을 느꼈는지 유두에서 입술을 떼고 내 손목을 잡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내 바지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젠장, 하필이면 집안인데다 덥다는 이유로 고무줄로 된 반바지 하나만 달랑 걸치고 있었던 거 다. 한 손으로 손쉽게 바지를 벗겨낸 형이 팬티 아래로 불끈 솟아오른 내 것을 보더니 사악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미소를 띄우고 날 바라봤다. “어린 줄 알았는데 제법 크네?” “씹―.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당장 이거 풀어.” 형의 손에 잡힌 두 손목을 이리저리 힘을 줘서 돌려보지만 수갑이라도 채운 듯 움직일수록 더 힘있게 조여왔다. 나는 두 손이고 형은 한 손인데 어째서―. 형의 하얗고 가늘어 보이는 손에서 나오는 힘을 이해할 수 없다. “기분 좋게 해준다니까.” 내 손목을 잡은 손을 배꼽 있는 데까지 끌어내리고는 천천히 몸을 아래로 이동시켰다. 형의 얼굴이 딱 멈춰진 곳을 누운 채로 고개만 들어 쳐다 보고는 몸이 딱 굳어버렸다. 설마―설마―? 포르노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그 더럽고 비위 상하는 걸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형의 손이 마지막 천 조각을 단숨에 무릎까지 내려버리고는 한 손으로 그것을 잡고 유두에 애무했던 것과 똑같이 미지근한 혀로 핥기 시작했다. “허억―――!!!” 아까와는 도저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굉장한 무엇. 그것에 정말로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튕겨버렸다. 맨바닥에 누워 허리를 크게 마찰 당했으면서도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내 정신은 내 것의 귀두를 잘근잘근 씹으며 과자나 하드 아이스크림 바를 먹듯 점점 삼켜 들어가는 형의 입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츕―츄웁―. 내 것을 빨아 당기고 핥는 형의 입안의 타액과 바깥 공기가 만나 음란한 소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소리는 넓지 않은 방안에 이상하게도 잘 울려 퍼진 뒤 다시금 내 귓가에 울려와 피부의 감촉과 함께 내 이성을 더 빠르게 몸으로부터 끌어내리고 있다. “혀……형…….” 형이 뿌리 끝까지 내 것을 삼켜 목구멍에 담은 뒤 서서히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마지막 새끼 손가락을 걸고 매달려있던 이성이 기어코 떨어져나 가고 말았다. 서서히 풀려가는 형의 손에서 손목을 빼내 형의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움켜잡으며 뜨겁고 좁은 형의 목구멍 안으로 더욱더 내 몸을 밀어넣으며 허리와 엉덩이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아……아…….” 미끈미끈한 형의 입안에서 들락날락 피스톤질을 해대는 내 것이 불빛 아래서 음탕하게 검붉은 빛을 번쩍였다. 내 것을 둘러싼 거친 수풀이 형의 얼굴을 숨막히게 묻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도 없이 형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채 질척질척대는 소음에 취해 결국 끝까 지 가버리고 말았다. “―――.” 이마에 담 한 방울을 흩뿌리며 동시에 아래로는 형의 입안에 정액을 분출했다. “헉헉――.” 너무나 큰 엑스터시 후에 오는 나른함에 형의 머리를 쥐었던 손을 힘없이 놔버리고는 바닥에 큰대자로 뻗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좋았어?” 그 유려하고 섹시한 입가에 흐른 정액을 티슈로 닦아내며 형이 허스키해진 음색으로 물었다. “모……몰라. 말할 기운……없어…….” 헐떡이며 더듬더듬 말하는 날 내려다보며 형이 쿡쿡 웃으며 가볍게 끌어안는다. 형의 품안으로 들어간 코끝에 연하게 비누향과 체취가 섞여 마음이 점점 편안해져온다. 이대로 눈을 감고 조금만 더 체취를 맡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형의 품 속으로 더욱더 깊이 파고들었고, 다시 깨어 났을 땐 파자마가 입혀진 채 형의 싱글 침대에서 형의 다리 사이에 내 다리를 끼운 채 팔베개를 베고 있던 상태였다. “뭐야, 꼭 가야 되는 거야? 모처럼의 휴일에 나랑 데이트 좀 하면 안 돼? 너가 재밌을 거라던 영화표 내가 예매해 놨단 말이야.” 평소와는 다른 패턴으로 오늘은 형이 내 침대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툴툴거리고 있고 난 거울 앞에서 머리를 한껏 치켜세우고 있는 중이다. “말했잖아. 이쪽이 선약이야.”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지. ……너 왜 그렇게 머리에 신경을 써? 설마 여자애들 만나러 가는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눈 씻고 봐도 형보다 미모가 뛰어난 여잔 못 봤다는 얘기가 목구멍까지 튀어 올라왔지만 꾹 삼켜버렸다. 뭐야, 눈 부라리면서 질투하는 모습도 꽤 귀엽잖아. “미안하지만 오늘 완배 생일이야. 남자들끼리만 놀 거야.” “완배라면 너랑 키스한 놈 아냐? 차라리 여잘 만나. 그놈은 절대 안 돼!” “혀엉―. 말했잖아. 그건 내가 억지로 그런 거라니까. 그놈 그 후로 날 얼마나 피해 다니는데. 하여튼 오늘 나이트에서 생일 파티 하고 내일도 개교기념일이니까 극인이네서 자고 올 거야. 기다리지 마.” 눈에 파란 렌즈를 거울로 점검하고는 일어서려 하자 형이 손목을 붙잡았다. “너 아직 굳모닝 키스 안 했어.” 피식 웃고는 형의 입술에 짧게 베이비 키스를 했다. 그리곤 몸을 뒤로 빼는데 형이 내 목을 잡고는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넣었다. “으―――.” 형의 혀가 내 혀를 감아올리며 부드럽게 움직이자 내 입안에까지 청결한 치약 냄새가 퍼졌다. 츄웁―츕―. “하아…….” 마지막으로 짧게 입술을 훔치고 떨어지지만 아침 시간만 아니라면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을 뒹굴고 싶은 심정이다. “나 이제 형이랑 키스 안 할래.” 내 한 마디 한 마디 말에 형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다. “중독될 것 같아서 안 되겠어.” 사실은 이미 중독 돼 버린 것 같지만. “친구들아, 정말 뷰티플 썬데이지 않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걷잡을 수 없는 형을 향한 감정에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가던 나였으나 형 또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론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었으며 수업시간에도 꼬박꼬박 자리를 지켰으며 일없이 벙실벙실대는 내게 덜 떨어진 놈이란 별명까지 붙어버렸다. “지랄. 난 글루미 썬데이다.” 나에게 강제로 키스당한 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완배놈의 한 마디. “아직도 그것 갖고 시비냐? 사내자식이란 놈이 쩨쩨하긴.” “너라면 좋겠냐. 내……내 첫키스가! 으아아아아, 생각하니까 더 열 받네! 저 때려죽일 놈의 시키가 울 이쁜 미연이 꺼를! 물어내, 물어냄마!” “피해보상 해줄까?” 피식 웃으며 검정색 윗도리를 뒤지는데―. 앗차, 지갑을 놔두고 와버렸다. 나름대로는 철저한 성격이라고 자부하는 편이라 그런 걸 빠뜨리고 다니진 않는데 나오기 직전 형과의 키스로 완전히 이성이 헤롱헤롱한 상태였던 것 같다. “야, 나 집에 지갑 놔두고 온 것 같다.” “확실히 저 놈 미쳤다니까.” “너 돈 내기 싫어서 쑈하는 거지?” “지랄하지 말고 금방 갔다 올 테니까 기다려.” “오락실에 있을 테니까 퍼뜩 튀어와.” 친구들에게서 잔소리를 한 마디씩 듣고는 버스 밖으로 뛰어내렸다. 두 코스 정도의 거리를 뛰어가면서도 기분은 여전히 날아갈 듯. 나온 지 삼십 분도 채 안 됐지만 벌써부터 형이 보고 싶어지려던 참이었으니까. 내일 저녁까지는 못 볼 테니까 얼굴도 한 번 더 보고 입술에 키스도 한 번 더 찐하게 해주고 가야지. 숨을 헉헉 몰아쉬고는 벨을 눌렀는데 어찌된 일인지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재수 없게 고장이 난 건가 생각하며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삼십분도 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친구가 온 건지 형의 신발 옆에 낯선 신발이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쳇, 나보고는 친구랑도 놀지 말래놓고 자기는 아주 잘 나가시는구만. 내 방으로 가기위해 형의 방을 막 지나치려는 찰나, 형의 방문 너머에서 여자처럼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왜 이래, 병주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말해 줘, 응? 내가 고칠 테니까 제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울먹이는 목소리가 애처롭다. 대화 내용만 아니라면 안고 위로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했잖아, 질렸다고. 니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날 것 같으니까 더 이상 구차해지지 말고 그만둬라.” “다른 애가 생긴 거야? 아니, 그건 아닐 거야. 넌 누굴 진심으로 생각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거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 나 만나기 한 시간 전에 딴 여자랑 호텔방에서 뒹굴고 온 거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나야. 너의 수많은 상대 중 하나가 된다 해도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사랑해, 홍주야. 절대 귀찮게 굴거나 터치하지 않을 테니까 예전처럼만 대해 줘. 응? 나 안 본다는 말만 하지 마. 부탁이야.” “그래, 니 말이 맞아. 나 그런 놈이야. 계집이든 사내놈이든 내 맘에 들어오면 하룻밤 품어보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놈이야.” 키득키득―. 내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차가운 목소리로 형이 웃었다. “그 녀석의 대용이 필요했거든. 너무 가까이에 있는데,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녀석을 더럽히기 싫어서 이 욕망을 풀 화장실이 필요했어. 그래, 하룻밤 상대라는 말도 과분하지. 화장실이야, 너네는. 그 녀석과 귀가 닮은 계집애, 그 녀석과 헤어스타일이 같은 남창, 심지어는―그 녀석과 똑같은 옷을 입은 길가는 사내놈을 내가 어떻게 한 줄 알아?” “…….” 잠시 말을 멈추고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하지만 하이톤 음성의 남자는 숨을 죽였다. “그대로 팔을 꺾어서 골목길에 세워두고 비명을 지를 수 없게 이빨을 몇 개 부러뜨려놨지. 그리고 세워서 강간해버렸지. 처음 보는 사내놈을 피칠갑을 만들었어. 너도 그 꼴 나고 싶지 않으면 대충 하고 꺼져.” “병주야아―.” “아, 씨발. 이게 어딜 만져!? 정말 죽고 싶어 환장했지!!”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이톤의 비명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온다. 난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걸레 같은 새끼가 어딜 만지고 지랄이야? 더럽게스리―.” “쿨럭―제발―아악―!” 뭘 어떻게 하는 건지 안에서 연신 물건 넘어지는 소리와 구타당하는 소리, 비명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정말……안 돼? 그 애랑 만나면서도 안 돼? 나 정말 조심할 테니까.” 퍽――. 퍼억――. 콱――. 순간, 손이 나갈 뻔했다. 다급히 문고리를 잡고는 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망설이고 있는데 안쪽에서 갑자기 조용해진다. “…….” “…….” “더 맞기 싫으면 꺼져.” “……나, 너의 그 애 알고 있어.” “뭐?” “내가 정말 모를 것 같아? 말했잖아. 너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구라 까지 마.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섹스 파트너들한테는 입에 못 담을 쌍욕에 손발이 곧잘 나가면서도 그 녀석만 보면 완전히 녹아버릴 것 같았어. 처음엔 좀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같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런 줄 알았어. 깊이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아니었는데. 남자가 여자를 보는 눈이었는데. 너, 참 대단한 놈이야.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이제까지 감쪽같이 속이다니. 그것도 바로―니 동생을.” “…….” 숨이 막힐 것 같아 문고리에서 후다닥 떨어져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대체 지금 이 대화는 뭐야. 지금 이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그래서 어쩌겠다고.” 한참만에야 형의 대답이 들려온 걸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동요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 말할 거야. 니 동생 홍병권한테. 니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너의 뭐였는지 다 말할 거야. 니가 가지고 놀다 헌신짝처럼 버린 애들 리스트도. 아주―상세히 말해줄 거야.” “말했다간―.” 형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기에 문에 귀를 바싹 대야만 했다. “넌 죽어.” “어차피 너한테 버림받을 바에야 그게 나아. 나로썬 이러나 저러나 똑같은 거, 무서울 게 없다 이 말이야, 잘난 홍병주 씨.” “…….” “병권이가 어떻게 생각할까. 우등생에다 마음씨 좋은 맏형이 사실은 쓰레기같은 인간이란 걸 알면 어떤 표정 지을까. 정말 생각만으로 기대가 되는데.” “십새끼―.” 콰당―――!!! “아악――!!” “이렇게 해주면 돼? 너란 새끼, 천성이 창녀 같은 놈이라 이런 거 좋아하잖아.” “하읏―.” “고마운 줄 알아. 병권이가 오늘 없기 때문에 특별히 안아주는 거야. ―그렇게 있지 말고 고개를 돌려봐, 응? 눈이라도 보여줘야 안을 맛이 나지.” “벼……병주…….” “어떤 연놈들도 일주일을 넘긴 적 없었지만 넌 꽤 오래갔지. 왠줄 알아? 그 녀석하고 눈이 닮았거든. 까만색도 그렇다고 갈색도 아닌 묘한 밤색 눈동자에 외쌍꺼플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 눈이 나한테 키스해달라고 했을 때 내 기분을 알겠어? 절대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녀석을 가지게 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니가 알기나 해? 내가 얼마나 그 녀석을 사랑하는지 너 같은 겉만 닮은 싸구려 짝퉁이 뭘 알아?” 끼익끼익―. 침대 스프링이 내는 소음이 내 귀를, 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아니야, 아니야. 거짓말. 내가 뭘 잘못 들은 거야. 오해한 거야. 형이 그럴 리 없잖아. 그 좋은 형이. 나만을 사랑하는 형이.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절대 안 믿을 거야.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살며시 문고리를 돌렸다. 하얀색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드러나는 아찔한 상황. 매일같이 형과 딥 키스와 부드러운 애무와 아찔한 패팅을 나누곤 했던 바로 그 침대에서. 처음 보는 작은 남자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엉덩이를 잔뜩 치켜세우고 있고 그 뒤에서 야수와도 같은 얼굴을 한 형이 남자의 허리를 손으로 잡고 성기를 엉덩이에 삽입한 채 거칠게 피스톤질을 하고 있는―. “―――!!!” “흐윽―하악―.” 괴로운 듯 신음을 뱉어내는 남자의 엉덩이를 가르며 형은 무자비하게 박아대고 있었다. 그래, 저것은 섹스가 아니라 말 그대로 박아대는 것이다. “똑바로 안 해?” 찰싹! 형의 손바닥이 남자의 엉덩이에 작렬하자 곧바로 흰 피부에 벌건 손자국이 떠올랐다. “좀 더 조여 봐. 넌 암캐잖아, 서영준. 두 시간이나 내 밑에서 허릴 흔들던 것처럼 오늘도 화끈하게 해 봐.” 형의 잔인한 말이, 희번득거리는 눈이, 탐욕스럽게 보이는 그 표정이 자꾸만 내 가슴에 박혀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쑈크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쥐어짜는 듯한 심장을 짚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런데 그 순간―. “―――!!!” 마침 고개를 들어올린 형과 눈이 딱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벼……병권아…….” 언제 그랬냐는 듯 날 발견한 형의 표정이 백 팔십 도로 바뀌고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일이 다 꿈이라도 된다는 듯. 그러나 형은 아직도 그 남자의 몸속에 있잖아. 지금 상황은 절대로, 그 어떤 변명도 불가능한 상황이잖아. “이게 형의 본모습이야?” 목이 메말라 목소리도 이상하게 삑사리가 나고 있다. 이런 상황, 정말 꿈에라도 싫은데.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하고 구름위에 뜬 듯 몽롱했다. “하―. 정말 몰랐네. 이런 가면을 쓰고 살고 있었는 줄은. 이중생활 하시느라 힘들었겠어. 하긴, 누구랑은 달리 천재시니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느냐마는.” “병권아, 그게 아니야. 형은―.” 형이 허둥지둥 남자의 몸에서 자신의 것을 빼낸다. 그러자 아래의 남자가 작게 진저리를 치며 침대에 풀썩 엎어졌다. 하얀 허벅지 사이로 벌건 핏물과 정액이 흐르는 것이 아주 개같게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선명하게 보였다. “어이, 형씨. 당신 아니었음 나까지 완전히 속아 넘어갈 뻔했어. 너무 고마워서 이름이라도 알았으면 하는데.” 심장을 얼려서 아주 망치로 아작을 내듯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데도 입은 쾌활한 어투로 지껄이고 있었다. 정말 형이나 나나, 제대로 미쳤지. 아직도 보수적 윤리관이 남아있는 이 나라에서 남자끼리, 친형제끼리 사랑놀음 할 생각을 하다니. 꿈이 컸지. 개꿈치곤 달콤했지. “…….” 불행히도 형에게 강간당하다시피 한 남자는 말할 힘도 없는 모양이다. 뭐라고 입을 달싹거리긴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들리지는 않는다. “많이 아픈 것 같네. 부부간에 애정확인도 좋지만 적당히 해야 몸에도 좋지. 나야 쌩 라이브로 구경은 잘 했지만.” 멍하니 날 보는 형의 면상에 대고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튕겨줬다. “재밌는 거 보여준 댓가, 팁이야.” 똑똑한 사람일수록, 착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위선자가 많다고 했다. 고로, 세상에서 제일 가는 사기꾼은 성직자라고 했다. 스님들은 가발 쓰고 고기 먹으러 가고, 신부님은 외로운 밤 같이 보낼 남창 찾아 다니고, 목사님은 그 걸출한 입심으로 여신도들 등쳐먹고. 그런 세상이라고 누군가가 개탄을 했어도 난 믿었다. 아직도 세상에는 진솔한 사람이 더 많다고. 진실한 사랑은 있다고. 양아치인 척하지만, 겉으론 반항을 해대지만 형만은 반듯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바로 내 형이라고, 이 사람이 날 사랑한다고. 그렇게 외치 고 싶었는데. “이 씨발아, 지갑 공장엘 갔다오냐.” “아―.” 극진이놈이 침을 탁 뱉었을 때에서야 생각이 나 버렸다. “나 또 지갑 안 가져왔다.” “이 새끼, 이거 진짜―.” 누군가가 뒤에서 정말 빡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머릴 갈겨버린다. 그래, 그렇게 두들겨 패버려. 아무 생각도 안 나게. 이 머릴 깨버리고 형에 대한 것만 좀 쏙 빼주라. “그래서 그랬잖아. 이 놈, 돈 내기 싫어서 잔꾀 쓰는 거라니……야, 너 우냐? 울어?” “어, 이 새끼 좀 봐라. 야, 홍병권. 야아, 때린 거 미안해. 내가 죽일 놈이야. 그만 좀 짤아라. 응?” 제발 형을 잊을 수 있게. 이 가슴이 더 찢어지지 않게. 그렇게 하는 방법 없을까? “야, 여기가 너네 집 맞아? 아닌 척 하더니 생각보단 꽤 사네?” 나이트에서 처음 만난 연상의 그녀. 붉은빛의 입술이 누굴 많이 닮았다. 칠 만원이나 들였다는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누굴 많이 닮았다. 가죽 팬츠 아래로 드러나는 우아한 다리 곡선이 누굴 많이 닮았다. “일어날 수 있겠어? 고등어 주제에 겁도 없이 퍼마실 때부터 알아봤어.” “쿨럭―.” 여자가 내 몸을 부축해오자 몸에서 풍겨오는 향수냄새는, 그것만은 닮지 않았다. “미안한데 누나, 엘리베이터 버튼 좀 눌러줄래? 삼 층이야.” “너 지금 여기서 토하면 죽여버린다. 그러게 작작 좀 마시지. 술에 무슨 원수졌어?” 쨍알쨍알대는 여자의 얼굴이 귀여워서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대담하게도 엘리베이터 벽에 여자를 세워두고 찐하게 키스를 해버렸다. 텁텁한 루즈 맛이 느끼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하나도 다른 것이 없다. 오히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보드러운 유방의 감촉이 좋아 슬그머니 벌어진 블라우스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하앙―.” 역시 그렇고 그런 여자라는 걸 입증하듯 노 브라의 그녀의 가슴은 꽤나 감촉이 좋았다. 알맞은 크기의 유방을 주무르다 가운데 자리자은 유두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자 자극을 받은 유두가 빳빳이 일어났다. “너라면 끝까지 가도 좋아.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어.” 가느다랗게 비음을 흘리며 여자가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 나라고 못할 것도 없잖아. 안 그래? 형도 이랬겠지? 나이트나 빠-같은 데서 맘에 드는 연놈을 낚아서 호텔이든 한적한 골목이든 찐하게 즐기고 바이 바이.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수도 없이 그런 일을 저질렀잖아. 다시금 여자의 입술에 키스하며 꼿꼿이 선 유두를 손가락으로 희롱하는데 삼 층에 선 엘리베이터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고개를 든 순간, 어두운 표정으로 현관 앞에 서 있던 형과 다시는 눈이 마주쳤다. “병권아―.” 날 보고 애처롭게 이름을 부르다 옆에 붙어선 여자를 보고서는 노골적인 적의를 보였다. 이젠 아예 가면을 벗어 던지시겠다 뭐 그런 말씀인데. “너 아는 사람?” 병주 형의 눈이 여자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내 손에 꽂힌 걸 보고서도 느긋한 표정으로 여자가 말했다. “몰라, 옆집 사람인가. 그보다, 나 집에 들어가기 싫어졌어. 가까운 호텔이라도 갈까.” “아서라. 농담이었어. 밤새 술 퍼마신 놈 복상사 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담에 기회 되면 봐.” 여자가 자신의 가슴에서 내 손을 떼고선 엘리베이터 문을 닫아버렸다. 드르륵 하는 엘리베이터 문소리와 함께 잠시 정적에 휩싸인 복도. “병권아, 형이랑 얘기 좀 하자.” 누가 형이냐고 말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곁을 스치고 지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형이 뒤에 있건 말건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는 잠금쇠까지 잠궈 버렸다. 옷을 갈아입을 힘도 없이 그냥 침대에 누워있는데 쩔그럭거리며 열쇠로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병권아, 나랑 얘기하기 싫으면 그냥 거기서 들어.” 아아, 씨발. 정말 피곤해서 일찍 자야 되는데.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썼지만 문 밖에서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는 이불 속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니가 얼마나 충격 받았을지 충분히 알아. 아는데―날 한 번만 용서해 줄 순 없겠니?” “…….” “너가 나 때문에 많이 방황한 것처럼 형도 똑같이 널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방황했던 거야. 널 닮은 삶 만나서 관계도 맺어보고. 미친 듯이 술도 마셔보고. 그러면서 차츰 잊혀질 거라 믿었는데 그게 잘 안 되서 파트너에게 거칠게 대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젠 달라. 너만 사랑할 거야. 믿어줘. 그런 일 절대 없을 거야. 죽을 때까지 너만 사랑해. 너만 바라볼게.”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긴 잘도 지껄이지. 화가 치밀어서 벌떡 일어나 문을 확 열어제꼈다. 문 밖에 서서 간절히 이야기하던 형이 흠칫 놀란다. “탤런트 아들이라고 연예계 데뷔 연습이라도 하시나 봐? 다 좋은데, 난 좀 자야겠으니까 대본 연습은 딴 데서 하시지.” “미안, 거슬렸다면 이제 시끄럽게 안 할게. 대신 이 앞에서 조용히 무릎 꿇고 있을게. 니가 화가 풀릴 때까지. 그러면 되겠지?” 지가 지 몸으로 뭔 짓을 한다는데 누가 말려. 콧방귀를 뀌고는 문을 다시 쾅 닫아버렸다. 일주일을 못 간다고? 하루에 두 명씩과도 자고 그랬다고? 나랑 삼 주나 됐으니 이제 질릴 때도 됐겠네. 저러다 지치면 그만 두겠지. ……씨발. 내가 왜 형 걱정을 해? 저런 저질 새끼를. 스스로에게 욕을 하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한 대 쪼러 안 갈래?” “담배? 아직 야자 남았잖아.” “지랄. 내가 언제부터 공부했다고.” “그럼 그렇지. 인간 홍병권 한 몇 주 공부 열심히 한다 싶었다.” 완배놈과 그렇게 낄낄대며 옥상으로 향했다. 남겨진 애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봤지만 내가 언제부터 남 눈 신경 썼다고. 가볍게 무시해 버리곤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밤새 한 숨도 못 잤다. 밖에 무릎 꿇고 있을 리가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어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잔뜩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서 새벽녘에 물을 마시기 위해 일어났을 때 본 것은 정말로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형의 모습이었다. 놀라 쳐다보니 역시 올려다봐주는 그 눈이 시뻘겋게 출혈돼 있어 밤새 그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씨발―. 그렇다고 해도. 겨우 그 정도로 내 상처를 덮을 수 있을 것 같아? 웃기지 마. 그것도 일종의 쑌지 어떻게 알아. 삼주나 됐어도 내 동정 아직 못 따먹었으니 그거 노리고 있는 건줄 누가 알아. 누구누구가 밥을 챙겨주지 않은 이유로 아침부터 속 부대끼며 라면을 먹고 교복을 챙겨 입고 나갈 때까지도 형은 그 상태 그대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 까고는 혼자 학교로 와버렸다. 뭐, 학교까지 빼먹었을라고. “홍병권!” 눈앞에서 누군가 담배를 뺏어들더니 등짝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씨발, 국어담당. “이 새끼, 완전 똥배짱이네. 학교에서 담배를 펴?” 이번 달은 아무래도 재수가 옴 붙었나 보다. “잘못했습니다.” “됐고. 너네 형, 어떻게 된 거냐?” “뭐가요.” “오늘 이유도 없이 결석한 거 어떻게 된 거냐고. 아프면 아프다, 다른 이유가 있으면 전화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이대로 두면 사고결인 거 모르지는 않을 텐데.” 형이―오늘 결석했던가. 설마 아직 그대로 무릎 꿇고 있는 건가. 씨발, 지독한 새끼. “병주 형, 독감 걸렸습니다. 대신 말해 달라고 했는데 까먹었습니다. 병결로 처리해 주십시오.” 내가 왜 이딴 짓을 해야 돼. 병신 같은 새끼 때문에. 그 길로 바로 집에 왔는데 역시나 형은 아침에 본 그 자세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있다. 어제 새벽 한 시 정도부터 다음날 저녁이 될 때까지 물 한 모금 안 마시고도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는 독기에는 정말 감탄할 지경이다. “적당히 좀 해둬. 형이 그러고 있는 거 나한테 피해 끼치고 있는 거란 생각 안 들어?”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따르면서 말했지만 형의 눈은 아래에만 고정되어 있는 채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인간. “지금 그러고 있는 꼴, 나한테 용서를 강요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냐? 누가 언제 집에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보란 듯이 그러고 배짱 내밀면 나만 개새끼 소새끼 되는 거 아냐. 정말 나한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 일어나.” “…….” 듣는 건지 마는 건지 입만 꾹 다물고 있다. 정말로 내가 용서하기 전까진 절대 안 일어날 생각? “정말 끝까지 고집부릴―.” 열이 받쳐서 막 뭐라고 큰 소리를 내려는 찰나,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니가 이 시간에 집엘 다 있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꼭 말마다 비꼬는 어투로 말하는 인간, 엄마란 사람이다. “안 그래도 곧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바쁘니까 용돈 주려는 거 아니라면 끊어요.” “자식이라고 있는 게 말하는 싸가지하고는.” 웃기고 있네. 언제 정을 줘본 적이 있어야지. 차라리 팰 땐 패더라도 관심을 가져주는 아버지가 낫지. 엄마란 인간은 자신의 커리어 외엔 관심도 없는 인간이다. 간혹 한 달에 두 번 정도 들렀다가 생활비나 주고 가는 정도랄까. 그렇게 팽개쳐 놀 거면 낳기는 왜 낳았냐고. 그 지랄을 떨고 다니는 동안 당신 아들이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알기나 해? “아아, 내가 누구 자식인데요.” “너랑 말싸움할 생각 없다. 병주 바꿔.” 그래, 당신한텐 아들이 하나밖에 없지. 인물 좋고, 공부 잘 하고, 당신 닮아서 뻔뻔스러운 얼굴로 연기도 잘 하는. “전화 받으라는데? 엄마야.” 전화기를 들고 형을 쳐다봤지만 여전히 내 방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형은 미동도 없다. “……용서해 줘, 병권아.” “형이, 아파서 전화 못 받겠다는데요.” “많이 아프냐? 아까 병주 담임 선생님한테 결석했다고 전화 왔었는데.” “몸살감기에다 편도선이 많이 부어서요. 말을 잘 못 해요.” “오늘 촬영 일찍 끝나고 하니까 시간 내서 들어갈게. 형 데리고 병원에나 한 번 갔다 오든지.” 내가 시간이 남아도는 놈인 줄 아나. 저 새끼 어디가 이쁘다고 병원엘 모시고 가게. 잔소리 듣는 게 귀찮아서 대충 그러겠노라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오늘 저녁에 마나님 오신다는데 그때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 “니 좇대로 해! 너가 그러고 있든 말든 나완 상관없는 일이야!” 울컥 해서 소리 지르곤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렇게 애처로운 눈 하면 누가 용서해줄 줄 알고. 안 간다는 친구들을 꼬셔서 나이트에 오긴 왔는데 귀청을 찢을 듯한 음악과 현란한 조명속에 있어도 기분은 여전히 더러웠다. 아니, 즐거워 보이는 인간들 속에서 더욱더 가라앉는 기분이다. “그만 좀 마셔. 너 요즘 왜 이래.” 극인이 놈이 내 입에 물린 맥주병을 뺏아갔다. “한동안 마음잡고 공부 좀 하는 것 같더니.” “뻔하지 뭐. 맨날 꽃미소 날리고 다니다가 인상 쓰는 거 보면 모르겠냐. 여자랑 헤어졌구만.” 그러면―. 그러면 차라리 괜찮게. 헤어질 땐 괴로워도 다시 볼 일 없으니까 세월이 상처치료를 해준다지만. 난 뭐냐. 평생 보고 살아야 되는 난 어떡하라고. 그런 식으로 헤어져서 딴 년이랑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걸 봐야하는 그 기분은 어떻겠냐고. 그렇다고 씨발―. 이런 좆같은 기분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도 없는 모순된 감정을 어쩌라고. 옆에 놓인 맥주병을 따서 나발을 부는데 옆 테이블에서 왠 기집애가 다가왔다. “일행이 네 명인가 봐요. 우리랑 쪽수도 맞는데 같이 놀래요?” “아, 그게―.” “뭐, 괜찮잖아. 난 오케이야.” 극인이놈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길래 한 마디 해버렸더니 금새 기집애들이 쪼르르 와서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김선아야.” 내 옆자리에 앉은 미니스커트의 기집애가 쫑알댔다. “너희들 고딩들이지? 그렇게 입어도 척 보니까알겠던데.” “고딩들이 돈이 어딨겠냐? 오늘은 이 누나들이 화끈하게 쏜다.” “오올, 진짜요?” “누님, 싸랑해요.” 언제 만났다고 금새 뻔뻔해진 연놈들이 키들거리며 건배를 외쳐댄다. “넌 왜 건배 안 해?” 선안지 뭔지 하는 기집애가 못마땅하다는 듯 입을 삐죽댄다. “러브샷할까?” “좋지.” 둘이서 팔을 휘감고 병맥주를 마시니 옆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분위기도 좋은데 우리 춤 추러 갈까?” 어떤 기집애의 제안으로 모두는 우르르 스테이지로 가기 시작했고 평소 주량보다 훨씬 많이 마셨던 나는 곧 휘청거리며 선아라는 기집애의 팔을 붙들었다. “괜찮아?” 괜찮을 리 없다. 절대 괜찮을 리 없잖아. “많이 취한 것 같애.” 건드리지 마. 자꾸 나 건드리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발해 버릴지도 몰라. “내 팔 잡고 테이블에―.” 뭐라고 쫑알대는 기집애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막아버렸다. “흡―.” 기집애가 놀란 듯 잡힌 어깨를 떨쳐내더니 강하게 내 뺨을 후쳐쳤다. 쫙―. “이거 정말 미친 새끼 아냐? 엇다 대고 주둥일 갖다대? 드럽게스리―. 아이, 재수 없으려니까 별 변태같은 새끼가 지랄이야 진짜.” 히스테릭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스테이지에서 사람들이 죽죽 빠져나간다. “홍병권.” 얻어맞은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문헌록이 내 앞에 섰다. “너한테 정말 실망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는 별로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깽판쳐 버렸으니 당연한 거지만 집에 또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방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형의 뒷모습이 보인다. 엊저녁부터 지금까지 거의 이십사 시간을 이러고 있었다는 건가. 그 모습에 또 한 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밥은―. 밥은 먹고 그러는 거야?” 먹었을 리가 없지. 속으로 짜증을 부리며 거실로 들어가려다 누군가와 딱 마주쳤다. “홍……병권…….” “…….” 쭈뼛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저 놈은 틀림없는 형의 섹스 파트너. 잊고 싶었던 기억 속에서 어제의 섹스가 고스란히 살아났다. “뭐야, 이제는 아주 드러내놓고 집에 들이시겠다. 평소에도 나 없을 때 자주 왔었나 봐? 부엌까지 맘대로 사용하는 거 보면.” 기집애같은 놈의 손에 들린 죽그릇을 보며 비아냥거리자 쭈뼛거리던 놈이 아주 사색이 된다. “그런 거 아냐. 오늘 처음 온 거야. 정말이야. 믿어줘, 병권아.” 내가 믿을 사람이 없어서 너넬 믿냐. 병주는 나 같은 애들이 집에 찾아오고 그런 거 엄청 싫어했어. 그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 진짜야……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병주 형의 눈치를 살핀다. 혹시라도 내 오해를 사서 병주 형의 미움을 받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좋겠네, 누구는. 애인이 죽도 만들어주고. 섹시한 애인이 앞에서 알짱대는데 그만 일어서고 싶지 않아? 나 같으면 아랫도리가 아주 달아오를 것 같은데. 하긴 나 오기 전에 벌써 한 판 했는지 알게 뭐야.” “병권아.” 비아냥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나를 기집애같은 놈이 붙잡았다. “제발 부탁이야. 병주 좀 용서해주면 안 돼? 어젯밤부터 내내 저러고 있었잖아. 저러느라 밥 한 술 못 뜨고 물 한 모금 못 마셨잖아. 저러다 쓰러지겠어.” “제발 좀 쓰러져주지. 그 구역질나는 면상 좀 안 보게.” “홍병권! 너 그게 형한테 할 소리야? 병주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이 정도까지 반성을 하면 남이라도 용서해주겠어. 그런데―니 형이잖아. 남도 아니고 니 형이잖아.” 그렇기 때문에 더 용서가 안 돼. 알아? 그 엄청난 신뢰가 무너지는 소리를.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난 고아가 되버린 거야. 내겐 이제 형이 없어. “너 같은 게 내 형이라는 사실이 싫어. 더럽고 구역질 나. 뒷골목 헤매는 창녀들 남창들 만진 그 손으로 그 입으로 날 만지고 키스했어. 온몸에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것 같아. 꼴도 보기 싫으니까 밖에 어디든 나가서 좀 죽어넘어져주라. 그럼 속 시원하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따귀를 강하게 얻어맞았다. 아, 씨발. 아까 맞은 데 또 맞아서 웅웅거리는 귀의 소음이 더 커져간다. 기집애같이 생긴 새끼가 손은 엄청 매운데. “서영준!”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형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이름을 불린 놈이 흠칫한다. “이리 와.” “벼……병주야.” “이리 안 와?” “…….” 형의 고함소리에 영준이란 놈이 가까이 다가가자 형이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 그대로 뺨을 갈겨버렸다. 쫙―. 쿠당―. “악!” 영준인지 뭔지 하는 놈이 날 때린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엄청난 힘으로 맞고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졌다. “일어나.” 약해보이는 흰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른 영준이 입술을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병권이한테 사과해.” “…….” “…….” “……못 해.” “당장 사과 안 해?” “못 해! 너한테 죽으라고 그랬어! 넌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난 못 참아!” “니가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야. 욕을 먹어도 내가 먹어. 넌 상관 말고 꺼져.” “참견할 자격 있어. 니가 인정하든 말든 난 너랑 육 개월을 사귄 애인이야. 저 독한 녀석한테 니가 어떤 꼴 당하는지 똑똑히 볼 거고 버림받는 너 꼭 내가 데려갈 거야.” 분명히―두 번 다시 형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린 완전히 끝났다고. 용서의 기회는 절대 없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그런데 왜 저 녀석의 말에 이렇게 상처받고 있는 거야. 왜 저 두 사람의 티격대는 모습에 화가 치미는 거야. “씨발. 존나 시끄럽네. 둘 다 안 꺼져?” 순간적으로 욱해서 침대 옆 선반에 있던 뭔가를 집어 형에게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뭔가 설명할 수 없는 둔탁한 소리가 나며 형의 얼굴에 맞고 튕겨나간 그것이 바닥에 떨어져 원을 그린다. 유리로 세공된 재떨이. 그것이 빙 도는 것을 보다 형의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영준이란 놈이 내 어깨를 흔들며 외치는 소리도 아무 것도 안 들렸다. 그저 시뻘건 피를 끝없이 흘리며 날 바라보고 있는 형의 얼굴 밖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냥 시끄러워서, 화가 나서 뭘 가볍게 던지려던 거였는데.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애 얼굴이 왜 이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리고 엄마가 들이닥친 것 같다. 엄마가 무릎을 꿇고 있는 형과 그 앞에 서 있던 나를 번갈아보며 뭐라고 외친 것 같은데 두들겨 맞은 귀가 아직도 멍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아니예요, 엄마. 그게 아니예요.” 피범벅이 된 형의 입술에서 나온 소리만이 들려온다. “내가 실수로―.” “병원……가……아……급실이…….” “아주머니……저……차……으시죠…….” 바닥에 흥건한 피에 완전히 당황해버린 엄마를 진정시키고 형을 일으켜 밖으로 데려가며 영준이 독기서린 눈빛으로 날 봤을 때에서야 멍해진 귀가 좀 진정되는 것 같다. “너 절대 그냥 두지 않아. 병주가 당한 열 배로 갚아줄 거니까 각오하고 있어.” ‘너 절대 그냥 두지 않아. 병주가 당한 열 배로 갚아줄 거니까 각오하고 있어.’ 또 그 꿈이다. 그 일이 있고도 한 달 반이나 지났지만 밤마다 영준이 내게 살의로 번뜩이는 눈을 하는 꿈을 꾸고 있다. 사실은 영준의 그 섬뜩한 눈빛보다 더 날 신경 쓰이게 하는 건 형의 눈이었는데. 재떨이에 맞아 찢어진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눈에까지 들어가 잔뜩 적시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형은 날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날 용서해 달라고, 날 사랑해달라고. 형을 보기가 영 껄끄러웠지만 말 그대로 형제이기 때문에 영원히 안 보고는 살 수가 없다.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다가 결국은 형이 기다리고 있는 식탁으로 갔다. 다행히도 재떨이는 눈썹을 맞혔을 뿐 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눈썹을 꿰매는 과정에서 잘못된 건지 실밥을 뽑았을 때 형의 눈썹과 이마를 걸쳐 작게 흉터가 남고 말았다. 덕분에 형의 빛나는 미모에 일조를 하던 가늘게 정돈됐으면서도 묘하게 짙어보이던 그 눈썹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말았다. 흉터가 생긴 부분에는 눈썹이 자라지 않게 된 것이다. 형이 다 잘못한 거야. 이건 인과응보라고. 이런 식으로 속으로 중얼거리며 우거지국을 휘휘 젓다 결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나 먼저 학교 간다.” “…….” 대답이 없어 뒤를 한 번 흘끔 보지만 형은 입을 꾹 다문 채 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바로 저것이다. 눈썹의 흉터와 함께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있는 것. 사고 이후부터 형은 석고대죄 흉내 내는 걸 그만 두었고 말수도 눈에 띄게 줄어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나에게 말을 걸지 않게 되었다. 한 집안에 있어도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우리는 점점 담을 쌓아가고 있다. 형―. 얼굴을 그렇게 만든 날 원망하는 거야? 날 이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뭐라고 말 좀 해봐. 한숨을 쉬며 지나가는 아파트 정문에서 화려하게 만개한 장미꽃이 더욱 바람에 흔들흔들 자태를 뽐내고 있다. 칠월 중순, 여름이다. 더워져가는 날씨 때문인지 대부분이 윗도리를 벗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간간이는 집에서 싸온 얼음으로 장난질을 모습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역시 짜증과 다툼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학교 3학년 일진들, 어제 휘문고 덮쳤다드라.” “뭐야, 어쩐지 좀 소란스럽다 싶더니. 그 인간들은 더운 것도 모르나. 하여간 정력도 좋은 놈들일세.” “그래봤자 근신 정돌걸. 최후영 선배네 집 장난 아니라던데. 무슨 연예 기획사 한다고.” “최후영 선배가 왜 나오냐.” “너 몰랐냐? 그 선배가 우리 학교 캡짱이야.” “에에? 장근호 선배가 짱 아니었어? 최후영 선배는 삼짱이지.”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장근호는 명목상의 짱이고 실질적인 짱은 최후영이라더라.” “존나 얍삽한 새끼 아냐? 지는 피보기 싫어서 뒤에 숨어있는 거잖아.” “어쩐지 인상이 드럽다 했지. 눈이 쭉 째져갖고…….” 앞자리에서 떠들어대는 놈들의 수다가 짜증이 치밀어 가방을 챙겨들고 뒷문을 여는데 뒤에서 다급히 외치는 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홍병권, 어디 가? 너 오늘도 야자 날르면 담임이 빠따 스무 대랬어.” “좇까, 새끼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담배를 입에 물고 교문을 나오는데 소문의 당사자가 웬 녀석들을 세워놓고 삥을 뜯는 것이 보였다. 후리후리한 키에 조각같은 콧날, 찌를 것 같은 눈매. 후영 형이다. 있는 것들은 끼리끼리 친하다고 기획사를 하는 후영 형의 아버지와 탤런트인 내 아버지, 스폰서라고 할 수 있는 제연이네 아버지는 꽤 오래된 친구였다. 덕분에 후영 형과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보통 아이랄 수 있는 나와 병주 형, 네 중에서 제일 어린 주제에 잔인한 놈이었던 제연이와는 다르게 정말로 마음이 섬세한 것이 바로 이 형이었다. 남자다운 외모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내성적인 형이 언젠가 부터 거칠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아무도 제지할 수가 없게 되 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깡패놈들과 어울려 다니며 폭력을 일삼고 좀 이쁘다 싶은 여자애들은 강제로라도 아래에 깔아버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형이 그렇게 변한 이유는 아주 조금 짐작이 간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면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는 바로 그런 것이겠지. 후영 형과 겹쳐져 병주 형의 모습이 지나갔다. 아니, 설마―. 그럴 리는 없을걸.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니, 넌 아무 것도 몰라. 실제로 십 육년이나 한 집에 살면서 실체를 모르고 있었잖아. 형이라고 폭주하지 말란 법 있어? 지금까지보다 더 심하게 망가지지 말란 법 있어? “제길―.” 정말 용서해주긴 싫지만 형을 증오하는 마음보단 그래도 역시 난 형을 사랑해. 과거야 어쨌건 지금은 날 사랑하고 있고, 깊이 뉘우치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 용서해 줘야겠지……? 집으로 가려던 걸음을 돌려 다시 형이 있는 학교로 가기위해 몸을 틀던 찰나, 바로 앞에 서 있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서영준.” “오랜만이네.” 영준이 내게 빙긋이 웃었다. “뭐야, 나 따라온 거야?” “응. 할 말이 있어서.” “뭐야, 빨리 말하고 꺼져. 나 지금 바쁘니까.” “여기선 좀 곤란해.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여기서 가까워.” 십분 뒤, 정말로 난 서영준의 집에 들어와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거기다 형의 파트너였던―연인이란 말은 절대 인정 못 한다― 놈의 집에 온다니 꺼려질 일이었지만 이 녀석에게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주스 마셔.” 녀석이 내미는 주스를 한 번에 마셔버리곤 녀석을 쳐다봤다. “이제 말 해. 나 다시 학교가야 돼.” “야자 땡땡이치려던 거 아니었어?”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그래…….” 녀석이 씁쓸하게 웃었다. “너한테 사과하고 싶어. 어떻게 되든 널 상처 입힌 주범이 되버렸으니까. 차라리 내가 입만 안 열었음 두 사람 지금쯤 잘 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 내가 너무 경솔했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사과할게. 그리고 다시는 병주 앞에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 병주 그만 용서해 줘. 병주 지금 많이 아파하고 있어. 너가 놀란 만큼이나 벌을 받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 좀 용서해줘. 염치없지만 부탁할게.” 녀석이 내 앞에 고개를 숙인다. ……제길, 너가 그렇지 않아도 그럴 참이었다고. “내가 형을 용서하건 말건 너완 상관없는 일이야. 할 말 그것뿐이라면 간다.” 옆에 놓인 가방을 들고 막 일어나려는 찰나―.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뭐야, 이상해. 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 건데. 다리를 지나서 묘한 기운이 목까지 차올라 겨우 앉아있던 의자에서 바닥으로 넘어지며 겨우 입을 열었다. “너……뭐……주스…….”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중얼대는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서영준이 작게 웃었다. “병신같이 아무 의심도 없이 날 따라오는구나, 너.” “왜……왜…….” “왜긴 왜야. 내가 전에 말했잖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있으라고.” 방바닥이라도 박박 기어볼까 싶었는데, 식물인간이 되 버린 것처럼 정신은 멀쩡한데 몸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질 않았다. 대체 뭘 먹인 거야. 수면제도 아니고. 이런 약을 고등학생이 어떻게 수중에 넣은 거야. 그보다 날 이렇게 만들어서 어쩌려는 거야. 내 눈빛을 읽은 듯 서영준이 말을 토해놓는다. “어쩌긴. 그 잘난 몸뚱이 밟아놓으려는 거지. 널 위해서 특별히 초대한 사람 있거든.” 녀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방인 듯한 곳의 문이 열리며 우리 학교 옷을 입은 서넛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잔인하게 웃으며 날 내려다보는 얼굴들은 분명 본 적이 있는 놈들. 후영 형 밑에 있는 그렇고 그런 질 나쁜 놈들. “이 녀석이야?” “이거 홍병주 동생 아냐? 양아치같은 새끼.” “잘 좀 부탁해.” “물론. 그보다 약속은 지키겠지?” “물론이지.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킨 적 있어? 내 부탁만 들어주면 확실하게 서비스 해준다니까.” 녀석들 중에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는 한 녀석이 영준에게 거래조건을 확인하자 영준이 나긋나긋한 태도로 녀석의 몸에 팔을 감고는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아씹, 못 참겠다. 지금 하자.” “안 돼. 우선은 저 녀석부터 손봐주고.” 키스만으로 금방 달아오른 녀석이 영준을 껴안으려하자 영준이 가볍게 밀쳐내며 날 가리켰다. 퍼억―!! 어지간히 영준이 제시한 조건이 급했던지 녀석이 주먹을 날렸다. 그것을 기점으로 주위에 서 있던 놈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팔과 배, 가슴, 다리 할 것 없이 주먹과 발길질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퍽―! 퍽―! 퍼억――! 온 전신이 마비가 되버려 반항도 한 번 못 해본 채 기침만을 내뱉었다. “쿨럭―쿨럭―.” 뭐, 나란 놈 어차피 겉멋만 잔뜩 든 양아치니까 이런 진짜 깡패새끼들과 일대 사로 붙어선 전혀 승산도 없겠지만. 퍼억―. 뻐드렁니 놈의 주먹이 턱에 작렬하자 입안이 터졌는지 어쨌는지 피맛이 감돌았다. 확인할 순 없지만 입안에 이물감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 이빨이 하나 이상은 나간 것도 같다. 그런데 서영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학교 가서 건들거리면서 어깨에 후까시 좀 넣고 다닌다고 해도 제대로 한 번 싸워본 적이 없다는 거 아는 인간은 다 알 거야. 더구나 이 숫자를 상대론 더더욱 택도 없는데 왜 이런 번거롭고 지저분한 방법까지 써야했냐. 멀리서 팔짱낀 채 날 보고 있던 영준이 나직이 말했다. “이건 싸움이 아니야, 병신아. 린치지. 시쳇말로 다구리. 알아들어? 오늘 넌 나한테 완전히 밟히는 거야.” 퍽―. 퍼어억――. 또 그 뻐드렁니다. 놈이 내 가슴을 발로 세차게 짓누르자 눈에 불꽃이 튀는 듯한 환상이 떠오르며 가슴이 따끔따끔한 통증을 호소해왔다. 왜―. 왜 이래야만 하는데. 내가,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형을 상처 줬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얼굴에 사라지지 않을 흉터를 남겨줘서? 누군가 내 팔목을 붙잡더니 몸을 뒤로 확 뒤집는다. 빠각―. “아아아악―――!!!” 어깨뼈가 어긋난 건지 입에서 엄청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며 저절로 눈물이 주륵 나왔다. 언뜻 돌아본 눈에 팔이 등 쪽으로 기형적으로 뒤틀린 것이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잖아. 우리 셋 중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난데. 왜 내가 너에게 이런 꼴을 당해야 돼. 난 그저 친형을 아주 약간, 좋아한 것뿐인데. 그런 날 깨운 것도 형이고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형의 본모습을 보여 터져버린 심장을 갖게 한 것도 바로 너야. 사내놈 들끼리 좇질하는 게 그렇게 좋으면 네놈들끼리나 붙어먹으면 되지 왜 날 이렇게 아프게 해. 왜, 왜. 내 눈에 고인 눈물을 보며 영준이 하품을 했다. “이 정도밖에 없어? 너무 시시한데―.” “서여주……너……주겨……버……아악――!!” 안 돌아가는 혀를 억지로 꽈가며 한 말은 제대로 끝을 맺을 수도 없다. 스포츠 머리를 한 녀석이 내 손가락을 한 가락 한 가락 뒤로 꺾기 시작했기 때문에―. 빠각―. “어허어―제바……ㄹ…….” 두둑―. 이빨이 나가는 것도 갈빗대가 나가는 것도 이 정도의 고통에 비교할 수가 있을까. 손가락의 예민한 고통에 차라리 기절해 버리고 싶은 심정밖에 없다. 뚜둑―. “이 새끼 봐라. 어지간히 아프긴 아픈 모양이네. 침을 아주 질질 흘리네.” “야, 서영준. 더 하고 싶어도 이 이상은 안 되겠다. 이 녀석 눈 완전히 갔는데.”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툭툭 차고 있지만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아주 가루가 나는 것 같은 고통에 숨만 겨우 몰아쉬는 내 턱을 휙 잡아 올리더니 영준이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기절하긴 아직 이르잖아. 이제 이 라운드로 갈 시간이야, 홍병권.” 2라운드라니. 여기서 더 이상 날 어쩔 건데. 정말 날 병신만 들 생각인거냐. 모르긴 몰라도 너, 그 정도의 일 지저르고도 무사할 만큼 큰 빽은 없는 것 같은데. “나한텐 병주가 전부였어. 나한테 마음을 주지 않아도―뒤로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 그런데 겨우 너 따위에게 빼앗긴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애?” 노멘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가면처럼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영준이 입술만을 움직여 말했다. 그렇다고 니가 날 밟는다고 해서 형이 네게 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로 어리석은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제일 소중한 걸 잃어버린 상태기 때문에―난 지금 더 이상 두려운 게 없는 상태거든? 이렇게 무너지나 저렇게 무너지나 내가 끝장날 거란 건 같아. 이왕 가는 걸 나와 같이 가려고. 너랑 병주, 순순히 잘 되는 꼴 눈꼴셔서 도저히 못 봐주겠다고.” 하얀 가면과도 같은 무표정. 이것은 서영준이란 녀석의 본모습이다. 형의 모범생의 가면 뒤에 추악한 본모습을 가지고 있듯 형의 앞에서는 순애보적인 가면을 썼던 녀석의 본모습은 눈에 거슬리는 상대는 어떤 수단을 사랑해서라도 기필코―그것이 설령 몸을 파는 행위일지라도―없애 버리는 냉혈한의 얼굴이었다. 어느 샌가 누군가가 내 옷을 잡아 뜯고 있었다. 벗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잡아 뜯어서 걸레를 만들고 있었다. “혹시라도 약 효과가 안 좋아서 너가 도망쳐버리면 곤란하니까. 옷도 없는데 설마 발가벗고 뛰쳐나갈 재준 없겠지?” 그 약, 무슨 약인진 몰라도 효과 아주 죽이는데. 너가 걱정할 필요 없이 나, 지금 기분 같아선 당장이라도 너 목구멍 틀어쥐고 숨 넘어갈 때까지 조이고 싶은데 손도 하나 까딱 못 해서 너네가 나 두들기기 전에 나 스스로 분을 못 이겨서 홧병으로 죽을 것 같거든. “좀 나긋나긋한 새끼라야 안을 맛도 나지, 이런 새끼 면상 보면 섰던 좆도 죽겠다.” 양키스 캡을 눌러쓴 놈이 하도 밟아대서 부러진 지 오래인 내 다리 사이로 팬티를 벗겨내며 인상을 썼다. “그래도 벗겨놓으니 속삭은 제법 봐줄만 하네. 지 형 닮아서 그런지 피부는 절라 하얗잖아.” 하도 얻어터져서 멍투성이인 내 몸을 녀석이 거친 손으로 사정없이 문질러대자 잠시 잊고 있었던 통증이 또다시 몰려왔다. “아……아…….” “재수 좋은 줄 알아. 그 녀석 버진이걸랑.” “오, 그럼 내가 첫남자인 거야? 영원히 기억에 남게 해줘야겠네?” “뭐야, 버진이었어? 씨발, 누군 좋겠네. 버진도 따먹고.” “너희들―.” 내 가슴팍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뻐드렁니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처녀 길들일 땐 어떻게 하는 줄 알아? 처음엔 여기가 좁으니까―.” 녀석이 내 한 쪽 종아리를 들어올리곤 아래로 드러나는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친다. “부드럽게 천천히 넓혀주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뚫어버리는 거야. 바로 이렇게.” 녀석이 말과 함께 내 다리를 어깨에 걸치곤 정말로 한 번에 항문을 꿰뚫고 들어온다. “커……컥…….” 비명도 나오지 않는 상황. 한 번에 뚫고 들어온 놈의 것이 장속을 꽉 메우고 있는 통에 숨조차도 제대로 뱉을 수가 없었다. 그곳을 대변 배출 외의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터라 이곳이 좁다고도 느끼지 못했다. 더구나 원래 용도인 여자의 그곳처럼 성교시 남자의 것을 부드럽게 들이기 위한 윤활액도 나오지 않는 메마른 곳에 놈의 커다란 성기가 들어오자 견뎌낼 리 없는 항문은 찢어져 따끔따끔한 통증을 전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걸레처럼 찢어져 피를 질질 흘리고 있지 않을까. “아―씨발―.” 내 몸 속에 성기를 박아 넣은 놈이 오만상을 찌푸리자 옆에 서 있던 놈들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들어온다. “절라 조이네. 이 새끼, 내 좆 끊어먹으려고 환장했어? 힘 안 빼?” 녀석의 손이 내 뺨에 작렬한다. 안 그래도 이빨 하나가 빠져 피를 질질 흘리고 있던 터에 녀석이 또 한 번 갈겨버리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던 어금니 하나가 또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겨워 멈춰져가던 피가 다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도. “쿨럭―쿨럭―.”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따귀를 갈긴 것으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핏물 때문에 기침을 함으로써 몸 근육의 긴장이 살짝 풀린 것을 놓치지 않고 삼분의 이쯤 들어왔던 놈의 것이 완전히 뿌리까지 박혀버렸다. “허억―.” 정말 기분이 더럽게도 더 이상 찢어질 수 없을 정도로 놈의 것이 박힌 자리가 고통스러워 오는데,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은데 놈의 성기를 둘러싼 북실북실한 털들이 항문주위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내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제……제……ㅂ……ㅏ…….” 이제는 정말이지, 자존심이고 뭐고 진창으로 내팽개쳐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눈물이 턱을 흘러 목덜미를 간질이고 있고 턱은 또 어떻게 잘못 얻어맞은 건지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아 벌려진 그 사이로 피와 섞인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완전히 개같은, 개보다도 못한 그런 모습으로 나는, 서영준이라는 또 하나의 위선자 앞에서 철저하게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제발 빨리 좀 움직여 달라고?” 내 귓가에서 녀석이 키들거린다. “걱정하지 마. 니 여기, 너무 뜨겁고 조여서 진짜 못 참겠거든.” 절벅절벅―. 찢어진 항문 부위에서 흐른 피가 장 안에까지 스며들어 놈의 것이 움직일 때마다 소름끼치는 음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박혀있던 것을 놈이 천천히 빼내는 듯 하더니 밖에까지 완전히 빼버린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가 무섭게 다시금 빠른 속도로 놈이 박아왔다. “흐윽―.” 내장이 온통 짓눌릴 정도로 강하게 박아오는 통에 거실 한 구석에 널부러져 있던 몸이 위쪽으로 쏠려 올라가 벽에 뇌진탕을 일으킬 정도로 세게 부딪쳤다. 지잉―. 순간 눈앞이 온통 잿빛으로 변하며 머릿속으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정수리를 제대로 부딪친 것일까. “야―야―. 홍병권.” “이 새끼, 기절했나?” “안 움직이는데.” 눈앞이 여전히 보이지 않는 가운데 누군가가 내 볼을 툭툭 두드려대는 것만이 어슴프레 느껴졌다. “씨발, 시체 강간하는 것도 아니고. 변태같잖아, 내가. 안 일어나?” 그러면서도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내 몸 안에는 여전히 놈의 것이 요동을 쳐대고 있었다. “킬킬, 나 이 새끼 깨우는 법 알아.” 이 목소리는 아마 그 양키스 캡 놈 목소리였지. 꼭 창문틀 긁는 것 같은 신경질적인 목소리. 너희들―. 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짐승들도 이런 식으론 안 할 거다. 서영준이라면 몰라도 나, 너희 눈에 거슬린 적 한 번도 없었어. 거슬리긴 커녕 니네 얼굴도 거의 처음 봐. 그런데―. 단지 서영준이 몸뚱이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 수가 있는 거야.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나를―. “아아아악―――!!!” 뭔가 미칠 것 같은 통증이 가슴에서 느껴짐과 동시에 멍하게 풀려버린 시야가 다시 밝아왓다. 끔찍하리만치 선명하게 날 범하는 놈들의 재밌다는 얼굴이 보이고 그 너머에서 식탁에 앉은 채 다리를 꼬고 날 보고 있는 서영준의 얼굴. 그리고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치지직―. “아아아악―――!!!” 참을 수 없는 뜨거움과 후벼파는 듯한 통증이 생생하게 전달되는데. 눈앞에서 담뱃불에 타면서 시뻘겋게 살이 죽는 게 보이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래서 열심히 피스톤질을 하며 헉헉대는 놈의 움직임에 맞춰 흔들거리는 일 뿐. “어때, 죽이지?” 양키스 캡의 키득거리는 얼굴을 밀치고 스포츠 머리가 라이터를 들이댔다. “이 새끼, 깔리는 주제에 좆은 내 꺼보다 더 크네. 재수없는 새끼.” 놈의 투박한 손이 내 성기를 뒤덮은 음모를 휘어잡더니 라이터의 불을 갖다댄다. “으……으아…….”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내가 뭐든지 다 잘못했다고. 뭘 잘못했는진 몰라도 다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이 고통에서 제발 좀 해방시켜 달라고 하겠는데. 지지직―. 음모가 타는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새끼, 이 거 순 변태 아냐? 거기 털 태워서 어쩌겠다고.” “왜, 재밌잖아. 야, 이것 봐라. 완전 민둥산 됐네. 너 이제 여자랑 그 짓은 다 했겠다. 피부까지 타서 털 안 날지도 몰라. “킬킬킬, 미친 새끼.” “머리도 태워볼까?” “―――!!!” 형―. 제발, 제발 부탁이야. 나 좀 살려줘. 응? 나 사랑한댔잖아. 죽을 때까지 나만 바라본댔잖아. 그래놓고, 그거 다 헛소리였어? 내가 이렇게 아픈데―치욕스러운데. 왜 구하러 오지 않아. 지금 어딨는 거야. 제발, 형. 길었던 머리카락이 타들어가며 불이 두피까지 근접했는지 두피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계속해서 형만 목타게 부르던 나는 까마득하게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눈을 뜨면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모르는 놈들에게 강간당하는 것도, 그 전에 형이 다른 녀석과 섹스하는 걸 본 것도, 형과 내가 서로 사랑한 것도 다 꿈이고 그저 난 완벽한 형에게 콤플렉스와 동경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불만감에 찬 양아치일 뿐이라고. 그렇게 작게 속삭이며 눈물로 빡빡해진 눈을 떴다. 그리고―눈을 떴을 때 또다시 다가오는 잔인한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헉헉―. 죽여, 진짜. 처녀라서 그런지 존나 조이는 게 감칠맛 입빠이야.” 어느 새 내 위로 올라탄 녀석은 스포츠 머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첫 번째의 사정이 아니라 돌고 돌아 몇 번째의 사정인 듯 이마에 땀까지 흘려가며 스피디하게 정신없이 박아올리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동안 말라버린 입을 침으로 축여보려고 목울대를 움직이니 뭔가 입안에 약간 고여 있던 뻑뻑한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비릿하게 맡아지는 그것의 정체가 정액이란 걸 깨닫고 구역질이 속에서 튀어나왔다. “우우…….” “토하기만 해봐.” 어느 샌가 양키스 캡을 쓴 녀석을 식탁위에 앉혀놓고 그 위에서 헉헉대며 허리를 돌려대던 영준이 말했다. “토해는 거 그거 다 니가 다시 먹어야 돼.” “허억―.” 내 위에 있던 녀석이 작게 진저리를 치며 내 몸 위에서 자신의 것을 빼냈다. 꽉 맞물려있던 놈의 것이 빠지자 아직 수축이 덜 된 항문으로 장속에서 미지근한 뭔가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잘 즐겼으면 마무리도 확실히 해.” “이거 어때?” 놈들이 한 쪽에서 뭔가 의논하는 것 같더니 잠시 뒤 빈 쌀 포대를 들고선 히죽이며 날 내려다봤다. 삽 십 분 쯤 뒤, 나는 벌거벗은 그대로 그 쌀 포대 안에 처박혀 놈들의 손에 어디론가 옮겨졌다. 녀석들은 흙바닥 같은 곳에 내던지듯 날 버려놓고 마무리로 옆구리를 한 번씩 발로 차주고는 웅성대며 멀어졌다. 잔뜩 긴장해 몸을 움츠려있던 나는 놈들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몸을 풀 수 있었다. 아아―. 이제, 이제 끝난 거야. 좀 쉬어도 되는 거야. 잠이 들었던 건지 아니면 산소가 적은 포대 속에서 정신을 잃었던 건지는 기억할 수 없다. 솔직히 그 상황에서 제정신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미친놈일 거니까. 하여튼, 비몽사몽하는 그 순간에도 정말 생각한 게 있다면 이번에 다시 깨어났을 때도 또 놈들에게 능욕당하게 된다면 마음 독하게 먹고 정말 혀를 깨물어 버릴 거라고. 혀가 굳어져 말도 못하게 된 주제에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히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놈들의 모습은 비치지 않아서 혀를 깨물어야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눈물 때문에 빡빡해진 눈을 간신히 밀어올리고 보니 온통 하얀색 천지에 소독약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병원인 것 같았다. 누군가 호기심 많은 사람이 포대를 풀고 피투성이 시체가 들어있는 걸 보고는 얼마나 질겁을 했을지. 자세가 불편한데다 상황이 궁금해져 몸을 한 번 뒤척거리자 온몸을 칼로 찌르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하체에서부터 올라왔다. 강간을 당한 항문에서부터 척추를 타고 목뼈까지 찌르르 하게 울리는 그 고통이 얼마나 대단한지 금새 몸에 식은땀이 돈다. 하는 수 없이 고개만 살짝 돌려 옆을 보니 침대 옆 긴 의자에 엄마가 널부러져서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누운 것이 아니라 널부러져서 자는 것이다. 그 깔끔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중견 여탤런트가 부스스한 머리에 대충 걸치고 나온 듯한 슬리퍼를 신고 눈가에는 눈물과 마스카라가 범벅이 되어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 “엄마―.” 잠결에 뒤척이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 작게 불렀더니 곧 움찔하며 잠에서 개어나 날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병권아―.” “응.” “아이고, 내 새끼야.” 그 큰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더니 성한 쪽 손을 붙잡고는 아주 대성통곡을 한다. “아이고, 내 새끼 어떡하라고―어어―어떤 미친 놈들이―때려죽일 놈들이―.” 도대체 어떤 놈이야. 나 분명 깨어나면 부모님한테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그냥 단순한 학원폭력일 뿐이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나 어디에 있었어?” 아예 내 손을 흠뻑 적셔버릴 듯한 기세로 울던 엄마가 고개를 든다. “니네 학교 운동장.” 씨발, 서영준 개새끼. 학교 운동장에 그렇게 버려놨으면 나 이제 학교는 다 간 거네. 누가 발견했든 세상에 비밀이란 건 없으니 벌써 소문 짜하게 퍼졌을 거고. “그래? 그럼 학교 그만둬야겠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학교 열심히 다녔다고. 맨날 아홉시 넘어서 담치기나 하고 야자 시간에 옥상에서 담배나 피우던 놈이. 그날도―그렇게 야자 땡땡이만 안 쳤어도 그런 일은―. “그래, 병권아. 학교 휴학하든지 해서 몇 달 쉬자. 너 몸도 마음도 너무 상해서 이대로는 학교 못 다녀.” 병신같이 사내놈인 주제에 같은 사내놈들한테 성폭행당한 아들 이야기가 알려지길 원치 않는 건 아니고? “잘 아는 집에 가정교사가 있는데 밤에 잠도 같이 자고 생활하면서 잘 돌봐준대. 그 사람한테 한 번 부탁해 보자.” “엄마 좋을 대로 해.” 귀찮아, 다 귀찮아. 온몸이 욱신거리는 상황에서 잠깐동안이라도 말을 좀 했더니 금새 피곤해져서 눈을 감고 자는 시늉을 했더니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고는 일어났다. “피곤할 텐데 좀 쉬어.” “…….” 조용해진 병실에서 좀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몹시, 정말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몸인데도 잠이 좀처럼 오질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져 시계의 초침소리라든가 옆 병실이나 정원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소음까지도 귀에 잡히고 있다. ‘어쩌긴. 그 잘난 몸뚱이 밟아놓으려는 거지. 널 위해서 특별히 초대한 사람도 있거든.’ ‘이건 싸움이 아니야, 병신아. 린치지. 시쳇말로 다구리. 알아들어? 오늘 넌 나한테 완전히 밟히는 거야.’ ‘이 새끼 봐라. 어지간히 아프긴 아픈 모양이네. 침을 아주 질질 흘리네.’ ‘기절하긴 아직 이르잖아. 이제 이 라운드로 갈 시간이야, 홍병권.’ ‘처녀를 길들일 땐 말이야……한 번에 뚫어버리는 거야.’ ‘이 새끼, 내 좆 끊어먹으려고 환장했어? 힘 안 빼?’ ‘나, 이 새끼 깨우는 법 알아.’ ‘머리도 태워볼까?’ “아아―아아아아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목소리들 때문에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 생생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아아아악―――!!!” “병권아, 정신 차려!”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고 있다. 그 손길에 발작하듯이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질러댔다. “싫어어어어―!!” “병권아, 진정해. 형이야, 봐. 형 말고 여기 아무도 없잖아?” 익숙한 목소리와 익숙한 체취의 누군가가 날 껴안고는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아주 부드럽고 소중하다는 듯 따뜻하게 감싸 안는 그 느낌에 차츰 마음이 진정되어갔다. “이제 괜찮아.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해. 병실 앞에 아버지랑 어머니랑 형이 내내 지키고 있는 걸.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푹 쉬어.” 정말? 눈물에 젖은 눈을 들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이렇게 따뜻하게 날 안심시키고 감싸주는 누군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형―.” 급속도로 기분이 가라앉는다. “……누구 맘대로 들어와?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는데! 당장 나가! 나가! 나가란 말이야!” 문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형 얼굴 따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그날, 내가 얼마나 형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는데. 제발 좀 구해달라고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몇 번이나 절규했는데 형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잖아. 그래놓고 이제 와서 어떻게 뻔뻔스럽게 나타날 수가 있어? 그 불쌍하다는 듯한 시선은 뭐냐고, “내 말 안 들려? 꺼지라고, 미친 새끼야!!” “…….” “나가기 싫어? 그럼 그냥 있던지 말던지 니 맘대로 해. 내가 나가면 되니까.” 석고가 감겨있는 다리를 절뚝이며 침대 밑으로 내려오자 바닥에 마찰된 다리가 욱씬욱씬 쑤셔왔다. 그 뻐드렁니 새끼, 중간에 뒤로 박아대면서 무릎으로 허벅지 퍽퍽 눌러대더니―. “하윽―.” “아파?” 다리를 짚으며 바닥에 허물어지자 번개같이 다가와 다시 침대위로 밀어 넣었다. “병권아, 그만 좀 해. 너 지금 몸 상태 정상 아니야. 이러면 안 돼.” 날 억지로 껴안으며 귓가에 속삭이는 그 소름끼치는 느낌에 다시금 몸이―마음이 아니라 몸이 먼저 그 날을 기억해내곤 발작을 일으키고 있다. “아아아아악―――!!!” 나 좀 만지지마, 제발. 너가 나 만질 때마다 그때의 녀석들 손길이 떠올라서 아주 미칠 것만 같단 말이야. 잘 움직여지지 않는 팔을 휘둘러 형을 밀어보지만 형은 더 악착같이 날 껴안으려 들었다. 제발 누가 와서 이 새끼를 떼내 줘. 다시는 눈에 안 띄게 해줘. “그 자식들, 절대 용서 안 해. 니가 당한 수만 배로 갚아줄 거야. 인간구실 못하게 철저하게 밟아서 살아있는 걸 후회하도록 만들어줄 거야.” 머리카락이 다 타버려 허옇게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내 머리위로 눈물을 떨구며 형이 말했다. “세상에서 아주 매장시켜 버릴 거야.” 정수리에 떨어진 형의 눈물이 눈썹을 타고 뺨으로 흘러내려 올 때에서야 줄달음질치는 심장박동수가 천천히 느려졌다. “그러기만 해 봐.” “뭐? 미안해, 못 들었어.” 낮아진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 고개를 숙인 형의 목을 성한 손으로 휘감고는 말했다. “누구 맘대로 그 자식들을 건드려? 말해두는데―서영준하고 나 강간한 놈들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그냥 안 둬. 그 자식들은 내 꺼야. 알아들어? 죽여도 내가 죽인다구!!” 그러니까 서영준, 편하게 쉴 수 있을 때 마음껏 쉬어둬. 내가 퇴원하고 정신 차리면 너네들 전부 차라리 죽여 달라는 소리 나오게 해줄 테니까. 한 달 동안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다 기브스를 떼내곤 곧바로 시골 별장으로 옮겨졌다. 별장이라고 해봤자 방 두 칸에 화장실, 부엌 겸 거실 정도의 수준이라 마음은 더 답답해 오지만 부모라는 인간들은 내가 그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서울을 떠나 산과 강을 접하면 좀 나아지리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공기도 좋고, 물도 참 좋다. 그렇지?” 엄마가 애써 웃으며 어깨를 툭툭 치길래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지 마라, 내 감성은 예전보다 더 날카로워지고 있어. 하루하루 숫돌에 간 칼날위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이 기분, 알기나 해? “뒤에 숲 사이로 산책로도 있어서 방학동안 매일 산책하고 운동하면 금방 건강해질 거야.” 그럼, 빨리 건강해져야지. 그래야 놈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부모님이 갈 때 함께 데려가면 좋았을 형은 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산속의 맑은 공기 속에서도 형이 내쉬는 공기가 내 허파를 메우고 있을 생각을 하면 구역질이 멈추질 않았다. “우욱……우웩…….” “속 안 좋아?” 금새 안색이 변하며 등을 두드리는 형의 팔을 쳐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걸 국이라고 끓인 거야, 개죽이라고 끓인 거야? 소금소태도 아니고 씨발―.” 소리를 지르며 식탁 위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는 것들을 손으로 죄다 엎어버렸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엎어지는 것들을 허옇게 질린 얼굴로 보는 형의 얼굴이 내 가슴으론 시원하게 다가온다―랄까.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짠 것 같다. 국이 약간 쫄렸나 봐. 다시 해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필요 없어. 누가 그딴 걸 먹어주기나 한대? 너나 처먹어.” 바깥공기나 좀 쐴까 싶어 밖으로 나가려니 형이 팔을 탁 붙들었다. “뭐야? 내 몸에 손대지 말랬지, 귀먹었어? 치매야?” “너, 점심 라면밖에 안 먹었잖아. 다시 담백하게 해줄 테니까 먹고 나가.” “싫다는데 왜 귀찮게 굴고 지랄이야!” 쫙―――!!! “…….” “…….” 내 몸에 닿인 형의 손 때문인지 나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손이 나가고야 말았다. 옆으로 사정없이 휙 돌아간 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제발 부탁이니까 나 좀 내버려둬.” “……어두워지기 전에 일찍 들어와. 야식으로 주먹밥 해놀 테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며 바닥에 깨져 위험스런 빛을 발하는 유리조각들을 줍기 시작했다. 정말 기가 막혀 기절할 노릇이다. 도대체 표정도 없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기분 나쁜 새끼. 예비 고삼인 주제에 왜 서울 집에 틀어박혀 공부도 안 하고 시키지도 않은 식모살이를 하는 거야? 내가 뒤에 서 있거나 말거나 쪼그리고 앉아 그릇을 치우는 모습을 잠깐 보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집 뒤로 난 산책로를 따라 무작정 달리면서 해가 지고 좀 시원해진 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빨리, 빨리 나아야 돼. 이빨 세 개, 어깨뼈 탈골, 손가락뼈 탈골, 갈빗대 골절, 다리뼈 골절, 항문열상, 장파열, 담배에 의한 화상자국, ……그리고 타버린 머리카락과 음모. 시간조차 잊어버릴 것 같은 이런 집에 있어도 결코 나태해지지 않도록 항상 새기고 다니자. 운동하기에 딱 좋은 동산을 몇 바퀴 돌고 별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져서 어둑어둑한 상태였다. 항상 차소리, 기계소리, 사람소리 등등 온갖 소음에 익숙해져있던 터라 이런 종류의 고요에는 쉽게 적응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고요해서 귀가 아주 쨍―하게 울리는 것 같은 느낌. “주먹밥 먹어. 참기름이랑 깨소금 많이 넣고 속은 니가 좋아하는 참치 마요네즈야.” 형이 만들어주는 것, 아주 좋아했었는데. 평소 담백하고 느끼한 걸 좋아하고 조금만 매운 걸 먹어도 눈물 콧물 범벅이 되는 체질이라 칼칼한 걸 좋아하는 형이 내 입맛에 항상 맞춰주느라 고생했었다. 어떤 날은 한밤중에 하도 배가 고파 내내 공부하느라 파김치가 돼 자는 걸 깨워서 주먹밥을 만들어달라고 조르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도 형은 찡그리는 기색 하나 없이 주먹밥을 몇 개나 만들어주곤 했다. 지금도 그때처럼 반가운 마음에 습관적으로 손이 나가려다 곧 깨닫고는 멈칫했다. “됐어. 끼니 지나서 배 안 고파. 피곤해서 먼저 잔다.” “그럼, 자다가 배고프면 먹어. 냉장고에 넣어둘게.” 형은―. 항상 그렇지. 내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지. 내 버릇, 성격,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내 얼굴에 점이나 흉터가 몇 개 있는지도. 그러니까―지금 내 감정, 누구보다도 잘 알겠네. 이 내 속이 형에 대한 증오로 뜨겁다 못해 아주 펄펄 끓고 있다는 것. 죽어도 용서 못해. 서영준도, 그 새끼들도. 그리고 가장 많이 형을―. 형을 죽을 때까지 증오할 거야!! 평소에도 예민한 편에 속했지만 그 사건이 있은 후론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나마 병원에 있을 때는 신경 안정제 같은 것을 약에 섞어주니까 그런대로 약 기운에 의지해서 잘 수가 있었는데 여기에 와서는 잠을 자게 해주는 약도 없고, 잠자리까지 바뀌어서 아주 미칠 노릇이다. 더블침대와 붙박이장만이 덩그러니 있는 여섯 평 남짓한 방에 시계초침소리만이 아주 귓가에 천둥을 치듯 요란을 떨어대는 통에 자는 건 아주 그른 것 같다. 꼭 날 여기에 재우고 자기는 네 평짜리 골방에 자야겠다고 우기는 형은 지금쯤 잘 자고 있는 건지. 흘깃 시계가 두 시를 막 넘어서고 있는 걸 확인하고는 바로 옆 형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보고 형도 새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아 아직 잠을 못 자는 건가 싶었는데 문을 빼꼼이 열고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부엌에 있는 작은 상을 가져와 방바닥에 놓고는 그걸로 책상을 삼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 자고 뭐해. 시간이 몇 신데.” 갑작스런 내 목소리에 어지간히 놀랐는지 후다닥 책을 덮어버리곤 엉거주춤 일어나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병권아, 왜 아직 안 잤어. 여기까지 오느라 피곤할 텐데.” “공부해?” “응.” “흥, 뒤에서 열심히 연놈들과 놀아나느라 난 또 공부할 시간 있었나 싶었더니 공부도 하긴 하네.” 자신을 증오한다 생각했는데 밤중에 방까지 찾아와준 나에게 벙글벙글 미소를 띠던 형의 얼굴이 일순간에 굳어버렸다. “……미안해…….” “형이 한 짓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 내 인생이 완전히 엉망이 되버렸다고. 형도, 서영준 그 자식도 전부 용서 안 해.”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니.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겠니.” 형이 애절한 얼굴을 하고 내게 손을 뻗어오길래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미안…….” “…….” “…….”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어? 고작 그 말 한 마디로 모든 걸 때울 거야? 그때 이후로 난 잠도 못 자. 잠만 자면 그 자식들이 또다시 나타나서 수 십 번, 수 백 번을 더 강간당해. 밤만 되면 신경이 예민해져서 정말 미칠 것 같다고.” “그렇게 무서우면 형이랑 같이 자자. 응? 그러면 덜 무서울 거야. 옛날에도 그랬잖아. 기억해?” 내 옆으로 다가오는 형에게 침대위에 있는 베개를 집어던졌다.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어. 난 침대에서 잘 거니까 형은 밑에서 자.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서 공부 같은 거 하지 마.” 뒤에서 할 짓 안 할 짓 다 한 주제에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너만 좋은 대학 가는 거 절대 눈 뜨고 못 보니까. “그래, 알았어. 공부 안 할게. 책, 가방에 넣어 놀게. 자, 이제 됐지?” “……침대위로 올라오면 죽을 줄 알아.” 볼멘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굳은 얼굴이 풀리며 피식 웃음을 흘린다. “킥, 알았어.” “웃지 마!!!” “미……미안해.” “더워서 잠이 안 와. 노래 불러줘.” “어떤 게 좋아?” 부드럽고 여자 같은 얼굴에 걸맞게 목소리가 미성이었던 형은 노래도 제법 잘 부른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외국곡 같은 것도 굉장히 많이 알고 있었지. “하바네라.”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딱딱한 방바닥에 누워 팔을 머리에 베고 낮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형을 침대 위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만일 그대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오. 하지만 만일 그대가 날 사랑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달려와 주오! “…….” 어째서인지, 큰 방에 있을 때는 지독할 정도로 잠이 안 와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형의 노랫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잠이 오는 것 같다. “하암―.” 형 따위는 정말 싫은데. 재수 없어 죽겠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꿈을 꿨던 것 같다. 꽤 옛날 꿈이었는지 난 조그마한 몸집에 살갗이 시커먼 애였고 군데군데 상처자국 같은 것도 많이 보였다. 그야말로 장난꾸러기라고 써논 것 같은 내 옆엔 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형이 피아노책을 들고 서 있었다. 새하얀 피부와 가지런하게 가르마를 타서 눈썹 바로 위에 찰랑이는 머리와 구겨지고 찢어진 내 옷과는 다른 깨끗한 옷차림의 형 옆에는 옆집에 산다는 어린 여자애가 팔짱을 끼고 들러붙어 있었다. “오빠, 오빠. 오늘 친 거 그거 뭐야?” “어, 하바네라…….” 어릴 때부터도 여자애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던 형은 그때 어째서인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너무 좋아. 나 그거 가르쳐주면 안 돼?” 웃기지 마, 이 계집애야. 얼굴도 떡같이 생긴 게. 평소엔 돌돌 말린 파마머리가 인형처럼 보이던 애였는데 왜 그땐 그렇게 미워지는지. 속으로 욕을 퍼부으면서 내 눈치만 보며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형을 외면한 채 아버지가 새로 사준 무선 자동차 장난감을 운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 세시까지 병권이랑 놀아주기로 엄마랑 약속했는데.” “우리 집에 가아. 응? 우리 엄마가 쿠키도 만들어놨어. 초콜렛 쿠키.” “……병권아, 갈래?” 지금은 완벽해 보이는 형도 그때는 어린애였던지 초콜렛 쿠키에는 넘어가버린 모양이다. “병권이 말고 우리 둘이만 가자. 전에 병권이 땜에 텔레비 고장 나서 나 엄청 혼났어.” 나도 너 따위하고 놀 줄 알고? 누가 놀아준대? 웃기네. 샌님 같은 형이나 같이 놀아주지. “그럼 안 돼 .병권이 안 가면 나도 안 가.” “오빠아아―.” “병권아, 가자. 너 산수 숙제 아직 안 했잖아.” 매달리는 계집애의 팔을 떼버리곤 형은 곤란한지 먼저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남은 계집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독기어린 눈으로 날 째려봤다. “째려보면 어쩔 거야, 기집애야!” “이씨, 나쁜 놈아! 내가 왜 기집애야! 내 이름은 석영현이란 말이야!” “울 아빠가 고추 없으면 다 기집애랬어. 어이, 고추도 없는 놈아!” 나는 그렇게 기집애를 놀리며 바닥의 흙을 한 웅큼 집어 길게 늘어진 머리에 흩뿌렸다. “흐아아앙, 하지 마, 하지 마아―.” “에라, 울보야. 메롱, 메롱.” 여자애가 흙을 던지는 날 피해 집안으로 들어가며 소리 질렀다. “우리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엉엉엉!” 기집애가 엉엉 울면서 집에 뛰어 들어갔을 때에서야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자기네 엄마한테 일러바쳐서 우리 아빠한테 나 때리라고 그러면 어떡하지. 며칠 전에도 종식이를 때렸다가 아빠한테 파리채로 맞았는데. 겁이 잔뜩 난 아홉 살의 내가 숨은 곳은 지하실이었다. 축축하고 어두운데다 거미줄까지 죽죽 쳐진 지하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덜덜 떨고 만 있는데 지하실 문이 열리더니 형이 내려왔다. “병권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혀엉―.” 형을 보자 참고 있던 울음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히잉~. 명혀니가……훌쩍……자꾸 짜증나게……훌쩍……그래서 머리에 흙 던졌는데……크흥……아빠한테 맞으면 나 어떠케 해애……엉엉…….” 처음엔 훌쩍이던 것이 마지막에 가선 형의 무릎에 대고 엉엉 울어버렸다. “울지 마. 그러게 왜 그랬어. 명현이는 너랑 다르게 머리가 길어서 흙 던지면 안 되잖아.” 형한테 친한 척 하는 거 정말 싫었단 말이야. 이런 말은 자존심이 상해서 도저히 못한다. “그러면 아빠 오셔서 혼내려고 그러면 형이 그랬다고 하자. 그러면 너 안 때릴 거야.” “정말? 그래줄 거야?” “응.” “히잉~. 그래도 무서워. 아빠 올 때까지 여기 있을래.” “그럼 형이 노래불러줄까?” “응.” 어두운 지하실에서 잘 울려 퍼진 형의 하바네라. 그때도 그 노래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었다. 만일 그대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오. 하지만 만일 그대가 날 사랑한다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달려와 주오! 언제 잠이 들었던지 까무룩 하게 잠들었다가 구부리고 새우잠을 자던 다리가 아파와 잠이 깨버렸다.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다리를 슬그머니 움직이며 인상을 쓰는데 눈앞에―뭔가가 보였다. 칠흙같이 어두운 산속의 어둠 속에서 이상하게 번뜩이는 눈빛을 발하는 뭔가가 뚫어지게 날 보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색의 담뱃불과 코끝으로 스며드는 매캐한 담배연기. ‘킬킬, 나 이 새끼 깨우는 법 알아.’ ‘어때, 죽이지?’ ‘이 새끼, 깔리는 주제에 좆은 내 꺼보다 더 크네. 재수 없는 새끼.’ ‘왜, 재밌잖아. 야, 이것 봐라. 완전 민둥산 됐네. 너 이제 여자랑 그 짓은 다 했겠다. 피부까지 타서 털 안 날지도 몰라.’ ‘킬킬킬, 미친 새끼.’ ‘머리도 태워볼까?’ 아아아아―. 안돼, 싫어! 싫어―! “싫어어어어―――!!!” 머릿속에서 그때의 장면들이 다시 반복되고 있었다. 놈들이 나를 눕혀놓고 정신 못 차릴 때까지 두들겨 패고 강간하던 모습을. 그리고 그 너머로 섬뜩하게 웃던 서영준의 눈빛을. 약한 살을 사정없이 지져대고 머리카락을 태워버린 담뱃불을. 난 바로 전의 상황처럼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씩 공포를 극복해나가고 언젠가는 날 이렇게 만든 녀석들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했는데. 난 전혀 그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니, 날이 갈수록 이 고통은 더욱더 커져만 가는 것 같다. “병권아, 왜 그래?” “싫어, 저리 가! 저리 가!” 번뜩이며 어둠 속에서 뚫어져라 날 보던 두 개의 눈동자가 내게 다가와 팔을 붙들었다. 손사래를 치면서 밀어내자 곧 불이 환하게 켜지며 내 앞에 서 있는 형이 보인다. 손에는 담배를 끼운 채 서 있는 형의 얼굴은 놀람으로 잔뜩 굳어져 있었다. “담배! 담배애애애―――!!!” 영문을 몰라 하는 형에게 소리 지르자 화들짝 놀라 담배를 눌러 껐다. “미안해, 병권아. 형이 멍청해서 깜박 잊고 있었어. 정말 미안해.” “내 앞에서 다신 담배 피우지 마! 한 번만 더 담배 피우는 거 보면 죽어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가 아닌 ‘죽어버릴 거야’란 내 말에 형은 날 와락 끌어안고는 등을 쓰다듬었다. “다신 안 피울 거야. 이제 담배 끊을 거야. 맹세할게. 그러니까, 병권아. 죽는다는 말 같은 거 하지 마. 니가 없으면 형도 못 사는 거 알잖아.” 어느 새 목덜미까지 흐르는 눈물을 입술로 닦아주면서 형이 끊임없이 속삭였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스탠드 끄지 마. 어두운 거 싫어.” “병권아, 너 사흘 동안이나 못 잤어.” “자고 싶으면 너나 디비져 자. 남의 일에 신경 끄고.” 휴―하고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형은 자기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까칠한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폼이 꽤나 피곤해보여 안쓰럽기까지 하지만 절대로 내가 먼저 잠들기 전까진 형도 자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날, 형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잠깐 잠든 이후로는 전혀 잠을 잘 수가 없다. 안 그래도 예민해져 있던 신경에 자다가 깨어나 어둠 속에서 본 그 눈빛과 담배가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형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눈빛이 형일 거라는 생각도 전혀 하지 못했다. 그 순간엔 정말로 그 녀석들이 날 또다시 범하러 온 것인 줄로만 알고 극도의 공포심에 미칠 것 같은 상태였다. 그 후로 내내 이런 상태. 스트레스 때문에 쪼그라든 위는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불안해서 날카로워진 신경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는.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온 집안에 있는 대로 불을 켜대기 시작하는 날, 나보다도 형이 더 괴로워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잠 못 자고하면, 너 쓰러져. 빨리 건강해져서 니가 원하는 대로 녀석들에게 복수해야지. 병권아, 그러지 말고 형이랑 같이 자자. 십 분이라도 좋으니까 좀 자자.” “안 돼. 그 녀석들 올지도 모른단 말이야. 아까 보니까 옆 별장에 우리 또래 애들 들어오는 것 같았어. 자세히는 못 봤는데 그 녀석들인 것 같아. 여기, 어떻게 알았지? 아니, 그보다……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학교에 못 꼰지르게 하려고 내 입 막으러 올 수도 있는 건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칼, 칼이라도 들고…….” “병권아, 제발―제발 이제 그만 좀 하자.” “열쇠 잠겨있긴 하지만 너무 불안해. 이 정도 열쇠 따는 건 금방이니까. 문 옆에서 계속 감시해야겠어.” “…….” “형, 그 녀석들 얼굴 알아? 난 똑똑히 기억해. 한 녀석은 스포츠 머리에 키가 나만한 녀석인데―.” 옆에서 형이 뭘 하는지 덜그럭거리는 소릴 들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창문 너머로 옆 별장의 동정을 살피느라 형이 뭘 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코가 매부리코였어. 그리고 다른 한 녀석은 눈썹이 진하고 이빨이 약간 뻐드렁니였고. 아, 머리에 노란색 브릿지를 넣은 것도 잊으면 안 되지.” “병권아.” 형이 날 침착한 목소리로 불렀을 때에서야 난 형을 돌아봤다. “응?” 내가 고개를 돌린 그 순간, 형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쳐왔다. 뜨거운 열정을 담아 내게 키스했던 그때완 전혀 다른 차원의 차가운 감촉의 입술이 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와 물컹한 혀를 내 입안으로 침투시켰다. 거부감이 느껴지는 키스에 팔을 휘둘러 반항하려 했지만 형은 완전히 날 벽에 몰아세우고는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은 채 더 깊은 곳으로 뱀처럼 기어들어갔다. “―――.” 완전히 하나가 되버린 듯 온몸을 강하게 밀착시키고 내 목구멍 깊은 곳에 뭔가를 떨어뜨리고는 다시금 혀를 빼내갔다. 꿀꺽―. 그것이 뭔가 약일 거라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그것을 삼킨 후였다. “뭐야, 이게! 이게 무슨 짓이야!” “…….” 무표정한 얼굴의 형을 보는데 내내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위가 울컥하며 노란 위액과 함께 삼킨 알약을 도로 올려보낸다. “욱―.” 고개를 숙이며 입을 막는 내 손을 형이 치우면서 내 입을 억지로 벌리고 자신의 손을 밀어 넣어 반쯤 녹은 알약을 목구멍으로 다시 집어넣는다. “…….” “…….” 형의 손을 입안에서 빼내려 손톱으로 할켜도 보고 이빨로 물어뜯어도 봤지만 내 입안에서 고인 침과 형의 손가락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뒤섞여 형의 팔꿈치에서 주룩 늘어질 때까지도 형은 내 입안에 집어넣은 손가락을 빼내지 않았다. 대체 왜 이러는 건데, 형. 나 정말 이러고 있을 시간 없는데. 혹시―! 형도 그 녀석들처럼 날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 어떻게 해보려는― 그런 생각인 거야? “―――.” 서서히―아주 서서히 온몸의 근육이 풀리며 눈꺼풀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약기운이 도는 듯 현관 앞에 풀썩 쓰러지는 내 눈에 형이 희미하게 웃는 것이 보인다. 아아, 그 약은―. 또다시 꿈을 꿨다. 이번엔 꽤 최근에 있었던 일이었는데. 내 옆에 세연이가 있는 걸로 봐서 아마 열 여섯 살 때인 것 같다. 세연이는 미팅에서 커플이 된, 제법 예쁘장한 계집애였다. 내게도 이제 이런 예쁜 애인이 생겼다고 동네방네 다리면서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유일하게 자랑을 하고 싶지 않은 상대가 눈앞에 나타나 좋았던 기분은 일시에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병권아.” “…….” “뭐해? 너 부르잖아.” 꽃미소를 띄우며 다가오는 형을 그냥 무시해버릴까 생각하고 있는데 세연이가 팔꿈치를 툭 쳐서 하는 수 없이 어설프게 대답했다. “어…….” “시내 나가는 길이야? 옆에 있는 여자앤?” 내 여자친구―라고 말할 새도 없이 세연이 냉큼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병권이 형이죠? 전 병권이 애인 한세연이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야, 정말이야? 병권이한테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도 생기고. 부러운데?” “부럽긴요, 전 병권이가 더 부러운데요. 이렇게 잘 생긴 형을 맨날 볼 수 있고.” “하하, 농담도 참…….”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나와 있을 때완 다르게 무척이나 생글생글 웃으며 병주 형에게 적극적으로 인사하는 세연을 보곤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런가, 그런 건가. 세연이도 다른 여자애들처럼 병주 형에게 반해버린 건가. 이래서 형 따위 보고 싶지 않았던 건데. 젠장. “다른 애들처럼 금방 헤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우리 병권이가 보기엔 무뚝뚝해도 사실은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래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저 인간이. “물론이죠, 병권이 절대 안 뺏겨요. 그 상대가 부모님이나 형.제.라고 해도.” 넌 왜 그따위 질문에 대답하는 건데. “요즘……보기 드문 씩씩한 아가씨네. 씩씩한 건 좋은데 너무 그러면 병권이가 무서워서 도망가지 않을까?” “병권이가 절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걸요.” “하하, 우.리. 병권이가 어릴 적부터 부모님보다 나하고 있는 시간이 많아서 브라더 콤플렉스가 있걸랑. 병권이랑 오래 사귀려면 나한테도 잘 보여야 할 걸?” 도무지 알 수 없는 문답이 잠시 오고가고 일찍 들어오라는 말을 남기고 가는 병주 형의 눈빛이 조금 묘하게 빛났던 것 같다. “너희 형인데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병주 형이 가고나자 세연이 약간 긴장된 얼굴이 되서 말했다. “난 저런 너무 완벽한 사람 싫어. 호감 가는 얼굴에, 성격 좋아서 친구 많고, 공부든 운동이든 뭐든지 잘하고 리더쉽까지 있는. 전부들 좋아하고 존경해도 난 저런 사람 안 믿어. 저런 사람일수록 뒷면엔 추악한 진짜 모습이 숨겨져 있는 수가 많아. 햇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커지는 법이니까.” “무슨 말이야, 그게.” “그러니까 나는 역시 니가 더 좋다는 거지.” 세연이가 날 보고 생긋 웃었다. “뭐……야, 그게.” 휙 고개를 돌려버렸는데 끝까지 시선을 따라오며 세연이 날 비웃었다. “어, 이것 봐라. 지금 얼굴 빨개진 거지. 너 혹시 키스도 아직 못 해본 거 아냐?” “―――!!!” “진짜야? 천하의 홍병권이?” “나, 간다.” 남자를 아주 가지고 노는 듯한 세연의 태도에 화가 나 집으로 돌아가려 몸을 틀자 세연이 황급히 내 손목을 붙들었다. “놀려서 미안. 난 그냥 니가 생각보다 훨씬 순수해서 놀란 거야. 다신 안 그럴게. 나 말이야, 처음 봤을 때도 너 맘에 들었지만 지금은 더 좋아진 거 같애. 우리, 니네 형 말대로 오래오래 사귀자.”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었던 세연은 사실, 일주일 후부터 갑자기 내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한 마디 말도, 전화도 없이 증발해 버리듯 사라진 세연이 걱정돼 찾아간 세연의 학교 앞에서 세연의 단짝 친구를 만났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의 여자애에게서는 정말 충격적인 말이 터져 나왔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다 괴한한테 당했어! 여자로서의 수치심만 준 게 아니라 그 여린 배를 얼마나 발로 짓밟았는지 내장이 다 망가졌어! 세연이, 이제 어떡해. 흐윽―.” 울고불고 하는 여자애를 달래 겨우 알아낸 병원으로 황급히 달려갔지만 세연은 내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충격이 커서 그렇지 언젠간 만나줄 거란 기대를 걸고 사흘째 찾아간 내게 세연의 어머니가 세연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제 오지 말고 앞으로 다신 만나지 말자.’ 충격과 고통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내게 친구들은 억지로 다른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며 미팅 자리에 등을 떠밀었다. 세연의 얼굴이 아직도 밟혀 전혀 생각은 없었지만 친구들 때문에 억지로 사귀게 된 여자애. 그런데 그 여자애도 한달쯤 지났을까. 한적한 곳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로 발견됐다. 목격자에 의하면 갑자기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나타나 못이 잔뜩 박힌 각목으로 얼굴을 휘갈기고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병원으로 달려가 처참하게 망가진 여자애의 얼굴을 보고선, 절망감에 오열하는 여자애 부모님 앞에서 그만 먹은 것을 토해내고 말았다. 생전 처음 보는 끔찍하고 징그러운 모습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생긴 불면증으로 한동안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잠이 들 수 있었다. “―――.”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날은 어둑어둑해질 즈음이었다. 형이 내게 뭔가를 먹일 때가 열 시 즈음이었으니까 꼬박 하루를 잔 셈……. 형이 내게 뭔가를 먹인―. 머릿속에서 갑자기 많은 것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는 나를, 옆에서 누워 팔베개를 해주고 있던 형이 잠이 깨어 붙들었다. “병권아, 왜 그래.” “약을 먹였어, 약을!” “미안해, 병권아. 그건 니가 잠을 너무 안 자서―.” “약을 먹였어, 나한테! 이 십새끼, 너도 똑같애! 그놈들하고 똑같애애애―――!!!” 비명을 지르며 형을 뿌리쳐내고 그대로 창가로 달려갔다. 커다랗게 베란다로 되어있는 창으로 가서 주먹으로 유리창을 두들겼다. 와장창―. 유리창이 깨지며 유리가 우수수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여기저기 주먹으로 두들겨댔다. 쾅―. 콰앙―. 콰직―. 와장창―. “병권―병권아. 제발, 형이 잘못했어. 제발 그만해.” 유리가 점점 깨져갈수록 손이 피로 범벅이 되어간다. 살이 찢어져 피가 주룩주룩 흐르는데도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형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커서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쾅―. 콰앙―.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깨져 위험한 빛을 발하는 창문을 두들기는데 형의 손이 다급하게 내 주먹을 막아낸다. “―――!!!” “흐윽―.” 내 주먹을 감싼 채 유리에 찔려 피를 흘리는 형의 하얀 손을 보자 그제야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기분이다. “하아―하아―.” “병권아.” 조금은 얌전해진 날 형이 감싸 안았다.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형이 지켜줄 거니까―평생 지켜줄 거니까―.” “…….”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는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형의 손에서 흐른 피가 내 손의 피와 뒤섞여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걸 묵묵히 바라봤다. 둘 다 그렇게 피칠갑을 해갖고 생쑈를 하고선 치료를 받기위해 산 아래로 내려와야만 했다. 살 깊숙이 박힌 유리조각들을 빼내고 붕대를 둘둘 감고선 형이 의사와 이야기하는 사이 먼저 대기실로 나와 있는데 접수를 보던 간호사들이 수다를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봤어? 정말 잘 생겼지.” “너무 여자같이 생기지 않았냐?” “무슨 소리야. 요즘은 그런 스타일이 인기 있다니까. 아, 그런 사람이 내 애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꿈 깨라. 저런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널 사겨. 그리고 아직 고등학생이던데. 너 그거, 원조교제야. 아줌마 원조교제.” “말을 해도 꼭! 그런데 그에 비해 동생은 좀…….” “목소리 낮춰. 다 들리겠다.” 아, 씨발. 형은 뭐 이딴 병원을 오자고 그러는 건지. 괜히 신경질을 내며 의자 다리를 툭툭 차고 있는데 이 병원 화제의 인물이 나타났다. “표정이 왜 그래? 많이 아파?” “내 표정이 어때서. 누구랑 달리 얼굴이 못 생겨서 나 같은 게 웃으면 그게 더 범죄야.” “그 사이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됐어.” 퉁명스레 대답하고선 병원 문을 밀고 나오자 황급히 형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 병권아.” “뭐야.” “너, 내일 생일이야. 기억하고 있나 해서.” 형의 말에 바삐 걷던 걸음을 우뚝 멈춰서 버렸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이 생일이구나.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 뭐든지 해주고 싶으니까.” 갖고 싶은 게 있을 리가 없다. 지금의 내게 뭔가를 갖는다거나 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해. 왜 그걸 몰라. “있어. 요즘 들어 절실히 필요한 거.” “뭔데?” “홍병주 시체.” 굳어져 버린 형의 얼굴에다 씩 웃어주고는 더운 햇빛을 피해 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며칠만 더 있으면 방학도 끝나는데 이놈의 더위는 수그러들 줄을 모르니. 게다가 타버린 머리 때문에 모자를 써야만 해서 더욱 답답하다. 어제 세수를 하며 거울을 보니 약간 자란 것 같기는 한데 정수리 쪽은 화상이 심해서 머리가 자라지 않을 거란 얘기를 들었다. 다행히 그다지 넓지 않은 부위라 머리를 길게 기르면 가릴 수 있을 거란 말도. 머리의 흉터를 덮을 수 있으면 뭐해. 더 중요한 상처는 어떤 걸로도 감출 수가 없는데. 이 따위―이 따위 머리는―. 답답한 마음에 시원한 얼음물이라도 마실까 싶어 부엌으로 향했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형이…….” “아, 됐어. 난 손이 없어, 발이 없어―.” 냉장고에서 생수 병을 꺼내 식탁위에 올려놓는데 식탁위에서 충전 중이던 형의 핸드폰이 메일 수신을 알렸다. 뭐, 특별히 일부러 보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소리 때문에 원치 않아도 내용을 보게 됐다. ‘병주 오빠, 저 강희예요. 왜 요즘에 연락도 없고 그래요. 무슨 일 있는지 걱정도 되고 그러니까 이 메일 받으면 꼭 연락주세요. 018-510-9706’ “형, 문자 온 거 같은데.” 어떤 년인지 이 년도 참 쓸개 없는 년일세.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는. “그래? 올 데 없는데.” 머리를 감은 형이 수건을 얹은 채로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지는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여기저기 손대 논 연놈들이 한 두 명이라야 다 기억을 하지. 제 아무리 학생회장 홍병주 씨라고 해도. “…….” 물을 마시고 있는데 왠지 조용해서 보니 형이 핸드폰을 들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아마 내가 그 메일을 봤는지 못 봤는지 궁금한 거겠지. “뭐라고 온 거야?” “아―.” 그제야 안색이 환하게 걷힌다. “친군데, 서울에 언제 올라 오냐고.” 친구라, 넌 친구랑 섹스도 하나 보지. 하긴, 나도 완배놈이랑 키스했었으니까. 형이 핸드폰을 살며시 들고 화장실로 가더니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귀를 갖다댔다. “야, 윤강희! 아, 씨발―. 왜 자꾸 전화질이야, 전화질을. 내가 봤기에 망정이지 내 동생이 봤으면 넌 손가락 다 부러졌어. 긴 말 할 거 없고, 너 아직 내 말 못 알아듣는 모양인데. 니 년한테 질렸으니까 씹질은 딴 놈이랑 하라고. ―이 씹, 주둥이 안 닥쳐? 어디서 쳐울고 지랄이야. 순겨얼―? 순결 좋아하네. 내가 한 두 년하고 자봤나. 처년지 아닌지도 모르게. 너, 나 협박해 갖고 돈푼이나 뜯어내려는 수작인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재수 없으려니까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걸레 같은 게 걸려갖고. ……입 닥치랬지, 어디서 내가 말하는 데 껴들고 지랄이야. 아구창 날려버리기 전에 그만 질질 짜. 그리고 너, 한 번만 더 전화하면 다시는 그 짓 못하게 씹구멍 찢어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내 앞에 면상 드밀지 마. 씨발―.” 내 앞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살벌한 욕들이 형의 목소리로 쏟아지고 있다. 문 너머로 잠자코 형의 목소리를 듣다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형, 있지.” 통화를 끝내고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나오는 형에게, 식탁에 앉아 마침 텔레비에서 나오는 아디다스 운동화를 가리켰다. “저거 멋있지 않아? 난 저런 스타일이 좋더라.” 형이 부드러운 표정이 되서 물었다. “갖고 싶어?” “응.” “그래……?”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되더니 방안으로 들어가 지갑을 가지고 나왔다. “병권아, 나 좀 나갔다 올게. 혼자……있을 수 있겠어?” “갔다 와.” “문 잘 잠그고 있어.” “응.” 형이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보나마나 분명 내가 갖고 싶다는 운동화를 사러나간 거겠지. 병신. 이런 산골마을에 아디다스 매장이 어디 있어. 설마 있다고 쳐도 지금 이런 시간에 문 열고 있을 매장이 있을 리 없다. 이십 사 시간 영업하는 편의점도 아니고. 도시가 아니라 산마을인 이런 곳은 한여름도 밤이 되면 꽤 춥다. 어디 추운데서 고생 좀 해봐. 그렇게 미친놈처럼 비실비실 웃으며 현관문의 체인을 걸어 잠궜다. 새벽 한 시 정도 된 걸까. 여전히 잠은 오지 않는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데다 아까 전 반 미쳐있을 땐 몰랐던 손의 상처가 밤이 되자 지끈지끈 아파와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먹으라고 약 처방을 줬지만 약 같은 건 먹고 싶지 않다. 약 뿐만이 아니라 오렌지 쥬스도 마찬가지. 내가 눈 뜨고 살아있는 한은 절대 쳐다도 안 볼 것들. 유선이 연결되지 않아 지루하게 계속되는 질 낮은 쇼프로를 보는데 현관문 쪽에서 철컥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머릿속으로 그 녀석들이 떠올라 흠칫했지만 곧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에 안도했다. “병권아―. 병권아―. 자?” 쾅―쾅―. “안 자는 거면 문 좀 열어줘. 병권아―.” 미안한데, 니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는 홍병권이는 지금 자고 있어. 너무 깊이 잠들어서 내일 오전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예정이거든? 밖에서 외쳐대는 형의 목소리를 듣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너무 좋아 오랜만에 살풋 잠이 들어버렸다. 안에서 텔레비가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밖에는 형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속에서 너무 기분 좋게. 산속의 아침은 상쾌하다. 여기에 와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벌써부터 한가운데 떠올라 쨍쨍 내리쬐는 도시의 짜증스런 해와는 다르게 산들에 가려져 살포시 드러나는 해도, 제법 시원하게 느껴지는 공기도. 숨을 크게 들이쉬자 깨끗한 공기가 마음까지도 맑게 정화시키는 것 같다. 기지개를 쭉 펴다 밖에 있을 누군가가 생각났다. 뭐―. 설마 아직도 있을라고. 현금도 카드도 꽤 있을 테니까 아래에 모텔에라도 들어가 자겠지. 주인이 알아서 콜걸이라도 불러줬을 거고. 동생 덕분에 간만에 기분 좋은 밤이었을 테니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느릿느릿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 제꼈다.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또 모르니까.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벽에 뭔가 웅크리고 있던 것이 움직여 흠칫 놀랐다. “병권아.” “…….” 형이었다. 밤새도록 이렇게 하고 있었는지 잔뜩 흐트러진 차림에 차가워진 몸을 한 형이 날 보고 있었다. “형, 왜 집에 안 들어오고 여기 있었어.” “문에 체인이 걸려있어서.” “난 형이 시키는 대로 문 철저히 잠그고 있었지.” “……그랬어? 잘 했어.” 멍청하긴. 그걸 믿냐. 내가 언제 니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그럼 아래에 여관에라도 들어가 자든지 하지.” “니가 걱정 되서. 나 없는 새에 누가 오지나 않을지 또 잠 못 자서 서성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 되서.” “누가 고마워할 줄 알고.” 착한 척 하기는. 니 진짜 모습 다 알고 있는데. 네놈이 언제까지 내 앞에서 가면을 쓰고 있을지 두고 보겠어. 굉장히 지친 듯 입술이 갈라진 모습의 형을 뒤로 하고 먼저 들어와 버렸다. “배고파.” “금방 밥 지어줄게. 미역이 좋은 게 있길래 좀 사왔어.” “들깨가루 많이 넣고 쇠고기도 많이 넣고. 알지?” “응.” “짜게 하지 마.” “응.” 여름이라고 해도 절대 무시 못 할 산공기를 밤새 쇠고도 철인이라도 되는 듯 퉁탕거리며 밥을 짓기 시작했다. 조금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그 모습에 다시 안도감을 느꼈다. 뭐, 더 괴롭혀도 되겠네. 자신은 한 숟갈도 뜨지 않은 채 내가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 걸 뚫어져라 쳐다보던 형이 부시럭거리며 큰 상자를 앞에 내놨다. “생일 축하해, 병권아.” “뭐야?” “아디다스 운동화. 니가 갖고 싶다고 해서.” “내가 그런 말 했었나.” “…….” “그 밤에 어떻게 구했어?” “여기 매장들은 거의 문 닫은 상태라 서울 친구한테 전화로 구해놓으라 했어.” ……눈물나는군. “고생했겠네?” “아니, 안 그래. 서울이라도 택시타고 편하게 갔는걸.” “그래? 그럼 다행이고.” 벌떡 일어나 형의 필통에 있던 커터 칼을 꺼냈다. 날이 잘 서 있는지 확인하곤 운동화를 꺼내 사정없이 찢기 시작했다. 부욱―북―. 비싼 값 한다고 튼튼하게 만들어졌는지 찢는 것도 쉽지가 않다. 검은색에 오렌지 무늬가 들어간 원단을 온 힘을 다해 비참할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놓고 나자 마음속에 진 웅어리가 좀 풀리는 기분이다. “후우―.” “…….” 내 앞에 앉아있던 형은 유령이라도 본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걸레조각이 된 운동화를 바라볼 뿐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이제 좀 시원하네. 스트레스 풀 만한 게 필요해서.” “……그래, 잘 됐네.” 형은 그 말만 하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릇은 씽크대에 좀 넣어줘. 설거지 나중에 할 거니까.” “…….” 뭐야, 왜 화를 안 내는 건데.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이 정도 유치한 짓으론 택도 없다는 건가? 왠지 울컥한 마음에 형이 들어간 방문을 홱 열어 제끼고 쿵쾅거리며 다가갔다. “야, 홍병주.” “뭐……필요한 거…….” 벌건 대낮부터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형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평소때의 부드러운 미성과는 다른 허스키한 음색. “뭐야, 어디 아픈 거야?” “아니, 그냥 피곤해서.” “그래?” 그럼 나 케익 먹고 싶은데 밑에 내려가서 하나 사줄래? 생각해 보니 명색이 생일인데 케잌도 없으니 썰렁해서. 가는 길에 CDP 건전지도 하나 사주면 더 좋고…….” “그래.” 열이라도 나는 듯 볼이 조금 붉어진 채 밍기적거리며 일어난 형이 머리맡에 지갑을 들고 일어난다. 약간 불안한 걸음으로 현관까지 가는 걸 보고 있자니 아니나 다를까 잡고 있던 현관 문고리를 놓치고는 그대로 문에 기대 쓰러진다. 털썩―. “…….” “…….” “야―.” “…….” 다가가 발로 툭툭 차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기절이라도 한 건가. 한여름에 감기라니, 개도 아니고. 숨을 헐떡이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는 걸 보니 아프긴 많이 아픈 모양이다. “야, 십새끼. 또 왜 아프고 지랄이야, 귀찮게스리. 여보세요? ――매니저 아저씨? 엄마 좀 바꿔줘요. ――엄마, 나. ――난 잘 있는데 형이 아픈 거 같아. 쓰러졌어. ――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하여튼 귀찮고 걸리적거리니까 와서 저거 좀 치워.” 전화를 끊고는 현관에서 쓰러진 채 흙투성이가 돼 있는 형을 바라봤다. 방까지 옮겨줄까 싶기도 했지만 스킨쉽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만 하다. 정말 싫은 새끼!! 엄마가 내 전화를 받고 도착한 것은 약 세 시간 정도 후. 평소 바쁘다 바쁘다 노래를 부르더니 이뻐 죽는 장남이 아프다고 하니까 아주 날라오시는구만. 이죽거리며 한쪽에 기대서 있자 드라마를 찍다가 왔는지 괴상망측한 차림 그대로 뛰어들어와서 보란 듯이 거실에 내팽개쳐논 형은 본 척도 않고 내 머리를 끌어안았다. ……뭐야―. “내 새끼, 아무 일 없었어?” 니 새끼 저기 아프잖아. “밥은 잘 먹었고?” “엄마, 형이…….” “알아, 알아. 문용 씨, 병주 좀 차에 데려가요. 에구, 얼굴 상한 것 좀 봐. 손은 또 왜 이래. 다친 거야?” 그러니까, 갑자기 왜 이러냐고. “가자, 엄마랑 같이 서울에 가.” 엄마의 가슴에 숨 막히게 끌어 안겨 매니저가 끌고 온 체어맨에 올라탔다. “일도 되도록 줄여볼 테니까 엄마랑 옷도 사러가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아, 그래. 이모 있는 벤쿠버에 같이 갔다 올까? 그거 좋겠지. 아니다, 너 아프리카 가보고 싶댔잖아. 이집트하고 그쪽으로 한 번 돌아볼까?”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대는 소리에 짜증이 일었다. “방학 이제 다 끝났잖아.” “무슨 소리야, 너. 휴학할 생각 아니었어?” 그건 엄마 생각이고. 내 생각은 아주 달라. 우선은―. “전학하고 싶어. 내가 원하는 데로 넣어줄 수 있지?” “그럼. 우리 새끼 원하는 거 엄마가 다 해줄게.” 그 후로도 계속 되는 엄마의 수다를 건성으로 들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엑셀러레이터를 얼마나 밟아 제꼈는지 그새 조금씩 서울 위성도시들 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가까워지고 있는 거야, 그 녀석들이 있는 곳에.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내가 갈 때까지 어디에도 도망치지 말고. 신경쇠약인지 뭔지 하는 우스운 걸로 자리 깔고 누운 걸 보니 불쌍하긴 커녕 같잖단 생각만 들었다. 지가 뭘 잘한 게 있다고. 뭐가 그렇게 당당해서 엄마한테 병 수발 받으며 뻗어있는 건데. 고작 내가 화풀이 좀 했다고. 그게 그렇게 힘들어? 그 정도로 그렇고 누울 것 같으면 좋아했던 사람한테 배신당하고 연적한테 돌림빵 당한 나 같은 인간은 옛날에 죽었어야 했겠네? 매일 머릿속에서, 매일 꿈속에서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돌림빵 당하는 난 옛날에 미쳐서 정신병원 가야 했겠네? 그렇게 허옇게 뜬 얼굴로 누워만 있지 말고 차마 죽지도 못해서 사는 날 봐.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몸부림치며 날 이렇게 만든 놈들한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사는 날 보라고. “뭐야.” 어딘가 구겨놨던 쪽지의 전화번호를 누르자 후영 형이 귀찮다는 듯 전화를 받는다. 싸가지 없는 새끼―란 말이 거의 목구멍까지 올라올 뻔 했다. 형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쓰레기같은 놈.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학생이 하지 말란 짓은 골라서 다 하고 다니는 새끼. 있는 놈 자식이면 서도 가진 거 없는 서민 자식놈들 순전히 재미로 삥 뜯어먹는 인간말종. 그런데―너란 놈도 인간대접 받고 사는데 난 뭐냐. 암캐취급 당하면서 돌림빵 당한 난 뭐냐고. “저기……나 병권이야, 형.” 말도 붙이기 싫은 놈한테 친한 척하며 ‘형’자까지 붙이려니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병권이? 야, 너―.” 느른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일순간 달라지며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 하다. 아마 내 소문을 들은 거겠지. 너도 궁금한 거냐, 내가 몇 놈 한테 어떻게 어느 만큼 당한건지. “아니다, 관두자.” 왜, 물어봐. 너란 놈도 형이란 놈도 자기가 원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 외엔 관심도 없잖아. 다른 사람 기분, 의사는 무시해 버리면 되잖아. 수 틀리면 다구리, 돌림빵. 그게 늬네들 주특기 아니야?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냐. 같은 학교 다녀도 일년 내내 말 한 번 안 붙이는 놈이.” “그게―.” “뭐야, 나하고 있을 땐 전화 꺼놓으랬잖아.” 막 용건을 꺼내려고 했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기집애가 쫑알대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조용히 해. 통화중이잖아.” 투닥거리는 폼이 어디서 또 벌건 대낮부터 기집애를 꿰차고 있는 모양인데. “내가 전화 잘못했나 보네. 나중에 다시 전화할까?” “끊지 마―너, 저리 꺼져있어―무슨 일인데?” “모르는 척 하지 마. 형 밑에 있는 애들인 거 다 알아.” “그래서? 내가 손봐주길 바래?” “그 녀석들, 그리고 이학년의 서영준. 어디 있는지 알아봐줘. 부탁이야. 처음으로 내가 부탁하는 거야, 형한테.” 벅적거리는데다 쓰잘데기없는 훈계만 줄줄 늘어놓는 선생들이 디글거리는 학교 따위, 정말 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싫어하는 주제에 결석 한 번 없이 꼬박꼬박 학교나간 이유는―. 유급당하기 싫어서도, 아버지한테 잔소리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정 붙일 사람이 필요해서, 정 주고, 정 받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해서. 부모님이 둘 다 드라마 촬영이니 음식점 운영이니 해도 들어오는 날보다 나가있는 날이 더 많은 탓에,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데다 형이라고 하나 있는 건 학생회장이랍시고 늦게 들어올 때가 많았기 때문에. 물론 그 핑계란 것도 뒤로 좆질하러 다니기 위한 것이란 것도 최근에 알았지만. 뭐, 그런 탓에 사람이 그리웠다. 친구만 생기면 내 마음속 얘기도 하고 싶고, 따뜻한 살을 좀 부벼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드러운 성격이란 건 스스로도 알지만 그래도 최악이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한 번 낯을 익힌 인간들이 하나같이 석 달 이상을 견디질 못하고 떨어져나가니 제대로 깊이 사겨보질 못했다. 고등학교 올라와서 처음 사귄 극인이, 완배, 헌록이놈이 오래 버텨 사 개월 정도일까. 그나마도 이젠 다 글러버린 것 같지만. 엄마가 전학수속을 하면서 담임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사물함이라든가 책상서랍에 놓고 온 물건들을 챙기려고 교실로 올라갔다. 뭐, 물건이래봤자 하나같이 쓰잘데기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차라리 수업 중이라면 좋겠다. 수업을 핑계로 애들과 그렇게 부딪칠 일 별로 없이 내 볼일만 보고 나올 수 있을 텐데. 복도가 조용한 걸 보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뒷문을 여니 앞을 보던 놈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된다. ‘기집애도 아니고 사내란 놈이 뒷구멍이나 뚫리고 다니고.’ ‘나 같으면 쪽팔려서 안 살고 만다.’ ‘그거 왜 달고 다니냐. 떼버리지.’ 이런 류의 비아냥거림이 금방이라도 귓가에 들려올 것만 같아 내 책상으로 향하는 걸음이 자신도 모르게 빨라진다. “넌 뭐냐. 이제 등교하는 거냐?” 평소에도 연예인 부모, 학생회장 형을 둔 탓에 학교 내에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편인데다 이번 사건까지 겹쳐 그야말로 이슈가 됐을 텐데. 머리가 허연 국어선생, 치매끼가 있는 것이 정년퇴직이 가까운 듯 싶다.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만.” 이런 말까지 꼭 해야 하나. 안 그래도 서러워 죽겠는데. “챙겨갈 물건이 있어서요.” “전학이라도 가는 거냐?” 그럼 내가 전교생이 다 아는 마당에 뻔뻔스럽게 철판 깔고 교내 활보라고 하길 바래? 미안한데, 난 그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라서. 암캐 취급하는 이런 시선들 사이에선 삼십분도 못 견딜 것 같아. “예.” 내가 대답하자 숨 죽이고 내 하는 양을 보던 놈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해! 여기가 시장터야?” 지시봉인지 회초린지로 칠판을 두들긴 선생이 갑자기 의외의 말을 던진다. “서랍 안에 물건 챙겼으면 이리 나와 봐.” “왜 그러십니까. 밑에 엄마 기다려서 빨리 가봐야 되는데요.” “잠깐이면 돼, 마.” 그래도 명색이 선생인지라 명령을 듣지 않을 수가 없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내 쪽으로 와서 꽂히는 수십 개의 시선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고개 들어, 임마. 니가 죄졌어? 너 이름 뭐야.” “……권입니다.” “뭐라고? 큰 소리로 말해, 임마!” “홍병권입니다!” 내 목소리는 이제 거의 울음소리로 변해가고 있다. 당신, 지금 이러면 안 돼. 이러는 거, 잘못하는 거야. 아주 잘못하는 거라고. “반년이나 정들었는데 인사도 안 하고 가면 되냐. 마지막으로 급우들한테 인사나 해.” “―――!!!”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인사라니, 내가 저놈들에게 도대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보다 당신, 도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래. “빨리 해라. 시간 없다며.” 결국은 하고 나가야 한다는 거지. “……그동안 좋은 시간이었다. 사교성도 없는 편인데 잘 대해줘서 정……말로 고마웠고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좋은 대학 가길 바란다.” “반장.” 맨날 내가 갈궜던 소심한 반장놈이 뻘쭘이 일어나 날 본다. “어……여기 있으면서 있었던 안 좋은 일들은 다 잊고……그러니까 뭐냐……새 학교 가서 잘 지내.” “…….” “제군들, 떠나는 친구한테 할 말 있으면 한 마디씩 해봐.” “…….” “…….” “…….” “…….” 웅성거렸던 놈들의 긴 침묵. 하기사 저 놈들이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겠어. 맨날 수업 땡땡이나 까고 날르는 놈인데다 입만 열면 욕만 하는 순 또라인데. 그렇다고 해도 헌록이, 완배, 극인이. 네놈들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적어도 너넨 내가 어떻게 된 건지 전화라도 한 번 했어야 하잖아. 남자한테 뒤나 뚫리는 암캐같은 놈과는 더 이상 친구하기 싫다는 말? “아무도 할 말 없어? 야, 너―. 성격 무지하게 나쁜 모양이네. 섭섭하단 놈이 하나도 없어.” 국어 선생의 비아냥거리는 그 말 뒤로 갑자기 맨 앞의 놈이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말했다. “걸레…….” 마지막, 녀석의 그 말엔 정말, 정말이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게 되 버렸다. 들고 있던 교과서고 체육복이고 그대로 내팽개치고는 복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발목을 삐듯 순식간에 교무실로 내려와 엄마의 손목을 나꿔챘다. “엄마, 빨리, 빨리 집에 가.” “얘가 왜 이래.” “빨리 가. 응?” “병권이가 컨디션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네요. 그럼 병권아, 새 학교에서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선생이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것을 듣지도 않은 채 엄마의 손목을 잡고 차에 올라탔다. “병권아, 왜 그래. 누가 뭐라 그래?” 뭔가가 끼인 듯 눈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먼지라도 들어간 건지. “누구야. 누가 우리 새끼를 괴롭혀.” 자꾸 옆에서 채근하는 엄마의 얼굴이 일렁일렁 이상하게 보였다. 아침부터 긴장한 탓에 아무 것도 먹은 게 없는데 목에서 물컹 뭔가가 차올라와서―. “병권아, 우는 거야?” 씨발. 울긴 누가 운다고. 눈이 어떻게 되기라도 했나. 난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간 것 뿐이야. 절대 안 울어. 절대. 억지로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학교 건물을 바라본다. ‘너가 까발리지 않은 덕에 그 놈들 세 놈은 시시덕거리며 교내 잘 활보하고 있고, 서영준이란 놈은 전학 갔는데 수소문해보니까―.’ 두고 봐, 서영준. 날 건드린 걸 후회하게 될 거야. 평소 자작하는 취미는 없는데. 안 그래도 외로운 심경에 혼자서 술 마시면 그보다 더 청승맞아 보일 순 없을 테니까. 그런데 오늘은 혼자라도 술을 안 마시면 맨 정신으론 도저히 못 견딜 것 같다. 오지게, 꼭지 돌 때까지 마셔보자 결심하고 시내 어디어디 뒷골목에서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신 것 같다. 한 가닥 정도의 맨정신을 부여잡고 갈짓자로 걸으려니 자조적인 웃음이 새나온다. 이거 완전히 밑바닥 인생 사는 공사장 인부 같잖아. 나이 열일곱에 완전 삼류인생 되버렸잖아. “오빠, 놀다가.” “자기, 처음이지? 내가 잘해줄게.” “아따, 거시기 한 번 크네. 한 번 찔리면 일어나지도 못하겠어.” “동생, 어제 동생 아버지 왔다 갔어. 부자간에 내가 모신다니까?” 앞뒤에서 깔깔대는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보니 사창가 같은 그런 데로 기어들어온 모양. 뭐, 제대로 찾아온 거 아닌가.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같은 반 그놈의 말대로 난 걸레니까. 사내놈들 비린 정액이나 받는 걸레가 있을 곳은 사창가밖에 더 있겠냐. 술집 계집애들은 그나마 노래와 춤과 애교라도 끼워서 팔지. 사창가 창녀들이란 것들은 순 썩은내 나는 몸뚱이밖에 없어서 돈만 몇 푼 쥐어주면 자존심이고 뭐고도 없이 다리 벌려줘야 되지. “내가 싸게 해준다니까.” 화장인지 분장인지 얼굴을 허옇게 떡칠한 년이 내 팔을 붙들었다. 두터운 화장밑의 내 또래인 듯 앳된 얼굴을 보다 나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너, 얼마냐?” 내가 이렇게 된 이후 아버지 엄마는 매일같이 내게 카드니 현금이니 하는 것들을 손에 쥐어줬다. 집안에 틀어박혀 귀신처럼 앉아있는 내가 어지간히 눈에 걸렸던 건지 제발 밖에 나가서 바람도 좀 쐬고 친구들도 만나서 놀라고. 늦게 들어와도 하루에 몇 백을 써도 좋으니 기분 전환 좀 하라고. 겨우―이까짓 돈 몇 푼으로 그간의 무관심이 보상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속물 같은 인간들. 돈 떼먹고 달아는 놈들이 제법 되는지 기집애가 선불이라고 쫑알대길래 그 동안 안 써서 쌓여있던 만원짜리들을 세지도 않고 던져줘 버렸다.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돈 많네? 여관 갈 거야, 아님 호텔?” 당연히 호텔로 가야지. 비록 이런 상황이라고 해도 오늘은 총각딱지 떼는 기념할 만한 날인데. 포르노 비디오나 펜트 하우스 같은 잡지에서 본 것보다 여자의 몸은 훨씬 부드러웠다. 서투른 손으로 여자의 몰캉한 젖가슴을 만지자 여자가 콧소리를 내며 내 허리를 다리로 감아온다. 한동안 사람 몸 닿는 것도 싫어했는데 이러는 것 이제는 싫지 않는 느낌이다. 손으로 적당히 만져주자 성을 내며 단단하게 곤두선 여자의 유두를 입안에 넣고 빨며 손으로는 무성한 수풀을 헤치고 윤활액을 흘리고 있는 입구를 쓰다듬었다. 촉촉하고 따뜻한 그곳의 느낌에 여자에게는 절대 서지 않을 거라 믿었던 분신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형, 봐. 나, 형이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았어. 형이 아니면 그 어떤 사람도 채워줄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런데 이제는 형이 아니라 누구라도 돼. 내겐 더 이상 형이 필요 없다고. 이젠 내 머릿속에서 그만 꺼지라고. 축축하게 젖어 내 허벅지를 비벼대는 여자의 허리를 붙잡고 단단히 곤두선 내 것을 천천히 밀어넣기 시작했다. “하앙……아…….” 처음이라 서투른 내 움직임에 여자가 내 것을 조여대며 먼저 리드해온다. “거기말고……좀 더 깊이……아……좋아……자기 물건 최고야…….” 여자가 내 것을 조이며 허리를 움직여대자 말할 수 없는 쾌감에 휩싸여 여자의 젖꼭지를 빨아가며 본능대로 피스톤질을 과격하게 하기 시작했다. “하아……하아……나 좀……살려 줘……너무 좋아…….” 아주 넘어갈 듯 목을 뒤로 꺾는 여자의 질 안에 마지막으로 깊숙이 박아 넣으며―정액이 터지는 느낌과 함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같이 터져버렸다. 분명히 여자와 섹스한 것. 난생 처음으로 경험해본 어른의 놀이. 즐거웠다. 생각보다 여자가 주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절정의 순간엔 나 자신 의 존재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머릿속이 새하애지는 느낌이었으나 그것도 그때뿐. 사정을 마치자마자 밀려오는 느낌에 허무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 성교육 시간. 사랑하는 두 남녀가 미치자마자 밀려오는 허무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젠지 기억도 안 나는 성교육 시간.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를 채워주고 영혼과 육체가 결합하여 더욱더 깊은 사랑을 이루는 거라고. 지랄. 엿이나 먹으라지. 사정 후 그대로 쓰러져 여자를 끌어안고 잠을 자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슬그머니 집에 돌아왔다. 불이 꺼진 걸 보니 모두 잠든 것 같아 조용조용 내 방문을 열었는데 형이 책상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왜 이렇게 늦었어. 걱정하는 거 알면서.” 내 옷에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묻었을라나. 보란 듯이 바로 앞에서 마이를 벗어제꼈다. “창녀촌에 갔었어.” “뭐―?” 피곤한 듯하던 형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올라가는 게 무척 재미있게 느껴진다. “굉장히 좋았어. 여자 몸이란 게 그런걸줄은―. 들아가면 꽉 조이는 게 정말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로 좋아서 그 순간은 잊을 수 있거든. 그 놈들을―잊을 수 있거든. 그래서 앞으로 자주 이용할 생각이야.” 새빨개진 눈으로 날 보던 형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한테 할 말 있어?” “…….” “없으면 나가 줘. 간밤에 여자가 얼마나 보채는지 너무 무리했는지 피곤해서 말이야.” “……다음부턴 꼭 콘돔 쓰도록 해라. 운 나쁘면 나쁜 병 걸릴 수 있으니.” “좋아. 나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나쁠 거 없지.” “너 정말…….” 형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하다가 문을 쾅 닫고는 나가버렸다. 아주 잠깐, 형의 눈이 반짝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휘문고. 겨우 전학간 곳이 휘문고라니. 엄마의 배려라는 건 겨우 이 정도였던 거다. 정말로 날 위한다면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곳으로, 덧붙여 형과도 멀어질 수 있는 곳이여야만 한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상처를 깊이 감추고 오로지 공부에 전념하는 빈껍데기 아들이 되 주길 바랬던 거다. 아무리 아니라고 도리질을 해도 그 속을 누가 모를 줄 알고. “경기고에서 전학 온 홍병권이다. 낯선 학교라 힘든 점도 많을 테니 적응하기 쉽도록 잘 좀 도와주도록.” 고작해야 일 년차 내지는 이 년차 정도 되 보이는 선생은 아직도 딱딱 끊어지는 군대식 발음을 하고 있었다. 다리를 쫙 벌리고 두 손을 뒷짐 진 고압적인 자세가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신출내기일수록 학생에 대한 환상과 애정도는 높은 편이니까. 오래 고인 물일수록 썩는 법이라고 교직생활 오래 한 놈들이 꼭 차별도 심하다. “어디 보자, 빈 자리 있나.” 좌우로 살펴보지만 빈 자리가 보이지 않자 중간 정도 앉은 놈을 일으켜 내 키와 비교해본다. “너, 시력은 좋냐.” “둘 다 일점영은 됩니다.” “그럼 저기 네 번째 가서 앉고 누가 가서 책상하고 의자 하나씩 가져와. 뭐해? 빨리 튀어가.” 자리배치 때문에 약 오 분 정도 소란스러웠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조회를 마친 담임이 교실을 나가자 짝인 듯한 놈이 내 얼굴을 보면서 실실 쪼갰다. “반갑다. 손구락이다.” 언젠가는 이런 걸 설레어했던 적이 있다. 너무 외로워서, 친구가 없어서. 누구 한 사람 내 가슴속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손 내밀어줄 때 덥석 잡아버리곤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괜히 생색을 내면서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던 기억이. 서로를 부딪던 추억이. 하지만 그건 전부 내 착각이었을 뿐이다. 친구―. 그딴 건 개나 주라지. 같은 사내놈한테 뒤가 걸레가 되도록 꿰뚫리고 그 상처에 제정신을 잃어갈 때도 다른 놈들과 더불어 날 남창 취급했던 그런 놈들이. 그런 놈들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딴 친구 안 만들고 만다. 외로움에 못 견뎌 똥구덩이에 처박혀도 친구 따윈 안 만든다. “홍병권이다.” “……야, 이 자식 터프한 척하네. 니가 무슨 최민수냐? 하하!” 짤막한 내 대답에 어지간히 무안했던 듯 놈이 한 쪽 손으론 뒤통수를 긁적이고 다른 손으론 내 등을 툭툭 쳤다. 손이 제법 매운지 아무렇지 않게 툭툭 치는데도 골이 다 흔들리는 느낌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너가 이렇게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어도 난 안 속아. 알아? 이 새끼야. 내가, 내가―그 꼬라지로 당했던 걸, 그거 알아도 너 지금처럼 나한테 친한 척 웃을 수 있어? 그럴 수 있어? “첫 시간 물상이야. 교과서 같이 보자. 너넨 어디 꺼 쓰냐? 아, 여기 좀 어렵다고 하던데. 너희 여기까지 진도 나갔어? 흠―.”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는 꼬라지가 아주 가관이다. 역겨워, 위선자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주제에. “경기고라면 장근호 선배 알겠네?” “몇 번 이름 정도는.” “니네 학교 짱이라며. 얼마 전에도 우리 학교 쳐들어와서 완전히 엎어놓고 갔는데. 굉장하드라. 근데 너네 학교에 어떤 애 하나 그 선배네 패거리한테 돌림빵 당했더던데 사실이야?” 순간, 할일 없이 모나미 볼펜을 해부하다시피 하던 손이 멈칫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소문이 난 거야. 어떻게 같은 학교도 아니고 일진도 아닌 평범한 범생인 이놈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야. 잉크가 반쯤 남은 볼펜을 다시 집어넣는 손길이 덜덜 떨려왔다. “그냥 소문이야? 내 친구가 진짜라 그러던데. 너네 학교 사내놈 하나가 세 명한테 당했다고.” “몰……라. 난 잘 모르겠어.” “그 새끼, 전교에 소문 쫙 깔렸다더니 모르는 거 보니 아닌가보네. 하여간 구라 까는 거 하고는.” 씨발. 물상 선생은 왜 안 오는 거야. 근데, 수업종이 치긴 쳤나. 기억도 안 나. 몰라, 아무것도. 귓가가 윙윙 울리면서 내 앞에 앉은 놈의 목소리만이 들릴 뿐, 두근두근하며 빠르게 가속을 밟아가는 심장소리만 들릴 뿐. “아니야, 그거 진짜야. 나도 소문 들었어.” 앞엣 놈이 뒤로 돌아 짝놈과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우리랑 동갑인 어떤 놈이 일진 세 명한테 돌아가면서 대줬대.” “당한 게 아니라 대준 거야?” “그 녀석 완전 걸레에 남창이래.” “하긴 당한 거나 대준 거나. 계집애도 아니고 사내놈이면 어느 정도 완력은 있을 거 아냐. 필사적으로 반항했으면 맞았으면 맞았지 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지도 대주고 싶었으니까 그랬겠지. 으웩, 상상하니까 좆나 속 메스꺼워. 사내놈들끼리―.” 책상에 놓여져있던 손에 힘이 점점 들어가 손톱이 이제는 거의 책상을 긁어내리고 있다. 얼마나 힘을 줬는지 마디가 하얗게 변해 툭툭 불거져나온 게 보였다. 그만해, 제발. 이제 됐으니까 그만해. “그딴 새끼들이 있으니까 에이즈가 창궐하는 거 아니겠냐? 더러운 기생충같은 새끼.” “야, 호모들은 어디로 하는지 아냐? 여자가 아니라서 구멍이 없잖아. 키득―거기로 한대. 똥구멍.” “엑, 진짜? 우웩, 올라온다. 그놈들도 거기에다 박고 싶을까? 섰던 좆도 죽겠구만.” 이제 그만 하라고. “호모들을 괜히 더럽다 그러겠냐? 남자끼리 그러는 것도 일종의 정신병―.”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몸을 돌린 채 지껄이고 있는 놈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야―야. 왜 이래.” “씨발. 니네들이 뭘 알아? 니네들이 뭘 알아? 니네들이 뭘 알아아아아―――!!!” “야―야아―.”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반장, 뭐해!! 얘 좀 잡아 봐!” “눈이 완전히 맛이 갔는데…….” “날 보고 어쩌라고!”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어 정신이 들고 보니 내 앞에 마구 지껄이던 놈이 널부러져 있었다. 두들겨 엎은 건 아니고 단지 일으켜 던져버린 듯 맞은 흔적은 없다. 분을 풀 데가 없어 씩씩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오십 명 남짓한 놈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웬 미친놈이냐는 듯한 느낌이다. “씨발.” 그대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교복에 쓰레빠 차림으로 한참을 달리다 튀어나온 보도 블럭에 쓰레빠가 걸려 넘어졌을 때에서야 교실에 가방이고 뭐고 놔두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되돌아갈 생각 따윈 눈꼽만큼도 없다. 아니, 오늘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안 갈 거다. 가면 뭐하게, 내가 공부 못해서 안달난 형같은 인간도 아니고. 보나마나 눈치 빠른 인간들은 다 꿰고 있을 건데. 그 걸레가 이놈이라고 소문 다 났을 건데. 현저히 안 좋아진 기분으로 우선 신발가게에 갔다. 다행히 안주머니에 꾸깃꾸깃한 만원짜리가 두 장 있어서 집까지 걸어가야 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신발가게에서 대충 싸구려 운동화 하나를 꿰신고 마음 내키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건지 대책이 서질 않는다. 나란 놈, 원래부터가 비전이고 뭐고 그딴 거 단어 스펠링조차도 모르게 살아온 인간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또 다른 의미로 막막하다. 그야말로 인간 불신증에 걸려 형이고 부모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다. 이런 상태로 내가 어떻게 학교에서 대인관계를 엮어가겠으며 또 어떻게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한단 말인가. 또 어떻게 이런 만신창이 같은 몸을 해갖고 결혼을 한다고. 이대로 속이고 결혼을 하면 참한 여자 하나 인생 망치는 것밖에 안 되는 거니까. 내 인생 하나 망친 걸로 족하지, 나 때문에 여자 우는 꼴 그건 정말 못 봐준다. 결국 이렇게 겉돌면서 부모 돈 기생해서 폐인처럼 살다 죽는 거. 여기에 결론이 나온다. “씨발.” 저절로 나온 욕에 괜히 앞에 나뒹구는 음료수 캔을 집어찼다. 텅 빈 소리를 내며 캔이 튕겨져 나가다 누군가의 발 밑에 멈추는 게 보인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올려 얼굴을 본 순간 몸이 딱 굳어버렸다. 우리 집 아파트 후문 담벼락에 기대 있는 서너 명의 사내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느낌만으로 알 수 있었다. 경기고의 일진 패거리들. 서영준의 사주를 받곤 날 강간했던 그놈들의 써클.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과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를 보자 공포에 질린 몸이 도망치지도 앞으로 나서지도 못한 채 굳어져 있었다. “니가 홍병권이냐?” 유리를 손톱으로 긁는 듯 신경에 몹시 거슬리는 목소리. “니네 형이랑은 별로 안 닮았네.” 한 발 내 앞으로 걸어 나온 남자의 얼굴은 눈에 익은 것이었다. 우리 학교 아니, 경기고의 짱이라는 장근호 선배. 주위 서너 학교를 무릎 꿇린 잘 나가는 싸움꾼. 그래도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짱. “뭡……니까…….”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눈을 제대로 마주친 적도 없고 지나갈 때 어깨를 부딪친 적도 없는데. 그런데 왜 내 앞에 니네들이 자꾸 나타나는 거야.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두려움에 목이 꽉 잠겨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용건 있는 건 내가 아니고 최후영이니까.” 최후영? 내가 부탁한 거 때문에? “넋 놓고 있지 말고 따라와.” 휙 돌아서서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놈들을 보자 그제야 긴장이 일시에 풀리는 기분이다. “뭐하냐? 안 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 근호 선배가 날 보며 한 소리 하길래 잽싸게 뒷자리에 올라탔다. “다치면 니 책임이니까 꽉 잡아라.” 차가운 감촉의 가죽잠바를 꽉 잡자 무서운 속도로 튀어나가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도 못한 채 이제 곧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을 만나고 복수할 기회가 주어진단 생각에 눈을 곽 감고 근호 선배의 허리만 죽어라 끌어안았다. 정신없이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시리다. 어느 새 살인적이라고 할만치 더웠던 여름을 지나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날 태운 오토바이는 한참을 달려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 어느 덧 건물이 듬성듬성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한낮이라 텅 비다시피 한 도로를 묘기에 가깝게 질주하던 오토바이는 돌고 돌아 야산 아래 짓다만 듯 시멘트 덩어리 같은 삼층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내려.” 여전히 듣기 거북한 목소리의 근호 선배가 말하며 턱짓으로 건물을 가리켰다. 저기에 후영 형이 놈들을 데리고 날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오랜 시간을 달려 뻣뻣해진 몸을 오토바이에서 떼어내며 건물을 올려다봤다. 깨져서 성한 데가 없는 유리창, 금이 죽죽 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벽, 모서리 모서리마다 도사리고 있는 거미줄들. 귀신이라도 금방 튀어나올 듯 음산한 건물이지만 내 복수를 위해선 더할 나위 없는 멋진 곳이다. “들어가자.” 침을 꿀꺽 삼키곤 성큼성큼 지하실로 들어가는 근호 선배를 쫒아갔다. 쿵쾅쾅쾅―. 발을 내려 놀 때마다 지하실 계단이 둔한 감으로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울린다. 이런 데를 후영 형은 어떻게 알았을까. 어떤 용도로 사용했을까. 여자와의 섹스? 아니면 부탄가스 같은 것? 곧 다가올 어떤 것에 대한기대로 지하실의 철문이 내 눈앞에 드러날 때까지 내 머릿속은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고 있었다. 놈들을 보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하지? 어떤 식으로 복수를 해야 하지? 꽉 주먹 쥔 손안에 미끈하게 땀이 배어나온다. 쾅―. 나보다 먼저 내려간 근호 선배가 문을 열어젖히자 어두운 지하실의 백열등이 눈을 찌푸리게 만든다. “기다리던 손님 왔어.” 눈을 손으로 가리며 앞을 보는데 벽에 기대있던 여러 명의 사내들에 둘러싸여 쭈그리고 앉아있는 낯익은 인영이 보였다. “후영 형.” “간만이다.” 병주 형조차도 무색해질 정도의 조각 같은 얼굴이 무표정하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뱉어내더니 발로 짓이기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럼 우선 확인 작업부터 들어갈까. 니네들 전부 일렬로 서봐.” 보기만 해도 아찔해 보이는 놈들이 몇 마디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느릿느릿 일렬로 선다. 실질적인 짱이란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지 짱인 근호 선배는 한쪽 구석에서 팔짱을 낀 채 흥미로운 시선을 보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그놈들 얼굴 기억하고 있겠지.” 물론, 꿈에서도 죽어서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다. 지금 제대로 복수해두지 않으면 평생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얼굴들. 이 지역을 장악한 일진이라고 해도 멤버는 겨우 이 십 여명. 그 중에서 그때의 세 명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다. 눈을 부릅뜨고 말하면 죽이겠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놈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지명된 놈들, 앞으로 나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나온 놈들의 표정이 비장했다. 지난 여름에 앞에 있는 홍병권이, 서영준이 집에서 돌림빵한 거 니네들 짓 맞냐.” “…….” “…….” “…….” “두 말 하게 하지 마라. 맞냐고, 새끼들아.” “마……맞습니다.” “하지만 형, 돌림빵이든 뭐든 형과 연관되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했잖아요.” “그 일 있고나서 얘기했을 때도 아무 말 없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겁니까.” “그리고 저 녀석, 저희가 강제로 그런 것 아닙니다. 지 스스로 대준 거였다고요. 너도 뭐라고 말해 봐, 새끼야.” 스포츠 모자를 쓰고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 놈이 금방이라도 날 내리칠 듯 눈을 부라렸다. “분명히 돈 주고 했습니다.” “마……맞아요. 저놈이 형한테 당했다고 거짓말한 거예요.” “형, 우리 믿죠?" "……." “후영 형…….” “…….” 정신없이 떠들어 대봐도 담배를 피며 말이 없자 놈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진다. “다 끝났냐?” “예?” “변명 다 끝났으면 시작해.” 자기네들끼리만 미리 얘기가 됐었던 모양인지 후영 형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양 옆에서 놈들의 팔을 붙잡아 옴쭉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 “형―.” “저 새끼가 구라 치는 거예요!” “억울해요!” “개새끼, 넌 뒤질 줄 알아!” 놈들의 비명과 몸부림을 무시하며 형이 다소 느른한 동작으로 담뱃재를 턴다. “니 손에 넘길 테니까 죽이든 살리든 니 맘대로 해봐. 얼마나 멋진 예술작이 나오는지 구경해주마. 단―.” 교복 소매를 걷어 올리며 시간을 확인한다. “한 시간 안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형!” “근호 형!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퍼억―! 비명을 지르며 팔을 빼내려 몸부림치는 뻐드렁니놈의 배를 싸구려 운동화로 걷어찼다. “커헉―.” 명치를 제대로 맞은 놈이 벌어진 입가로 침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시끄러. 한 시간 안에 쌓인 걸 전부 풀려면 꽤 바쁘잖아.” “……니가 날 건드리고 살 것 같애? 내 밑에 깔려서 눈물 콧물 질질 짤던 놈이.” 그래도 아직 분위기를 못 느끼는 건지 그 못생긴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놈이 웃었다. “너 말야, 그 이빨 존나 기분 나쁜 거 아냐?” “뭐?” 놈이 미처 내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불끈 쥔 주먹으로 이빨을 세차게 내리쳤다. 빠각―!!! “우……우우…….” 이빨이 어지간히 아팠던 건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놈이 입을 감싸 쥐었다. 감싸 쥔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는 걸 보니 십중팔구 이빨이 부러진 것이다. 이제 그 지저분한 뻐드렁니를 안 봐도 된다는 생각에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시하…….” 이빨이 부러진 덕에 발음이 픽픽 새는 놈이 고개를 쳐들어 날 보는 눈이 또 마음에 안 들었다. 손가락을 세워 놈의 부릅뜬 눈을 찔러버렸다. 푸욱―!!! “으아아아악―――!!!” 놈의 안구에 내 손가락이 푹 찔린 그 느낌이 꽤 좋다. 손톱 끝에 피가 묻어나온 걸 보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이 새끼 너 미쳤지―.” 놈이 피가 줄줄 흐르는 눈을 쥐고 씨멘트 바닥에 돌돌 구르는 것을 새하얘진 얼굴로 보던 놈들이 소리 질렀다. “이 새끼, 저 새끼 하지 마! 니 새끼 아니야!” 텅 빈 지하실이라 내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말해 봐.” 양키즈 캡을 오늘은 안 썼네. 붉으죽죽한 놈의 대갈통을 움켜쥐고 말했다. “너, 내 이름 뭔지 알아?” 날 강간하던 때의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완전히 질려버린 눈을 한 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 이름 홍병권이야.” “호……홍병권…….” 입술을 달싹이는 놈의 머리칼을 잡고 울퉁불퉁한 씨멘트 바닥에 그대로 얼굴을 갈아버렸다. “으아아아악―――!!!” “내가 몇 살이야? 몇 학년 몇 반?” 시뻘건 핏물이 줄줄 흐르는 놈의 목을 잡고 질질 끌고는 벽에 던져버렸다. 콰앙―――!!! 어마어마한 소리가 나면서 벽에 머리를 부딪혔던 녀석이 이마위로 피를 흘리며 주륵 엎어지는 것이 보이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보던 놈이 헛바람을 삼키더니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잘못……히끅……잘못 했어……제발…….” “너희는―.” 스포츠 머리를 한 녀석에게 다가가 놈의 중심을 발로 짓이기며 말했다. “내 이름도 뭣도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단순히 재미만으로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어.” “아악―아아아악―――!!!” “데……데바……ㄹ……모슘만……어허엉…….” 두 녀석은 온통 피칠갑을 한 채로 기절한 지 오래. 이빨이 깨부서진 녀석만이 이빨사이로 바람을 쉭쉭거리며 내 바짓가랭이를 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더러운 손 치워.” “제바……어어…….” 계속해서 피투성이 손으로 바지를 잡고 눈물을 쏟아내는 녀석이 짜증나 옆에 구르고 있던 파이프를 잡아 번쩍 치켜들었다. ―죽을지도 몰라. 그래도 너 괜찮은 거야? ―웃기지 마. 지옥과도 같았던 그 시간들을 생각해 봐. 이 새끼들은 죽여도 싼 쓰레기들이야. 신도 용서하실 거야. 상대가 이런 놈들이라면. ―이 녀석들이 아니라 너 자신의 인생을 생각해. 살인을 하고도 너 괜찮을 수 있어? ―괜찮을 수 있어? 괜찮을 수 있어? ―꺼져. 꺼져버려. 파이프를 쥔 손에 불끈 힘을 쥐고 놈의 척추를 향해 내리쳤다. 부웅―.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며 아래쪽으로 뻗어가는 손이 일순간에 멈춰버렸다. 누군가가 내 손목을 꽉 움켜잡은 것이다. “거기까지. 타임 오바야, 홍병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반 갑 정도의 줄담배를 피고 있던 후영 형이 일어났다. “아쉬워 할 건 없어. 어차피 처음부터 이 녀석들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했으니까. 진짜는 이쪽이지.” 후영 형이 턱짓을 하자 굳게 닫혀있던 지하실 문이 열리며 눈부신 빛 사이로 누군가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놔, 이 새끼야!! 이거 안 놔?! 이 씨팔―개좆같은 새끼!! 너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 두고 봐, 납치 폭행죄로……!!"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 지르며 누군가에게 팔목을 잡혀 끌려 내려오던 녀석이 날 보고는 딱 굳어버렸다. “호……홍병권…….” “간만이다, 서영준.” 억지로 용기를 짜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너무 놀래서 맛이 간 건지 내 얼굴을 본 뒤로 놈은 눈에 띄게 얌전해져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다. “…….” “…….” 서로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셔츠 바람으로 있던 후영 형이 곤색 마이를 걸치며 앞으로 나왔다. “종진아, 너는 일일구에 연락해서 이 쓰레기들 치우고. 내 지시 있을 때까지 모두 해산.” 후영 형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스무 명 남짓한 인원들이 지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피투성이로 널부러져 있던 세 놈을 옮겨가자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실 안에는 서영준과 나만이 남게 되었다. “…….” “…….” “너, 보기보다 빽 좋은 애였구나? 학생회장 형에, 학교 짱까지 뒤에 모시고 있고.” “…….”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후영 형의 대인원이라면 몰라도 나 정도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때릴 거야? 아님 강간할래? 니가 생각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밖에 더 있겠어? 난 반항하지도 도망치지도 않을 거니까―씨발―.”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걸 보니 겉으론 아닌 척 해도 몹시 겁에 질려있는 듯 했다. 서 있는 거나 겨우 서 있을까. “어디 니 맘대로 해봐. 미리 말해두는데 니가 원하는 건 얻을 수 없을 거야. 두들겨 맞는 것도 사내놈 밑에 깔리는 것도 나한텐 너무 익숙한 일 이라서―.” 끊임없이 조잘대는 하얗게 질린 저 입을 도려내고 싶다. 놈들이 남기고 갔는지 발에 채이는 커터날을 주워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흠칫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 칼로 나 죽이게? 어디 죽여 봐. 그럼 나만 더 좋지. 살인죄로 깜방 간 동생에 면회와서 마주앉은 형. 상상만 해도 아주 죽이는 그림이네.” “서영준―. 그만 입 닥쳐라. 니가 그렇게 떠들지 않아도 곧 죽여줄 거니까.”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다 결국엔 벽에 등을 부딪치고는 몸을 미세하게 떨기 시작했다. “우……웃기지 마. 하나도 후회 안 해. 그때로 되돌아가면 똑같이 행동했을 거야. 너 따위―너 따위 정말 싫어, 개새끼야! 니가 뭔데 나한테서 병주를 뺏어가. 니가 뭔데―!”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언제 겁을 냈냐는 듯 내게 달려들어 내 반도 안 되는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부터 사년 반을 사랑했어! 알아? 사년 반이라고!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했어. 날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한 번만 안기게 해달라고. 날 사랑하지 않아도 좋으니 날 보면서 한 번만 웃게 해달라고. 술에 취해서 니 이름 부르면서 나 안았을 때도 너무 행복해서 차라리 죽고 싶었 어. 그 기분 그대로 간직한 채 죽고 싶었어. 그런데 왜 안 죽었는 줄 알아? 결국은 너한테 냉담한 눈길 받고 상처 입은 채 나한테 올 병주를 알기 때문에. 그 상처 보다 듬어 주고 싶어서. 그래서 내 아파트에까지 여자 데리고 와서 잘 때도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내내 기다렸어. 아무리 아프고 괴로워도 결국엔 병주 옆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을 수 있는 건 나 뿐이니까. 그렇게 희망을 가지면서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다른 놈한테 다리 벌리라면 벌려줬어. 매일같이 엉망진창 된 몸으로 또다시 두들겨 맞아도 일주일을 못 견디는 파트너 에 난 유일하게 육 개월 을 버텼으니까. 조금은 병주도 날 특별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래, 계속 그러다 보니까 욕심이 생겼어. 인정해. 그런데 그 마음이 나쁜 거야? 단 한 번 마음 아파해 보지도 않은 너 따위에게 병주 뺏기기 싫어서―왕자처럼 호강하며 살면서 날 더럽다는 듯이 쳐다보고―너무 사랑해서 손 가락 하나 대기조차 힘든 병주 그렇게 하인 부리듯 하는 니가 너무 싫어서―그래서 그랬어. 나 후회 안 해. 그러니까 죽이고 싶음 죽여!” 눈물을 후두둑 후두둑 떨어뜨리며 정신없이 바쁘게 지껄이던 놈의 눈이 독기를 품고 있었다. “죽이라고. 그때도 말했지만 구차하게 살아서 병주랑 너랑 잘 되는 거 못 보니까 차라리 죽여.” “닥치랬지―!!” 어째서일까. 저 모습에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은 느낌은. “역시 깜방 가긴 싫은 모양이지? 내 손으로 죽어줄까? 그럼 돼?” 놈이 내 손에서 커터날을 빼앗기 위해 달려든다. 놀라서 손을 확 위로 치켜든 순간 놈의 얼굴이 확 옆으로 돌아가며 뺨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염치없는 줄은 알겠지만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부탁하자. 병주―조금만 사랑해주면 안 되겠니?” 눈물이 글썽글썽한 그 갈색 눈이, 창백한 얼굴에 그어진 그 새빨간 혈흔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을 쥐어뜯는 것만 같다. “계속 말하지만 난 병주 떠나버리면 못 살아. 너랑 잘 되는 것도 보기 싫고. 그러니까 나 죽여. 니 기분 풀릴 때까지 두들겨 패고 죽여. 대신에―병주―너만 바라보는 불쌍한 병주 이제 그만 좀 잡아줘―어허엉―어어―.” 그 말을 끝으로 못내 참았던 설움을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놈을 보다 나도 모르게 커터날을 떨어뜨리고 놈에게 다가갔다. “―――.” “흐읍―.” 부드럽다. 남자라곤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말랑말랑한 입술이 내 입안으로 빨려들어 온다. 자꾸만 도망치려는 머리를 붙잡아 벽에 고정시키고 입술을 혀로 핥자 눈물을 머금은 입술이 짠맛을 낸다. 입술을 빨아 당기며 아랫입술을 살짝 이빨로 깨물자 낮게 신음을 흘리며 입술을 열어준다. 단내는 풍기는 그 입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곧게 배열된 치아를 부드럽게 훑어주고는 날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혀를 찾아내 혀뿌리를 찌르자 곧 경직된 혀가 풀리며 내 혀와 맞닿는다. 그 혀를 유연하게 휘감아 내 쪽으로 끌어당기며 입안 가득 고이는 타액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받아 삼켰다. “츕츕―.” 축축한 지하실 구석에 음탕한 소리가 울려 다시 내 귀로 되돌아오며 욕망을 더 부추긴다. 계속해서 거칠게 감아대던 혀를 아쉽게 입안에서 빼내 길게 늘어지는 타액을 핥으며 모양 좋게 날렵한 턱을 혀로 애무해 나갔다. 매끈한 턱과 그 밑에 우아한 선의 긴 목, 부드러운 감촉의 쇄골. 도무지 남자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몸이다. 처음으로 경험했던 싸구려 창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그러나 남자임이 분명한 납작한 가슴의 오른쪽 젖꼭지를 집게 손가락 사이에 끼워 희롱하면서 왼쪽 젖꼭지를 입안에 넣었다. “흐읏―.” 남자를 많이 경험해본 몸이라서일까. 입안에 넣기만 했는데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허리가 휘어진다. 빳빳하게 곤두선 젖꼭지를 만지던 손을 뻐튕기는 허리로 가져가 여자처럼 가늘게 곡선이 들어간 허리를 애무하듯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으로는 작은 젖꼭지를 빨아 당기기 시작했다. “하앗―하앗―.” 반쯤 열려진 붉은 입술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나를 닮았다는 외쌍꺼풀진 눈을 지그시 감고는 더욱더 나를 유혹하는 듯한 낮은 신음을 흘린다. 가늘은 허리를 거쳐 교복바지와 브리프를 벗겨내곤 다리 사이 허벅지 안쪽 연한 살을 깨물었다. “하아―그만―.” 금새 새빨개진 흔적을 몸 곳곳에 달고선 눈가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힌 그 모습에 더 이상은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바지 속의 분신은 지퍼를 뚫고나올 듯 잔뜩 흥분한 채 빨리 좀 해결을 해달라고 아주 아우성을 쳐대고 있었다.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얼굴을 마주 봐주며 서투르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교복 와이셔츠 대신 입은 티셔츠를 잡아뜯듯 목 위로 올려내고 성급하게 바지 버클을 풀어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벗고 어느새 벌어져있는 녀석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가늘어서 손만 대도 부러질 것 같은 두 다리를 잡아 내 어깨위로 올리자 하반신이 붕 뜨며 하얀 엉덩이가 눈앞에 드러난다. 그 아래로 무릎을 갖다 받치고선 적나라하게 드러난 붉은 항문을 바라봤다. 중심에서부터 점점이 펼쳐지는 꽃잎. 인간의 신체 중에서 가장 더러울 수 있는 그곳이 이 녀석의 몸에서는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살아 숨쉬는 꽃과 같은 그곳으로 손가락을 가져가 주름들을 하나하나 만져보기 시작했다. “흣―.” 내 손길에 흠칫 놀란 놈이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비튼다. 그 와중에 내 눈앞에 드러난 그곳이 벌름거리며 나를 유혹하듯 내부를 슬쩍 비춰준다. 그 모습에 잔뜩 흥분해있던 내 것이 더더욱 단단해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녀석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귀두를 밀어 넣기 시작했다. “하아아―.” 고통을 느끼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아래를 조여 오는 놈의 중심을 잡아 부드럽게 쓸어주자 금새 타이트하던 몸이 풀리며 끊어버릴 듯 조이던 힘을 푼다. 그새를 놓치지 않고 한번에 뿌리까지 박아 넣으며 놈의 다리를 내 어깨에서 내려주고 놈의 팔을 내 목에 둘러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팔로 감고는 삽입의 고통을 참기위해 피부에 손톱을 박아 넣기 시작한다. 손톱이 박힌 목뒤가 불에라도 지진 듯 아파왔지만 놈이 삽입에 익숙해질 때까지 잠자코 그 상태 그대로 기다렸다. “이제―이제―.” 모기만한 소리로 뭔가를 달싹인다. 이제 움직여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하곤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자 아직도 꽤 아픈지 입술이 피가 나도록 꽉 깨물고는 그래도 제법 잘 참아낸다. 허리를 움직여 더 깊이 놈의 몸 안으로 들어가며 탐험을 해나간다. 깊고, 좁고, 어두운 그곳은 마치 터널과도 같아서 위험과 스릴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이리 저리 부드럽고 뜨거운 내벽을 미끄러져 탐험하다 어느 곳에 이르자 놈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아주 자지러진다. “아항―아아아―.” 목을 감은 팔에 힘이 강하게 들어가며 기역자로 벌려져있던 두 다리가 어느 새 내 허리를 휘어감고 있다. 그 반응에 무의식적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피스톤질에 점차 가속이 붙으며 놈이 느꼈던 곳을 계속해서 찔러댔다. “아악―제발―그만―.” 그만 두라는 건지 그만 두지 말라는 건지 놈은 팔다리를 완전히 내 몸에 깊이 감고 더 밀착한 채 정신없이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후끈해진 지하실은 열기를 가득 담은 채 퍼억―퍽―하는 거칠게 살 부딪치는 소리만이 들리고 있다. 깊이 들이칠 때마다 놈의 내벽은 내 것을 강하게 조였다가 확 풀어 내 것을 밖으로 내몬다. 다시금 거칠게 침입해 들어가면 환영하듯 구멍을 넓게 벌려 손쉽게 내 것을 안쪽 깊숙이까지 들여 강하게 조여준다. “흐윽―.” 미칠 것 같은 쾌감이었다. 지하실의 거친 씨멘트 벽도, 눈앞에 범해지는 사람도, 내가 처한 현실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흥분 상태 가 되어 놈의 허리를 붙잡고 수십 여분을 들락날락거렸다. 머리끝이 곤두서버린 것 같은 지독한 엑스타시. 완벽하게 하얗게 질려 몸을 부들부들 떠는 놈의 허리를 끌어안고 동시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흐윽―학―.” “하아―아아―.” 정말로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클라이막스. 완벽하게 정신이 나가버린 그 상태서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 대신 나 자신도 모르게 뭔가 단어가 튀어나간다. “형…….” “병주…….” “―――!!!” “―――!!!” 경악에 물든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나는 놈의 몸속에, 놈은 내 배에 정액을 흩뿌렸다. “…….” “…….” “…….” “…….” 좀 전의 열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다시 찾아온 침묵과 싸늘한 냉기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온다. 멍한 표정으로 벽에 기대앉아있는 내게서 돌아누워 등을 보이는 녀석의 다리와 엉덩이를 보자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미쳤어―미쳤어―. 대체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홍병권.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녀석을 안다니. 니가 지금 제정신인 거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 몸을 일으켜 엉금엉금 먼지투성이 바닥을 기다시피해서 놈의 몸에 올라탔다. “어흑―흑―병주―병주야―.” 끊임없이 형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로 얼굴을 적시고 있는 놈의 몸에 손가락을 감았다. “닥쳐―.” 너 따위가 뭔데 병주 형 이름을 부르는 건데. 아무한테다 다리 벌려주는 화냥년 같은 새끼가. 병주야―병주야―. 병주야―병주야―. 병주야―병주야―. 목에 감은 팔에 힘을 주자 입 밖으로 소리가 되지 못하는 형의 이름을 계속해서 내뱉으며 내 손을 손톱으로 할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버려. 개새끼야!” “컥―커헉―.” 숨이 막혀오는지 가쁜 소리를 내며 몸부림을 쳐댄다. 부러질 것 같은 가는 다리로 내 몸을 걷어차고 목을 짓누른 내 팔과 얼굴을 마구 할켜대고 있다. 툭―투둑―. 놈의 손톱에 할켜진 내 얼굴이 따끔따끔해오며 놈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위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제발 좀 죽여버려. 이제 그만 좀 날 휘젓고. “쿠륵―.” 묘한 소리를 목구멍으로 내더니 커다래진 눈이 눈꺼풀을 확 뒤집었다. “학―.” 그 모습에 나 자신도 놀라 목을 조르던 손을 떠에내 뒤로 물러나자 발버둥을 쳐대던 몸이 축 늘어졌다. “서……영준……야·……구라치지 마, 이 새끼야…….” 떨리는 손으로 놈의 몸을 툭툭 쳐보지만 싸늘한 놈의 몸은 인형처럼 어색하게 흔들리기만 할 뿐. 죽었다―죽였어. 서영준을 기어코는 죽여 버렸어. 갑자기 밀려오는 공포심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속옷과 바지를 꿰는 둥 마는 둥 하며 서둘러 지하실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헉헉대며 무작정 건물에서 멀어져 달리는 다리가 내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에서 끝없이 흐르며 시야를 가리는 눈물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어허엉―어흑―.”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로 가는 걸까. 집에 들어가지 않은지 꽤 오래된 것 같다. 열흘 아니면 그보다 더. 보기 싫은 형이나 껄끄러운 부모란 인간들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낮에는 여관방 구석에 처박혀 죽은 듯이 자다가 어둑어둑해지면 나이트에서 술을 퍼마시고 부킹해온 연놈들과 몸을 섞는 그런 날이 계속됐다. 처음엔 내 손에 의해 죽어가든 서영준의 얼굴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자극적이던 여자의 몸도 이젠 발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이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퍼마시던 술도 이젠 마실수록 말짱해지는 느낌이다. 주르륵 쏟아지는 물줄기 속에 몸을 맡긴 채 손바닥을 쳐다보며 한참동안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날―. 그렇게 겁에 질려 벌벌 떨다가 집으로 전화를 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나간 상태였고 학교에 있을 형이 전화를 받을 리가 없다. 계속해서 울리는 통화음 소리를 들으면서 질질 짤다 무의식 중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정신없이 무슨 말인가를 지껄였던 것 같다. “울지 마. 금방 갈 테니까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 목소리에 안심이 되어 전화를 끊지도 않은 채 계속 붙잡고 흐느끼기만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얼마 기다리지 않아 형이 땀범벅이 되어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체육시간이었는지 체육복 차림이었고 그 단정한 형이 맨발에 운동화 뒤축을 꺾어신고 있었다. 형의 품에 안겨 거의 정신을 놓고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집 근처의 종합병원 대기실이었고 내 앞에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니가―니가 그랬냐?” 그렇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기이하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멋들어진 중견 탤런트인 주제에 소주와 설렁탕을 좋아하고 취하면 일생에 세 번 우는 남자의 로망스 따위를 밤새도록 읊던 아버지의 그 목소리가 오늘은 울부짖음처럼 들려왔다. 그 울부짖음이 내 폐부를 끊는 듯 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망설일 수도 없었다. “예…….” 내 대답에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고 아버지는 시뻘개진 낯으로 간신히 말을 끄집어냈다. “알았다…….” 수술대에 오른 세 놈은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실명에다 식물인간, 척추골절. 온몸의 뼈란 뼈는 부서지고 가루가 나서 엉망이 된 상태. 그야말로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고 했다. 그 정도로 두들겨 맞고도 목숨이 붙어있는 게 용하다고. 자기 자식을 반병신 만들어놓은 것에 대해 놈들의 부모들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날 두들겨패고 저주했다. 내 귀한 외아들 당장 살려놓으라고. 개새끼―소새끼―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서영준을 죽였다는 공포에 온몸을 미친 듯이 떨던 내 멱살을 틀어쥐고 삿대질을 하던 부모들의 손목을 부여잡으며 내 부모님은 용서를 빌었다. 위로금과 병원비는 얼마든지 댈 테니 철없는 자식놈 한 짓 제발 용서해 달라고. 그 도도하고 잘나가던 탤런트 부부가 울면서 무릎을 꿇고 있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보는 부모님의 모습을 난 형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멍하니 바라봤다. “돈이면 다야? 돈이면 다냐고! 내 아들 어쩔거야―저러다 죽으면 누가 책임질 거야!!” “절대 용서 못해. 이 새끼 깜방 쳐넣지 못하면 나도 내 아들 따라갈 거야! 당신들 집 불질러 버리고 나도 내 아들 따라갈 거야!” 목공소 직원, 택시기사, 모토닉스 말단 사원. 전형적인 블루 칼라들. 가난하고 빽 없어서 서러운 저들로서는 절대 날 상해죄로 소년원에 처넣을 수가 없다. 내 부모란 사람들, 직업은 탤런트지만 생각보다 정관계 쪽으로 발이 넓어서 온갖 인맥 다 동원하면 이 사건, 흐지부지되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상해와 살해는 엄연히 다르다. 상대 피해자가 죽어버리면 가해자는 어느 나라 대통령 아들이라 해도 감옥 안 갈 수 없는 거다. “형―서영준이―서영준이―.” 아직도 선한데. 놈이 내 앞에서 눈을 희번뜩 까뒤집으며 넘어가던 모습이. “괜찮아, 괜찮을거야. 좀전에 수술실 들어갔으니까.” 싸늘했단 말이야. 인형처럼 안 움직였단 말이야.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때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 사내 서너명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희뿌연 내 눈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경찰복. 나를―나를 잡으러 온 거야. 날 살인죄로 유치장에 가두려고. 그 생각이 들자 눈앞이 새하얘지며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무작정 형을 밀쳐내고 반대편 복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병권아―병권아―!” “아이고, 저 놈 도망간다.” “잡아!!” 내 뒤로 들리는 목소리에 더욱더 다리 힘을 줘가며 출구를 찾아 미친 듯이 달렸다. 타타타탁―. 뭐야, 뭐야.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헉헉대는 숨소리. 제발 날 내버려둬. 그건 실수였어. 실수였다구.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가는 발소리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을 무렵 뒤를 쫓던 인물이 내 팔을 꽉 잡아당겼다. “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뒤의 인물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 아―아아―.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체취. 긴장이 풀리며 다리 힘이 빠져나간다. “몸 조심해라.” 그리고 내 윗주머니에 지갑을 넣어주고 내 등을 확 떠밀었다. 형이 나를―. 난 형한테 아무 것도―. 끝없이 몸을 적시는 샤워기를 돌려 잠그고 전라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에 닿은 몸이 싸늘하다. 어째서인지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에 하루 웬 종일 담그고 있어도 좀처럼 뜨거워지지가 않는다. 몸도 머리도 얼음짱처럼 차가워서 원 나잇 스탠드로 낚은 상대들이 불평을 해대기 일쑤였다. 오늘의 상대는 중학생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어린 소년. 사내놈 주제에 여리여리하고 얄쌍하게 생긴 것이 암내를 풍긴달까. 이런 어린 놈을 나이트에서 받아줄 리는 없고 도대체 어디서 눈이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술이 만취해서 길가는 놈 붙잡고 지랄을 해댔겠지. 실제로 며칠 전에도 여자에게 뺨을 맞고 보도 블럭에 고꾸라졌던 기억이 있으니까. 팬티 한 장 안 걸치고 욕실에서 나오는 나를 침대위에 있던 녀석이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본다. 웬 미친 놈이가 싶겠지. 몇 초 동안을 벙쪄서 쳐다보던 놈이 작게 달싹인다. “저, 선불로 주세요.” 남창은 아니다. 게이빠 같은 건 있다는 말만 들었지 어느 구석에 있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으니까. 비몽사몽하던 와중에도 기억나는 건 ‘오 만원만 주세요.’라는 말. 계집애도 아는 어린 사내놈이 왜, 무엇 때문에. 아니, 내 알 바 아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남의 일에 참견 하면 그야말로 미친 새끼지. 발가벗은 채 침대에 앉아 하반신만을 시트로 가리고 빤히 쳐다보는 놈의 옆자리로 기어들어갔다. 침대 선반에 던져놨던 형의 지갑을 열고 만 원 짜리 다섯 장을 던져줬더니 후다닥 옷 속에 감추며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귀엽다. “돈 줬으니까 값을 해야지. 너가 해봐.” 왠지 오늘따라 뼈마디가 쑤시는 것이 감기몸살이 오려는 듯 하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 녀석 이 자리 잡기 좋도록 다리를 벌려줬다. “…….” 단돈 오 만원에 별 변태 같은 짓을 다 시킨다고 생각한 건지 입술을 샐쭉거린다. 그 모습에 서영준이 겹쳐진다. 새빨간 입술도, 하얀 피부도, 안쓰러울 정도로 마른 팔다리도 영락없이 서영준을 닮았다. 그래, 안쓰럽다. 당시 내가 서영준에게 느낀 감정은 분명한 동정이었다. 내 사랑을 짓밟았고, 내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놈인데도 난 놈에게 동정을 느꼈다. 형을 향한 그 무한대적인 사랑에, 허무하게 뺏겨버린 사랑에 우는 그 모습에 ,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연적이랄 수 있는 내게 자존심을 버리고 애원하는 그 모습에. 동정과 함께 커다란 벽이 내 앞에 있음을 실감했다. 형을 용서하고 다시 결합한다 해도 난 절대 서영준만큼 형을 이해하고 사랑할 자신이 없다. 아니, 그 반에 반만큼의 사랑도 줄 수가 없다. 동정, 질투, 분노, 경외감. 놈에 대한 내 수많은 감정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놈의 육체에 빠져 정신없이 놈을 범하다 결국 목을 조르게 되기까지 . 그걸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츕츕―. 내 젖꼭지를 혀와 입술로 애무하던 놈이 인상을 살찍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내 분신을 감는다. 자기 나름대로는 돈값을 한다고 하는 모양 인데 축 쳐져있는 내 것이 전혀 반응이 없으니 말은 안 해도 무척 초조한 모양이다. 여자같이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내 것을 귀두에서부터 천천히 애무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 손길이 제법 나긋나긋하고 뜨거워서 예전같으면 벌써 발기가 되고도 남았겠지만 한 며칠 전 대학생 누나와의관계 때부터는 조루에 가까울 정도로 사정이 빨라지더니 오늘은 아예 소식이 없다. 내 것을 손으로 애무하던 녀석이 쪼그라져있는 내 것을 빤히 쳐다 보더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가져간다. 츕―츄웁―. 콘돔도 씌우지 않은 분신을 혀로 핥다가 귀두를 살짝살짝 깨물며 자극을 준다. 고개를 사타구니에 처박은 놈의 뜨거운 숨결이 그대로 민감한 부위에 전달되는데도 뇌에서부터 반응이 오지 않으니 스스로도 이상한 일이다. 북실북실한 체모를 손으로 만지며 끊임없이 혀로 내 분신을 희롱하던 놈이 아예 내 것을 삼켜버린다. 입안 가득히 내 것을 넣고 아이스크림을 먹듯 강하게 빨아당기며 물컹뭉컹한 혀로는 아래를 간질이고 이빨로는 기둥부분을 잘근잘근 눌러준다. 그렇게 한 몇분을 희롱하다 더욱 입안 으로 빨아당기며 목구멍 있는 데까지 내 것을 끌어올린다. 미끈미끈한 놈의 목구멍에 걸린 귀두 끝이 놈이 삼키는 침과 함께 구강 내에서 강하게 압박이 되어진다. 그런데―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몸과 마음이 뼛속까지 추운 건지. 아무리 계집과 사내를 안아도 그 따뜻한 체온이 전달되지 않는 건지. 정사가 끝나고 상대를 깊이 안고 잠들어도 왜 악몽만을 꾸게 되는 건지. 서영준―서영준―. 놈의 목을 짓누르던 손의 느낌이, 놈이 눈을 까뒤집으며 내던 신음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꿈속에서 되살아나서 잠을 자도 자는 것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놈을 죽인다. 그리고 놈은 목에 퍼런 손자국을 달고 파리해진 얼굴로 내게 계속해서 다가오는 것이다. 그 차가워진 시체의 손으로 너를 길동무 삼아야겠다고 내 목을 짓누르는 그런 생지옥. “엎드려.” 이를 악물며 낮게 말하자 내 것에서 입을 뗀 녀석이 몸을 뒤집으며 베개에 얼굴을 처박는다. 내 것은 여전히 발기가 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일주일 전쯤 3P를 즐긴 커플이 주고간 스프레이를 내 것에 대구 뿌리자 죽은 듯 늘어져있던 것이 십초도 안돼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다. 그것에 콘돔을 씌우고는 엎드려 다리를 벌리고 있는 놈의 엉덩이에 그대로 돌진했다. “흐으윽―.” 미리 풀어주지 않은 탓에 꽤나 아픈지 시트를 질끈 부여잡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녀석의 몸이 고통으로 위축된 탓에 항문이 꽉 조여 서 잔뜩 팽창해 있는 내 것을 끊어버릴 듯 압박해 온다. “힘 빼.” 시트 아래로 손을 뻗어 놈의 분신을 질끈 잡아주자 괄약근이 느슨해진다. 그 사이로 완전히 내 분신을 밀어 넣고는 잠시 한숨 돌리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퍼억―퍽―. 삐그덕―삐그덕―. “흐윽―하악―.” 어지간히 고통스러운지 완전히 베개에 얼굴을 묻어버린 놈의 하얀 목덜미가 내 눈에 박힌다. ‘죽어, 죽으라고. 너 따위가 뭔데―.’ ‘쿠륵, 쿨럭―.’ ‘야, 야. 서영준, 이 새끼야.’ 퍽퍽퍽―. 이빨을 깨물고 더욱더 강하게 피스톤질을 해댄다. 녀석의 항문은 아까 전에 찢어졌는지 느슨해진지 오래였고 강하게 박아넣을 때마다 피가 살에 마찰되어 절벅절벅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제발, 제발 이제 그만. 앞에 엎드린 녀석의 하얀 등에 오버랩되어 서영준의 까뒤집혀진 눈이 되살아난다. “흐읏…….” 강요당하듯이 억지로 사정을 하고는 허벅지 사이로 핏줄기를 흘리고 있는 녀석의 위에 쓰러져 버렸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오늘만큼은 악몽을 꾸지 않고 편히 잘 수 있길. 질끈 눈을 감았다. 넓이도 깊이도 알 수 없는 어딘가를 계속 걸어가고 있다. 발을 뻗어도 계속되는 어둠뿐. 대체 여긴 어딘지. 난 왜 여기 와 있는 건지. 분명 모텔에서 잠들었던 것 같은데. “엄마―아버지―혀엉―.” 두려운 마음에 더 이상 발을 옮기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가족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어둠의 장막을 헤치고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모님이 오른편에, 형이 왼편에. 나에게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서 날 바라보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려 하자 모두 경멸스런 눈초리가 되어 내게 소리친다. “살인자!” “뭐?” “넌 살인자야. 부끄럽지도 않냐? 우리 가족 중에 살인자가 있다니. 너 때문에 고개를 들 수도 없다. 너같은 것과 상종도 하기 싫으니 저리 썩 꺼져. 너완 의절이다. 넌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 아니야.” “그……그런……. 형, 거짓말이지? 날 사랑한댔잖아!” 형 쪽으로 다가가며 소리치자 형이 더러운 것을 보는듯한 얼굴로 날 본다. “내가 왜 너 따위를 사랑해?” “뭐?” 형이 갑자기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희끄므레하게 사람의 인영이 드러난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소년인지 노인인지도 알 수 없는 희끄므레한 누군가가. “누구…….” 안 좋은 예감에 말끝을 흐리자 형은 그 사람에게 싱긋 웃고는 그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내게서 점점 멀어진다. “기다려, 형. 사실은―사실은 난 형을―.” 형을 부르기 위해 급히 몸을 비트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창백한 얼굴의 서영준이 서 있었다. 도저히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허연 얼굴에 어깨에 닿은 차갑기만 한 손. 그리고 목에 생생하게 남은 내 손자국. “서……서영준.” “어딜 가려고. 넌 나랑 같이 가야 돼.” “미……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내 목 좀 봐. 너가 그렇게 잡고 졸라대서 이렇게 고개도 안 돌아가. 이래선 강을 건널 수도 없어. 그래서 너랑 같이 길동무를 해야겠어.” “무슨 소리야. 강이라니―.” 갑자기 스며드는 오한에 주춤 물러서자 내 목에 서영준의 차가운 손이 감긴다. “별 것 아니야. 너가 나한테 한 것과 똑같잖아.” “아악―아아아악―!!!” 내 눈을 들여다보고 섬뜩하게 웃는 서영준의 눈에는 흰자만이 남아있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일어나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서 손끝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말로만 들었던 가위눌림이란 게 이런 건지. 무속인들은 저승 못 간 귀신 때문이라고 하고 과학자들은 정신신경 계통의 문제라는데 난 전자에 속하는지 후자에 속하는지. 어떻게 움직여보려고 악을 쓰는 와중에도 전화벨 소리는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 시간에 전화 하는 게 누군지. 내게 이제 전화 올 친구도 하나 없는데. 부모님이나 형한테서 오는 전화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도망쳐 버리고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그 세 놈도 서영준이도 수술은 잘 됐는지 부모님과 합의는 한 건지. 어떻게든 저 전화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젖 먹던 힘까 지 짜내 낑낑거리며 겨우 손을 들어올리고 핸드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팔이 전기라도 통하는 듯 찌릿찌릿하게 울리는 통에 저절로 이빨이 앙다물어진다. 씨발. 잘못 걸린 전화기만 해봐. “병권아? 왜 이렇게 전화 늦게 받아. 혹시 무슨 일 있어?” 형의 걱정스런 목소리를 들으니 굳어있던 몸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느낌이다. 꿈에서는 차갑게 날 버리고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았었는데―다행이다. “아니, 목욕하는 중이었어.” “하아, 다행이다. 어제 오후에 서영준 퇴원했어. 그리고 그놈들 부모들과도 합의 봤어. 그러니까―이제 돌아와라.” 그게 정말이야? 거짓말 아니지? 꿈이 아니고 현실이지?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콱 잠겨버렸다. “형……나는……난……그게…….” “빨리 돌아와. 보고 싶다.” “응…….” 형의 말에 겨우 대답하곤 바닥에 널부러진 옷을 허겁지겁 주워입기 시작했다. 단추가 제대로 꿰지는 건지 바지 지퍼는 제대로 올렸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여관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나서야 주머니에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침대 위나 서랍 안에 넣어뒀을 리는 절대 없다. 분명히 기억하건대 어제 그 꼬맹이한테 화대를 지불하고 다시 웃옷 속에 넣어왔었다. “씨팔!” 아침에 일어났을 때 꼬맹이가 조용히 사라졌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 밖으로 욕이 튀어 나왔다. 택시 운전수가 빽미러 너머로 힐끗 쳐다보 는 걸 느끼고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집에 올라가서 택시비를 가져오겠단 내 말에 택시기사는 영 못 믿는 눈치다. 하긴 아까 전에 그런 욕을 한데다 생긴 것도 더럽게 생긴 새끼가 학교도 안 가고 이러고 있으니 못 믿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점점 인상이 험악해지며 당장에 파출소에 끌고 갈 기세인 택시기사와 길에 서서 생쑈를 하고서야 겨우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도대체가 얼마 만에 온 집인지 분명 십 여년 간을 살아온 집인데도 남의 집인 듯 낯선 느낌에 선뜻 벨을 누를 수가 없다. 선선한 날씨에도 축축하게 배어나오는 양 손바닥을 비비며 잠시 계단 주위를 서성이다 한참 후에서야 겨우 벨을 누를 수 있었다. 딩동―하는 벨소리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문이 벌컥 열리며 형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주위에 늘어선 엄마와 아버지의 걱정스런 얼굴도. “병권아.” 형이 내 손목을 당겨 와락 끌어안자 곧 엄마가 형에게서 날 빼앗아 품에 안았다. “벼―병권아―병권아―내 새끼야―.” 몇 주 새 잔뜩 늙어버린 것 같은 엄마에게 안겨 뺨으로 목으로 눈물 세례를 받으며 처음으로 따뜻한 기분을 느꼈다.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날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과 형을 보며 처음으로 가족을, 내 집을 마음 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형, 부탁이 있는데 밑에 택시…….” 거기까지 말하다 일시에 긴장이 풀려버리며 난 마룻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흐릿한 시선으로 형의 놀란 얼굴이 보이고 다시 깜깜한 어둠. 그러나 어젯밤 꿈속에서 보인 어둠과는 달리 이 어둠은 공포스럽게도 날 외롭게 하지도 않았다. 눈부신 빛을 가려 잔뜩 긴장됐었던 내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었다. 그날 저녁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밤중에 되어서는 정말 미친 듯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평소에서 신경을 과하게 쓰거나 무리하면 두통을 앓아오던 터라 진통제 한 알을 삼키고 잠들었지만 새벽녘이 되어서는 온몸에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집 나가있는 몇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시달려 있던 몸이 긴장이 풀리고 나자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밤에 잘 자고 있는가를 보러 왔던 누군가가 날 발견했는지 쿡쿡 쑤셔오는 팔다리를 아침이 되도록 내내 주무르고 있었고 이마에 얹혀진 물수건이 미지근할 새도 없이 계속 갈아졌다. “아프지 마라―아프지 마―.” 내부로부터 끓어오르는 열에 내내 끙끙거리는 내 얼굴을 시원한 손으로 쓰다듬어 내리며 누군가가 계속 속삭였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 목소리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형……형…….” 난 아직 형을 완전히 용서하지 않았어. 아마 영원히 그 상처를 못 잊을지도 몰라. 이런 나라도 정말 괜찮은 거야? 평생 형을 괴롭힐지도 모르는데. 평생 형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날 좀 잡아줘. “사랑해―사랑해―.” 내 뺨 위로, 감겨진 눈 위로 시원한 입술이 닿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둑어둑할 즈음이었다. 형이 물수건을 얹어준 덕분에 열이 내린 건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보일러도 안 들어오는 싸늘하고 딱딱한 바닥에 잔뜩 웅크리고 자고 있는 형의 얼굴이 피곤해 보였다. 저러고 자면 꽤 뼈가 쑤실 텐데. 일어나서 조심스레 형의 몸을 일으키자 민감한 형이 움찔하며 눈을 번뜩 뜬다. 날카로운 눈빛이 정면으로 노려보는 통에 움찔해서 형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빼자 형이 똑바로 서며 내 이마를 손으로 짚어본다. 어젯밤만 해도 서늘하게 느껴지던 손이 따뜻한 걸 보니 열이 완전히 내린 것 같다. “열은 없는데 어디 아픈 데 없어?” 언제 그렇게 날카롭게 노려봤냐는 듯 형의 눈이 부드럽게 변했다. “응, 이제 거의 괜찮아. 그보다 지금 저녁 일곱 시야, 오전 일곱 시야?” “저녁 일곱 시.” 아직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보나마나 결석한 거겠지. 이제 중요한 이 학년 이 학기에 들어갔으면서 바보같이. 가슴 한 켠이 욱씬거렸다. “얼굴 좀 다시 보자, 내 동생. 안 보는 동안 왜 이렇게 말랐니. 보나마나 제대로 먹지도 않았겠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바보. 안 그래도 비쩍 마른 얼굴이 허얘서 나보다 더 병자같구만. “배 많이 고프지? 엄마가 너 맛있는 거 먹인다고 좀 전에 백화점 가셨어. 엘에이 갈비, 좋지?” “그것보다 지금 더 급한 게 있어.” 내 말에 부드러운 표정이 금방 변한다. “다시 아파? 진통제 가져다 줄까?” 이마를 짚어보고 서둘러 약을 가지러 가는 형을 꽉 잡아 다시 침대위에 앉히고는 그 손바닥에 입술을 댔다. “병권아, 너―.” 생각지 못한 내 행동에 놀라 부들부들 떨리는 그 입술에도 내 입술을 가져다댔다. 살짝 입술만 맞닿은 가벼운 키스. “아……그…….” 완전히 넋이라도 있고 없고. 사람이 아무리 당황해도 이보다 더 당황할 수 있을까. 평소의 페이스를 잃어버린 형의 얼굴이 귀엽게 느껴져서 두 뺨을 손으로 감싸고 더 깊이 입을 맞췄다. 밤새도록 간호하느라 메말라버린 입술을 혀로 촉촉이 적셔주며 간질이자 목석처럼 굳어있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가만히 웅크려있는 혀의 표면을 쓸어주자 그때까지만 해도 가만히 있기만 하던 형이 갑자기 내 어깨를 꽉 움켜쥐며 몸을 강하게 부딪혀왔다. 맞물린 입술이 더더욱 깊이 결합되어지며 둘의 혀가 입안에서 뒤엉켜 서로를 애무한다. 형의 혀가 내 입안의 혀와 치열을 온통 휘젓는 통에 완전히 퓨즈가 나가버린 것처럼 형의 팔에 목을 감고 매달리며 계집애처럼 키스를 구걸했다. 턱으로 침이 고여 흐르는 것도 잊은 채 거의 형의 무릎에 앉다시피 해서 형의 입안을 더 깊이 탐닉한다. 바지속의 내 것은 다소 흥분이 된 상태. 키스만으로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 형밖에 없다. 오직 형만이 날―. 아무리 깊이 키스를 하고 있어도 조급하고 목이 타는 것 같은 느낌에 계속해서 형의 입안 을 혀로 휘젓는데 내 안에 들어와있던 형의 혀가 확 뒤로 빠져나가더니 내 가슴을 밀어내 버렸다. “형……?” “날 동정하는 거라면 그만 둬. 더 이상은 날 비참하게 하지 마라.” 바보같은 새끼. 숙인 얼굴로 떨리는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형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딱 한 번만 말할 테니 똑바로 들어.” 이런 말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데. 이렇게 낯 간지런 소릴 하게 만드는 멍청이 따위―. “사랑해.” “…….” “…….” “…….” 젠장, 젠장. 눈을 크게 뜬 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통에 안 그래도 부끄러운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땀에 축축하게 젖어 오는 손을 주먹 쥐었다 폈다 몇 번 반복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몸을 휙 돌려 문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번개 같은 스피드에 의해 다시 침대 위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나……난 못 들었어. 다시 말해, 다시!” 웃기고 있네. 그런 부끄러운 소릴 내가 또 할 줄 알고. 속으로 코웃음을 치곤 내 위에 올라타 있는 형의 허리를 잡고 몸을 뒤집었다. 형은 침대에 누워 여전히 눈을 크게 뜬 채 날 올려다보고 있다. 전교 몇 등씩이나 한다는 새끼가―. 학생회장이란 것도 순 구라 아냐? 어린애처럼 멍한 눈을 하고 있는 형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아씨. 남의 옷 벗기는 거 처음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거냐. 손이 자꾸 떨리면서 단추 예닐곱 개 푸는데도 한참동안이나 낑낑거려야 했다. 머릿속에서 무드고 지랄이고는 날아가 버린 지 이미 오래. 실수 안 하고 끝까지 제대로나 하면 다행이겠지. 겨우겨우 단추를 다 풀고 흰 셔츠를 양옆으로 제꼈다. 그 순간 하얗게 드러나는 형의 나신에 숨이 콱 막혀온다. 어느 정도 자 라서는 같이 목욕도 제대로 해본 적 없고 벗고 있는 걸 보는 것도 몇 년 동안 손가락에 꼽을 정도. 다른 형제처럼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지. 서로가 서로를 형제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선 내내 피해왔었던 거다. “병권아―.” 작게 달싹이는 형의 입술에 키쓰하며 손으로 형의 하얀 가슴을 쓰다듬는다. 계집애같이 곱상한 얼굴에 늘씬한 몸이라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손바닥에 느껴지는 형의 가슴은 일센치도 안 들어갈 정도로 탄탄하기만 하다. 군살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멋진 남자의 몸. 운동신경이 좋아 중학교 때 육상선수를 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라니. 혀로 계속해서 형의 입안을 휘젓다 입술에 쪽 소리를 내고는 목으로부터 어깨까지 부드러운 실루엣을 만들고 있는 접점에 입술을 갖다댔다. 향긋한 살냄새와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을 혀로 살짝 맛본다. 달콤한 맛이 나는 것 같다. 혀로 살을 핥고 입술로 빨아당기며 아래로 점차 내려온다. 편편하게 계속 되는 피부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다 검붉은 색의 유두가 혀에 걸린다. 숨쉴 때마다 오르락 내리락 유혹하듯 움직이는 유두를 입안에 넣고 굴려본다. 귀여운 느낌의 작은 유두가 내 혀와 이빨의 자극에 점차 성을 내며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을 살짝 이빨로 깨물자 형이 헛바람을 삼키며 내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반응에 고무돼 이번엔 오른쪽 유두로 입술을 옮겨가며 손을 아래로 뻗었다. 내 몸 아래로 겹쳐진 형의 분신은 내 것과 마찬가지로 잔뜩 부풀어 올라 서로의 것을 쿡쿡 찌르고 있다. 바지 버클을 풀고 팬티 속으로 손을 넣으려 하자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된 형이 내 손을 황급히 붙잡았다. “너 거기서 더 진도 나가면 후회하게 될 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은 거야?” 바보새끼. 대답대신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어 뜨겁게 달아오른 형의 것을 휘감았다. “하아―.” 형이 탄식처럼 크게 소리 내더니 내 손을 팬티에서 빼내고는 몸을 뒤집어버린다. 순식간에 자세는 역전되어 침대에 처박힌 채 형을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 버렸다. “난 분명히 경고했어. 니가 스스로 자초한 거니까 울면서 애원해도 안 들어줄 거야. 절대 안 놔줄 거야.” 형의 그 깨끗한 눈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욕망이 비친다. 음탕하고 침침한 것이 아닌 거칠고 순수한 욕망이. “날 가져, 형.” 형의 팔에 목을 감으면서 말했다. 사내놈이 같은 사내놈한테 다리 벌려주는 것, 정말 구역질 나고 사내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나는 전에 그런 일까지 당한 경험이 있으니까. 죽어도 남자에게 뒤를 내주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 상황이 후에 닥치더라도 결연히 혀를 깨물어 버리겠다고. 그러나 형이라면―이렇게 나를 사랑해주고 내가 사랑하는 형이라면 전혀 두렵지도 수치스럽지도 않다. 옷이 벗겨지며 형의 입술이 내 입술로 내려앉고 섬세한 손가락들이 피아노를 치듯 내 몸을 애무해나가자 다시금 몸이 후끈 달아오르며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분신이 형의 손바닥 안에서 욕망을 터뜨렸다. “허억―억―.” 척추가 확 휘어지며 눈앞이 하얗게 변한다. “하악―.” 온몸이 찌르르 울리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류가 통하는 듯 꼼짝도 할 수 없다. 극도의 엑스터시 뒤에 오는 노곤함. 그 느낌에 축 늘어져서 눈을 감고 있자니 정액으로 축축해진 다리 한 쪽이 번쩍 위로 치켜져 올라간다. 그리고 벌려진 다리 사이로 형의 몸이 자리잡으며 약간 들려진 허리 밑을 꿇은 무릎으로 빈틈없이 받쳤다. “젤이 있으면 훨씬 쉽겠지만―그래도 부드럽게 하도록 노력할 테니까 긴장 풀어.” 형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자 그제야 내가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형을 사랑하고 믿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성은 그렇게 말하지만 몸은 예전의 비극을 기억하고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형도 그걸 알고 있는 듯 내 입술, 눈가, 콧등, 턱 등에 빠짐없이 입술을 찍으며 내 몸의 긴장을 서서히 풀어가고 있다. “사랑해―사랑해―사랑해―사랑해―.” 끝없이 속삭이면서. “하아, 형.” 한 번의 사정으로 젖은 채 축 늘어져있는 내 것을 형이 부드럽게 감싸쥐자 나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형의 허리에 꽉 감고 말았다. “괜찮아, 병권아. 괜찮아.” 허리에 감기는 내 다리를 살며시 떼어내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좁은 곳을 밀고 들어와 내벽을 휘젓는 두 개의 손가락에 강한 이질감이 느껴져 입술을 꽉 깨물고 말았다. “싫어……이상해…….” 쪽팔리는 얘기지만―뱃속에 한 며칠 숙변을 가둬둔 듯 찝찝하기만 해서 괄약근에 힘을 줘 장속에서 움직이는 형의 손가락을 강하게 밀어내버렸다. “안 해. 안 할 거야.” 가슴팍을 밀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나 도망치려는 나를 형이 다시 침대에 눕혔다. “말했잖아. 울면서 애원해도 안 들어줄 거라고. 니가 싫어해도 끝까지 갈 거야.” 벗어나려고 다리에 힘을 줘보지만 다리를 움켜쥔 형의 악력이 너무 강해 옴쭉달싹도 할 수가 없다. 시트에 내려진 한쪽 다리를 무릎으로 타눌 리고 다른 쪽 다리를 형의 어깨에 걸친 포즈로 형의 눈앞에서 은밀한 곳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졌다.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형의 시선에 얼굴 이 타는 것 같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괜히 짜증스럽게 궁시렁거리자 형이 다소 음흉하게 웃는다. “이뻐.” 눈이 삐기라도 했나. 대체 내 어디가 계집애같다는 거냐고. 말을 하려는 찰나 어깨로 올라간 한쪽 다리 때문에 약간 벌려진 항문에 뭔가가 와닿 는 감각을 느끼고 말이 목구멍으로 도로 넘어가 버렸다. “자―잠깐―형―.” 그게 뭔지 깨달은 순간 뜨거워진 얼굴이 더 이상 뜨거워질 수 없을 정도로 끓어오른다.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형을 제지하기 위해 가슴을 떠미는데 그 순간 내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감각에 가벼운 손짓이 완전히 손톱을 세운 할큄이 되고 말았다. “그만―그만―!!!”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고 기분 나쁜 감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였다. 아프지 않게 배려하며 아주 느리게 들어오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질감밖에 느낄 수가 없다. 출구로만 쓰이던 좁은 그곳을 통과하며 들어온 형의 분신에 내 몸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반 정도 들어온 형의 것을 밀어내려는 듯 항문 근육이 강하게 움직이며 형의 것을 죄어댄다. “빼―빼라고―!!” 손톱독이 올라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하는 형의 가슴을 할퀴며 어깨에 걸린 다리로는 형의 등을 쳐대지만 아프지도 않는지 형은 그 모든 움직 임을 무시하며 내 허리를 잡고는 뿌리끝까지 찔러넣고야 말았다. “하악―개……새끼…….” 내 안에 가득 들어찬 형의 분신 때문에 항문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팽팽하다. 뱃속은 또 어떻고. 칼로 배를 걸레짝처럼 찢는 듯 엄청난 고통에 경련마저 일으키고 있다. 숨조차 쉴 수 없는 굉장한 통증.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눈을 부릅뜨고 신음을 막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형이 내 위로 몸을 겹치며 입술을 혀로 핥자 부릅떠진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타고 흘렀다. “느껴져? 니 안에 내가 있어. 굉장해. 너무 뜨겁고 조여.” 개새끼, 개새끼야. 넌 좋아죽겠지. 난 아파죽겠다. 이딴 거―이렇게 아픈 건줄 알았으면 절대로 안 한다고 했다고. 내가 미친 놈이지. 내 입이 방정 이지. 끝없이 투덜거리며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는 내 눈가를 형이 혀로 핥으며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마, 개새끼야―아흑―.” “미안.” 그게 미안한 사람의 표정이냐. 뽕이라도 맞은 사람마냥 왜 괜히 헤실헤실 웃는 건데. 입이 아주 귀에 걸린 듯 하다. 저 표정 보면 누가 학생회장 이라고 할 수 있을지. “너무 좋아, 병권아.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아. 하아, 나 용서한 거지, 응?” 조심스럽게 허리를 움직여가며 형이 말했다. “나 사랑하는 거 맞지―나 안 버릴 거지? 영원히 나랑 살 거지? 대답 좀 해봐.” 끊임없이 내 얼굴에 입술을 찍어 내리며 뱉어내는 달콤한 숨소리에 취해, 아래에서 서서히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취해, 그만 대답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형의 어깨에서 흘러내린 다리를 형의 허리에 감으며 형의 입술을 훔쳤다. “병신새끼.” “…….” “쪼다.” “…….” “골빈 놈.” “…….” “발정난 개새끼.” “…….” 좀 심하다 싶은 욕까지 내뱉었지만 형은 묵묵부답. 내 후장 따먹고 싱글벙글일지 끙끙 앓는 나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얼굴일지 엎드려있는 자세 라서 알 수 없다. 허리에 올려진 찜질팩 때문에 허리가 후끈후끈하다. “뜨거워.” 조그맣게 중얼거린 한 마디를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찜질팩이 재빨리 허리 위에서 치워지고 대신 차가운 손이 허리를 조심조심 주무른다. 조심 조심 주무르는 그 손길에도 허리가 어긋나는 듯한 강한 통증에 저절로 끙끙대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많이 아파?”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 큰 걸 내 안에 쑤셔넣었는데. 아니, 쑤셔넣었다고 말하기엔 부드러웠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몸살 앓은 앨 가지고 세 번이나 할 수 있냐고. 고통 속에 느껴지는 묘한 쾌감에 스스로 허리를 흔들고 졸라댄 덕에 허리는 완전히 아작나 버렸고 항문은 부어오를대로 부어올라 감각조차 없다. 한 마디로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된 상태로 침대에 내내 누워있어야만 했고 한 시간 뒤에 도착한 엄마가 끓여준 엘에이갈비찜은 냄새만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는 건 엄마나 아버지는 내가 몸살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 걸로 생각한다는 것. 꿈에라도 형과 내가 같이 잤다고는 생각 못 하겠지. 알게 되면 뒤로 넘어갈 일이지만 그래도 나 역시 비실비실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너무 많이 부었어. 안 되겠다. 약 발라야지.” 허리를 주무르던 손이 트렁크 팬티를 벗겨내고 혹사당한 엉덩이를 벌렸다. “흐읍…….” “아파?” 아픈 게 아니라―. 엉덩이 쪽은 아예 감각도 없는 상태고 형의 손이 은밀한 곳에 닿으니 어제의 느낌이 머릿속에 되살아나서 몸이 반응해 버렸다 고나 할까. 순식간에 얼굴이 시빨개져 버렸다. 두근두근―.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심장소리도, 부드럽게 맛사지해주는 손길도, 심지어는 욱씬거리는 고통까지도 너무 좋아져 버려서 입꼬리 를 내릴 수가 없다. 평생 지금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 가면 안 되는 거야? 어른들만 모이는 그런데 재미없단 말이야.” 내가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건 딱 일주일 후가 되어서였다. 처음 그 세 놈들에게 무지막지하게 당했을 때. 그때도 무척 아팠지만 그땐 정신적 인 데미지가 너무 커서 후유증을 느낄 수조차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은 내게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 내게 엄마는 함께 후영 형네 집에 갈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래도 할 수 없어. 이번에 합의 보게 된 것도 전부 그분 덕택이니까. 인사 정도는 니가 해야지.” 요즘엔 엄마도 연예계를 완전히 은퇴하기로 결심한 건지 내내 내게 붙어있는데다 가정교사랍시고 오는 남자까지 있어 같은 집에 살면서도 형과 는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오늘은 간만의 휴일이라 가정교사도 안 오고 부모님도 후영 형네 아버지 생신에 간다는 얘길 듣고 형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입이 잔뜩 불룩해진 채 엄마의 손에 붙잡혀 나가며 형을 힐끗 쳐다보자 형이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곧 삼학년이 되는 관계 로 부쩍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 형의 얼굴은 여전히 봄꽃처럼 화사하다. 아아, 연애란 힘든 거구나. 후영 형네 아버지는 엔터테이먼트 사업을 하면서 우리나라 연예게 수준을 몇 배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예술성을 무시한 채 상업성에만 매달려 아직 어린 가수들을 착취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쪽이 진실에 더 가깝 다는 것을 이 집에 와보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세계 굴지의 재벌그룹 본가보다도 더 휘화찬란한 저택과 족히 사미터는 되어보이는 높다란 담이라든가. 고작 한 사람 생일에 불과할 뿐인데도 수십에 가깝게 모여둔 기회주의적 인가들까지. 사십오횐지 육횐지. 아버지랑 동창인 건 알겠는데 솔직히 내 아버지가 몇 살인지도 잘 몰라 적당히 인사치레를 하고선 사방을 둘러싼 시끄러운 사람들을 피해 식당을 빠져나왔다.복도라니. 학교나 병원도 아닌 가정집에 복도가 있다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쓰지도 않는 빈방들 대여섯 개, 화장실만 두 개, 세 개.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해 아무 빈방이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통제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때 이후로는 약 종류는 웬만하면 먹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 데나 기어들어가 좀 누워있으면 나아질까. “대체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말해줘, 내가 고칠 테니까.” 재수없게도 남아도는 방중에서 고른 게 이런 방이다. 안에서는 내가 문을 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남녀가 실갱이 중. “씨발―. 송유진, 좋은 말로 할때 그냥 가라. 응?” “다른 애 생긴 거야? 그런 거 아니잖아. 너란 애, 누굴 진심으로 생각할 사람 못 된다는 거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 뭔가, 어디서 겪어본 상황같은―. 데자부인건지, 머리가 혼란스럽다. “사랑해, 정말 사랑해. 후영아, 나 버리지 마. 나 정말 잘할 테니까―.” “사랑? 지랄하고 자빠졌네. 솔직히 얘기하시지. 톱가수 되고 싶으니까 빽 좀 되달라고.” “무……슨…….” “지난 일요일 H호텔에서 우리 영감 밑에 다리 벌려준 건 너 아니면 어느 년이야?” “그…….” “썅년. 넌 해외진출만 시켜준다면 개좆이라도 빨 년이야. 걸레같은 년―.” 저 목소리는 틀림없이 후영 형과 요즘 새로 뜨기 시작한 신인 여가수인 것 같은데. 나, 뭔가 들어선 안될 말 들은건가. 머리가 갈수록 더 지끈 지끈거린다. “나 지금 피곤하니까 맞기 싫으면 꺼져라.” “후영아, 그건…….” 열려진 문 사이로 여자가 무릎을 꿇고 형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 보인다. 쫙―――!!! “악!!!” “꺼지랬잖아, 더러운 년아. 한 대 더 때려줘? 하나, 둘―.” 후영 형의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높아지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여자가 황급히 일어나 반쯤 열려진 문을 통해 후다닥 뛰쳐나온다. 문가에 서 있던 내 눈과 잠시 마주친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에다 손바닥만한 얼굴이 얼마나 세게 맞은 건지 금새 퉁퉁 부어올라 보기에 흉할 정도다.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여자한테.” 안으로 들어가며 말하자 이인용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형이 날 본다. “네 명이나 저승으로 보낼 뻔한 놈한테는 그런 말 별로 듣고싶지 않아.” 평범해 보이지만 속을 긁어대는 말투. 아비나 자식이나 구역질나는 놈들. “그날은 고마웠어.” 결과가 어쨌거나 최후영에게 난 빚이 있는 것이다. “보답으로 나한테 뭘 해줄건데?” “뭐든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뭘 생각하는 건지 입꼬리가 말려올라간다. “그럴 필요없어.” 돈? 아니면 여자? 속으로 약간 긴장하며 쳐다보고 있는데 최후영이 남아있는 맥주캔을 입안에 털어넣으며 벌떡 일어섰다. “뭐?” “내가 알아서 받아갈 거니까. 말해두지만 난 밑지는 장사는 안 하는 편이야. 뭐,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겠지만.” 도대체 뭘 가져가겠다고. 갖고싶은 건 손만 뻗으면 뭐든지 가질 수 있는 저놈이 나한테서 탐낼만한 게 뭐가 있다고. 계속해서 머리가 지끈거린다. 서영준을 그렇게 만든 것에 대해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그놈이 죽음으로 해서 내게 돌려질 비난과 신체적 구속, 그리고―우습게도 어린아이처럼―날 따라다닐 놈의 원혼이 두려웠던 거다. 놈이 내 사랑을 빼앗고 날 짓밟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쩌면 똑같은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결국 난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아직은 어린애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영준에게 반드시 사과하고 감사 의 말을 전해야만 하는 내 기분은 엿같은 것이었다. 죽음으로까지 내몰았지만 철창행 신세가 뻔했던 날 용서하고 합의를 해준 관대한 마음의 서영준이란 놈한테. 엄마에게 들볶여 쪽지속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는 내 손가락을 스스로 부러뜨리고 싶은 내 기분을 누가 알까. 씨발새끼. 전화받지 마. 전화받음 죽여버릴 거니까. 저편에서 달깍하는 소리와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 운명의 신은 내 편이 아닌 모양이다. “여보세요?” 내게 목이 졸려진 탓인지 분명 서영준의 것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예전과 같지않게 탁하게 변해 있었다. 그때 최후의 순간에 눈을 뒤집으며 숨막 힌 소리를 낼 때의 목소리처럼. “서……영준…….” “홍병권?” 약간 놀란 듯 올라간 목소리가 키득키득 웃는다. “귀하신 분이 나같은 남창한테 전화를 다하고. 황송스러울 따름이네.” 비아냥거리는 말에서 나를 향한 적의가 가득 느껴진다. 사랑도 뺏기고, 목숨까지도 뺏길 뻔한 놈으로써는 죽이고 싶을만큼 내가 미웠을텐데. 당시 코너에 몰린 날 단번에 KO시킬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합의를 해준 것일까. “그래서 용건은?” 잘은 모르지만 그 녀석네 집, 상당히 어렵다고 들었어. 부모님도 서로 떨어져서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고. 어제 내 질문에 대한 형의 대답이다. 그렇다는 건 결국 돈과 권력. 당근과 채찍. 그런 것에 무릎 꿇은 거라는 뜻. “합의해준 것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너의 말대로 더러운 남창에 불과해서 그 색스런 몸으로 내 소중한 사람과 수도 없이 몸을 섞어온 걸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끓어올라. “그날은 정말 실수였어. 순간적으로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됐었는지―.” 죽일 수 없다면 형의 눈에 안 띄는 곳에 영원히 가둬버리고 싶어, 십새끼야. “날 용서해줄 수 있어?” 널 평생 가둬놔도, 형을 평생 가져도 네놈을 용서할 순 없을 거다, 결코. “이봐, 이봐.” 놈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경쾌하다.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진심으로 사과할 거라면 내 집에 와서 무릎꿇고 사과해.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하는 것 아냐?” 이빨이 으득 갈린다. “알았어.” “나, 두 시간 뒤에 약속 잡혀있으니까 올려면 지금 빨리 와. 우리 집 알지?” 마리오네뜨―.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난 놈의 손에서 놀아나는 마리오네뜨 같다고. 두 번째로 와보는 놈의 아파트. 중간층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 다리에 힘을 줘도 후들후들 떨리기만 한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당했던 기억들을 몸이 먼저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서영준이 준 쥬스를 마셨고 마비가 된 몸을 세 명의 양아치 새끼들이―. 질끈―. 자꾸만 과거로 되돌아가 무너지려 하는 마음을 다잡고는 문으로 다갔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 홍병권. 서영준이 바보가 아닌 이상 똑같은 상황을 만들진 않을 거라구. 자기 자신에게 수도 없이 암시를 걸고서야 벨 쪽으로 손을 뻗을 수 있었다. 그런데―닫혀있어야 할 현관문이 반 뼘 정도의 너비로 열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뭐야, 이건 도대체 무슨 의미야. 내가 곧 도착할 것을 알기 때문에 열어논 건가. 아니면 또다른 음모라도 꾸미는 건가. 긴장된 손끝에 커터를 움켜쥔다. 그때 이후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 이게 있으니까 비상시엔 그어버리고 도망치면 돼. 주는 건 아무 것도 먹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입술을 꽉 깨물고는 과감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하앗……아……아파……윽…….” 방안에서 들려오는 숨가쁜 신음소리와 거칠게 침대가 삐그덕대는 소리.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개같은 근성을 못 버리고 씹질이나 하고. 암캐보다 더 더러운 새끼. 그 얼굴을 보면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것만 같아 뒤로 한 걸음 물러서려는 찰나, 방안에서 들려오는 영준의 목소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벼……병주……하아……천천히…….”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형이 절대로 그럴 리 없는데. 어제도 자기 목숨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고 말해줬는데. 저 더러운 남창새끼가 내 형을 짝사랑한 나머지 다른 놈과 살 섞으면서 형의 이름을 부르는 거겠지. 그런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은 어느 새 안방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직선으로 보이는 큰 침대에 누워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있던 서영준이 내 눈길을 보고는 싱긋 미소를 보낸다. “병주야―. 뒤를 봐봐.” 그 말에 서영준의 몸을 탐하던 남자가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그……형……지금……아니……그런…….” 뭔가 말을 하고 싶은데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크면 멀쩡하던 사람도 하루 아침에 병신이 되버린다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형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이런 식으로 날 배신할 수가 있어. 어떻게 날 이런 식으로 비참하게 만들 수가 있어. 어떻게 형이! 어떻게! 어떻게! “병권아. 내 말 좀 들어봐. 오해하고 있는 거 알아. 우선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 봐. 그러니까 서영준이―.” 내가 멍하게 서 있는 동안 형은 어느 새 옷을 걸치고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합의란 게 이런 조건이었어? 형 남창이야?” “난 너를 위해서―.” “차라리! 차라리 그냥 두지 그랬어! 유치장에서 썩거나 말거나 그냥 두지 그랬어! 그랬으면 이런 꼴도 안 보잖아! 이게 뭐야! 내가 장난감이야! 내 마음은 도대체 뭐냐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고 발을 굴렀던 것 같다. 머리가 멍한 게 빈혈이 몰려와 발작을 일으키다 비틀 문가에 기대는 날 형이 번개같이 붙잡았다. “병권아, 정신차려. 괜찮아?” 그 손길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날 것 같다. “손대지 마! 저 새끼 만지던 손을 감히 어디가 갖다대!” “나도 이러기 싫었어. 너 배신하는 거란 생각에 이러는 것만은 죽어도 싫었는데 그래도 너 살인미수죄로 소년원 갈 수도 있다는 말 듣고 미치는 줄 알았어.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너가 그런데 들어간 다는 거 생각만 해도 미치는 줄 알았다고. 형 좀 이해해 주면 안 되겠어? 병권아, 정말 사랑해. 널 위해서라면 몸 한 번 파는 것 뿐만 아니라 더한 것도 해줄 수 있어. 정말―내 속을 전부 너한테 보여주고 싶―.” 안 들려, 안 들려, 안 들려――――!!!!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한 걸음 다가오는 형의 앞에 커터날을 들이댔다. “가까이 오기만 해봐. 확 그어버릴 거니까.” 굳어져 버린 형의 얼굴과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서영준의 얼굴을 차례로 본 뒤 그대로 아파트를 뛰쳐나왔다. 하하―! 서영준, 서영준! 정말 넌 죽여주는 놈이야.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날 괴롭혀. 심지어는 꿈속에서까지 난 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 도대체 전생이 내가 너한테 무슨 업보가 있기에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거야. 도대체 얼마나 날 더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는 거냐고! 아무 정신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거리를 뛰어다녔던 것 같다. 정말 미친놈처럼 한참동안을 앞만 보고 달리다 앞이 노랗게 변해버릴 정도가 되어서야 숨을 몰아쉬며 달리던 걸음을 멈췄다. 다리가 꺾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아까의 상황을 봤을 때 갈기갈기 찢어져서 걸레조각이 되버린 줄 알았던 심장이 아직도 팔팔하게 살아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깟―이깟 심장 따위, 내게 아무런 필요도 없는데! 손으로 왼쪽 가슴을 하릴없이 쥐어뜯으며 조소를 짓는다. “저기―.” “―――.” “괜찮으세요?” 미친놈처럼 서있는 내게 말을 걸어오는 작은 사내놈. 하얀 얼굴과 가녀린 몸이 누군갈 연상케하는―. “너, 이 새끼―!” 득달처럼 달려들어 녀석의 팔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내 돈 훔쳐내서 어딜 갔나 했더니 지발로 찾아들어?”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잡힌 손을 빼내려 악을 쓴다. “이거 놔요! 사람 잘못 봤어!” 도망치려고 필사적이 된 녀석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팔을 잡고 황급히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길로 밀어넣었다. “사람 살려! 강도야, 강도! 이 새끼야, 이거 안 놔? 대체 왜 이래, 미친 놈아!” “그만 좀 앵앵거려. 떠들어 봤자 남의 일에까지 신경쓸 만한 사람 없는 것 같으니.” “아아아악――――!!!” 퍽―. 그대로 녀석의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켈룩거리며 몸이 기울어지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다. “재수없게도 나 지금 기분 이빠이로 나쁘거든. 죽고싶지 않으면 얌전히 토해놓는 게 좋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커터를 들이대자 금새 태도가 싹 바뀐다. 눈에 눈물방울을 달고 싹싹 빌지만 그 모습에 두 번 속을 바보는 아니다. 아마도 안 되겠다 싶어서 또 잔머리를 굴리려는 거겠지. “딴놈들한테는 사기를 치든가 말든가 내 알 바 아니고 내 돈만 내놓으라고. 한국말 못 알아들어?” 그날 오전에 카드로 돈 찾아서 거의 삼십만원 가량 들어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카드는 바로 정지를 시켰지만 보기완 달리 꽤 닳아먹은 것 같은 이놈이 카드에 손을 댔을 리가 없다. “용서해 주세요. 한 번만 봐주세요.” “아이, 씨발. 이게 맞아야 정신 차리지!” “악! 동생 등록금 모자라서 냈단 말이예요. 혀엉, 한 번만 봐주시면 나중에 꼭 갚을게요.” 등록금? 지랄하네. “이 새끼 이거 말로 해선 도저히 안 되겠네. 파출소 가자. 절도죄로 집어넣을 거니까. 그렇지, 나 그때 술 취해있을 때 훔쳐갔으니까 이거 아리랑 치기지? 한 몇 년은 거뜬히 나오겠네.” “혀엉―제발―.” 손을 붙잡고 밖으로 가려하자 황급히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아직 젖살이 통통한 얼굴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자 왠지 마음이 싸아해 지면서 동정심 비스므레한 것도 든다. 씨발, 홍병권. 저런 얼굴에 몇 번이나 뒤통수 맞으면서도 아직 정신 못 차리는 등신. “야, 너 이름이 뭐야?” “……김정민.” 거짓말이군. “진짜 파출소 갈까?” “노도엽이요!” “정말?” 의심스럽게 쳐다보자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학생증을 보여준다. “열 다섯 살? 골 때리는구만. 니네 부모님은 니가 이러고 다니는 거 아냐?” “부모님 없어. 돌아가셨어.” “괜히 구라치는 거 아냐?” 젖은 눈으로 쏘아보는 걸로 봐선 거짓말이 아닌 듯하다. “친척도 없어?” “동생은 고모집에 있는데 학교 등록금도 안 주고 매일 눈치만 줘서 훔쳐서라도 등록금 내려고…….” “…….” 씨발. 기분이 엿같다. 잘 걸렸다 싶어 화풀이나 좀 하려고 했더니. 뭐, 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괜히 머리를 박박 긁으며 인상을 쓰는데 도엽이란 녀석이 내 눈치를 살핀다. “정말 파출소에 넘길 거예요?” “너, 잘 데는 있냐?” 보나마나 가출했을 테지만. “친구집에서 지내다가 요즘엔 같이 자나는 아저씨들 따라서 여기 저기…….” 눈치를 살피는 녀석을 보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나 버렸다. “너, 나 따라갈래?” 처음 본 사내를 따라갈 만큼 녀석이 순진하지 않다는 건 안다. 그럼에도 날 따라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번 등쳐먹었던 놈을 운 나쁘게 다시 만났다는 거겠지. 거의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끌려오는 놈의 심중을 짐작해봤다. 강간이든 뭐든 어차피 닳는 몸도 아니고 계집애가 아니라 임신이 되는 것도 아니니 하면 하는 대로. 설마 죽이기까지야 하겠냐. 대충 그런 거겠지.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해보니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와 형이 보였다. 형은 내가 그런 식으로 가고 연락도 안 되지 초조했던지 책도 던져놓고 손끝을 이빨로 물어뜯고 있었다. “병권아!” 벌떡 일어났다가 내 옆에 서 있는 꼬마를 보고서는 얼굴이 굳어졌다. “이제 오는 거냐? 어휴, 술냄새. 술 좀 작작 마시고 다녀라.” 새파랗게 어린 것이 발랑 까져서 술이나 마시고 다닌다는 얘기 따위 더 이상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엄마는 가볍게 핀잔을 주며 잠바 를 받아들 뿐이었다. “저 애는 누구냐?” “이 녀석―내 애인이야.” 엄마와 형의 얼굴이 굳어졌고 내 손에 팔목이 잡힌 도엽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날씨도 추운데 사정이 있어서 집에서 나왔거든. 그래서 우리 집에서 한동안 재우려고.” “…….” “…….” “뭐야, 싫은 거야? 싫은 거면 어디 여관이라도 같이―.” “아니, 아니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엄마가 황급히 팔을 붙들었다. “저렇게 어린애 데리고 어딜 가려고. 방도 넓으니까 괜찮아. 들어와라, 얘야. 어서 들어와.” 엄마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도엽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형이 입술을 하얗게 되도록 깨물었다. “밥은 먹은 거냐?” “응. 좀 전에 피자 먹고 와서 배불러.” “그런 거 먹고 요기가 되냐? 밥을 먹어야지.” “됐다니까. 피곤해서 일찍 잘 거야. 노도엽, 내 방 저기고 화장실은―.” 도엽에게 다가가려는 날 형이 붙잡았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그 얘기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냐? 그런데 너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목에서 피가 나도록 떠들어도 이제 안 믿을 거거든. 어차피 또 받아들여봤자 똑같은 일 반복될 거 뻔한데 내가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 따위 더 이상은 하기 싫어. “미안해, 형. 나중에 얘기해.” 억지로 입가에 온힘을 쏟아 부어 간신히 미소지어주자 형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 너는 이제부터 내 친형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야.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어. 알아들어? 요즘 들어 부쩍 일찍 들어오는 날이 많아진 아버지에게도 당당하게 애인이라고 같은 방에서 자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내 말에 토씨를 다는 인간이 없다. 그때 그 사건 이후로 식구들 누구도 내 신경을 건드리려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럼 도엽아, 내 집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 억지 친절을 베푸는 눈엔 불편한 감정이 가득 담겨 있지만. “감사합니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하는 도엽을 끌고 내 방으로 들어오자 신기한 듯 구석구석을 쳐다본다. “이런 방은 처음이야. 우와, 침대도 있다.” “구경은 좀 있다 하고 협상 마저 해야지?” “협상?” “너, 내 돈 갚는댔지.” “으응……어떻게든 갚을게…….” “아저씨들한테 몸 팔고 자는 사이에 돈 훔쳐서?” “…….” 아니라곤 말 못 하고 고개만 숙인다. “그런 돈 받고 싶지 않으니 그냥 몸으로 갚아라.” “뭐?”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니 동생 뿐만 아니라 니 등록금도 내가 대주겠다고. 거기다 잠자리, 식사 다 해결되니 생각하고 자시고도 없잖아.” “……왜? 나가면 훨씬 싼 값으로도 나같은 애 널렸는데.” “그것까진 알 필요 없고. 너한텐 굴러온 복이잖아. 싫으면 말고. 니 말대로 너 대신할 앤 널렸으니까.” “아니야! 하…….할게!” 황급히 내 팔을 붙들며 놈이 옷을 벗기 시작한다. 오늘은 또 대낮부터 어떤 놈과 뒹굴었는지 때가 시커멓게 탄 옷 밑으로 비치는 하얀 피부 곳곳에 이빨 자국이 남아있다. 왠지 더럽단 생각이 들어 놈을 침대위에 던져놓고 형의 방을 열어젖혔다. “형!” “그래, 꼭 알아봐. 이름은 노…….” 누군가와 통화중이었던지 전화와 담배를 들고있던 형이 흠칫 놀란다. 개새끼, 담배 당장 끊을 거라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은 형이 베란다로 나가 재빨리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미안, 답답해서 딱 한 대 피운거야.” 물론 그러시겠지. “콘돔이랑 젤 있어?” “뭐?” “도엽이가 워낙 좁아서 삽입하기도 어렵고 행위 중에 잘 찢어지거든. 젤 있으면 좀 주라.” “없어…….” “아, 그렇지. 형은 겉으로는 모범생이었지. 완전히 잊고 있었네. 없으면 할 수 없지.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정액을 쓰던가 입으로―.” “정말 너,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 왜 내 말은 전혀 들으려고 안 해? 나에게도 사정이 있는 걸 왜 생각 못해.” 내가 왜 니 사정까지 생각해줘야 해? 내 사정만으로도 대가리가 터질 것 같은데. “할 말 그것뿐이라면 이만. 도엽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나 요즘 욕구불만이어서 밤새도록 할 지도 모르거든. 형이 곧 수험생 되는 건 알겠지만 공부 방해한다고 너무 화내진 마.” “정말 이렇게 쉽게 끝낼 수 있는 거야? 그 정도의 감정밖엔 안 되는 거였어? 나 사랑한단 것도 거짓이야?” 절망적으로 소리치는 형의 얼굴에 대고 똑똑히 대답해 줬다. “물론 사랑하지.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피를 이은 친형인데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그럼 형, 우리 도엽이 잘 좀 부탁해.” 마지막으로 함박웃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망연자실한 표정의 형을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침대가 너무 좁은 거 아냐? 난 밑에서 자야겠는데.” 역시 밑바닥에서 생활하며 이런 일 저런 일 겪던 놈이라 그런지 도엽은 처음 본 남자에게 끌려온 어린애치곤 너무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적응을 하고 있었다. “남는 베개랑 이불 있어?” “그딴 거 필요 없어. 같이 침대에서 자면 돼.” “싱글이잖아.” “너가 내 침대하면 돼.” “뭐……?” 그제서야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시뻘개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나와?” 귀까지 새빨개진 녀석을 끌고 와 침대에 눕히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지저분하게 굴러다니던 녀석이지만 목덜미에서는 젖비린내같은 체향 이 약하게 풍겨나온다. “저기, 나 아직 안 씼었는데…….” 목소리까지도 아직 가느다란 게 품안에서 꼬물꼬물거리며 빠져나가려는 것이 무척 귀엽다. “괜찮아. 지금 하고 싶어.” 부르터서 핏물이 약간 비치고 있는 입술을 혀로 핥으며 빛바랜 옷들을 하나하나 벗겨나간다. “저기, 그래도 나 오늘 다른 사람이랑―.” “병권이야, 홍병권.” 다른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녀석의 쇄골에 입술을 누르고 강하게 빨아들이며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더듬는다. 편편하고 감촉 좋은 가슴을 만지던 손끝에 유두가 걸려 유두를 엄지손가락으로 꾸욱 눌러주자 자극에 익숙해진 몸이 금새 달아오른다. “하앗…….”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입을 틀어막는다. “미안…….” “괜찮아, 더 크게 내도 돼.” 부모님의 방은 거실 건너편이라 들릴 리 없겠지만 형의 방은 바로 옆이니까. 얇은 벽 하나를 통과해서 소리가 다 들리겠지. 날 자신의 목숨보다 도 더 사랑한다는 형, 밤새도록 이 소리를 들려줄 테니까 딱 나만큼만 괴로워해. 나만큼만 아파해. 온몸에 쏟아지는 입술과 손의 애무에 금새 절정에 달해 내 손안에 정액을 내뿜고 축 늘어진 녀석의 다리를 어깨위로 올리고 녀석의 안으로 강하 게 돌진했다. “아아악―――!!!” 나 역시도 강간이라든가 형과의 경험으로 삽입의 고통은 충분히 안다. 제대로 풀어주고 부드럽게 삽입해도 그 고통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럼에 도 이렇게 거칠게 들어가는 이유는―. “하악―아악―아―아파―흐윽―아흑―.”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아래를 강하게 조이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더 크게 질러도 괜찮아. 더 크게―.” 옆방에서 형이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상상하며 더욱더 강하게 녀석을 몰아부쳐갔다. 하드한 움직임에 녀석의 뒤가 찢어 진 것인지 시트가 흥건하게 젖어들어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옆방의 동태에 흥분된 나는 세 번이고 네 번이고 휴식시간을 주지 않고 녀석을 탐했다. 계속 집에만 있던 엄마가 오후 계모임으로 밖에 나가자 집이 오랜만에 조용해졌다. 하긴, 항상 엄마 아버지는 밖에만 있었고 형이나 나나 학교 다 친구다 해서 바빴으니까. 요 며칠간의 북적거림은 오히려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진통제라도 하나 줄까?” 엊저녁에도 내내 시달려야만 했던 녀석은 앉기는커녕 돌아눕기조차 힘들 정도로 허리가 나가버려 오후까지 침대에 박혀 끙끙거리고만 있었다. 비썩 말라 허연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자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까이 다가갔다가 갑자기 날아온 베개에 얼굴을 맞고 말았다. “저리 꺼져, 변태야!” “소리 지르는 거 보니 기운은 있나보네. 일어나서 타이레놀이라도 먹어라.” “안 먹어! 너나 처먹어!” 내 돈을 훔쳤다 잡히고 경찰서 운운하는 일까지 당한 녀석이 꽤나 당차다. 두 살이나 많은 나에게는 이 새끼 저 새끼 쌍욕도 잘 나오면서 형 앞에 만 가면 완전 고양이 앞의 쥐처럼 눈도 못 마주친다. 어째서 나한테는 존댓말을 쓰지 않으냐고 묻자 녀석은 딱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만만하니까. “헛소리 하지 말고 먹어.”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테크닉이라곤 약에 쓸래도 없는 새끼.” 툴툴대며 겨우 일어난 녀석에게 약을 먹이고 거실로 나와 유선방송의 외화 시리즈를 보고 있으려니 달그락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형이 들 어왔다. “일찍 오네.” “오늘 모의고사 쳤거든.” 똑같은 교복인데도 짙은 곤색의 마이를 단정하게 입은 형은 무척 엘리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겨우 한 살 차이인데도 어른스러워 보이는 표정 이며 마이를 벗는 행동까지도. “형, 오셨어요.” 진통제를 먹고 조금 나아진 건지 아니면 형이 어려워서 그러는 건지 다리를 질질 끌며 방에서 나온 꼬맹이 녀석이 쭈뼛거리며 인사했다. “…….” 형은 인사를 완전히 무시하며 방에 가방을 던져놓고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 좀 괜찮아?” 무시를 당하고 머쓱하게 서있는 녀석이 측은해서 말을 걸었더니 소파 옆자리에 와서 끙끙거리며 앉는다. “아까보단 좀 나아.” “그러게 먹으랄 때 말 들어야지. 배는 안 고파? 치킨 시켜먹을까?” “아니.” 손을 씻고 나오던 형이 부엌으로 가서 쟁반을 들고나왔다. “야, 비켜.” “아…….” 적의가 가득한 눈초리에 도엽이 두 말 없이 소파에서 내려 내 방 쪽으로 향했고 형은 무표정한 얼굴로 단내 나는 사과를 도엽이 앉았던 소파에 내려놓는다. “사과 먹어, 병권아. 이거 비싼 거야.” “……노도엽.” “응?”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발 한 발 방으로 걸어가는 녀석을 불러세웠다. “이리 와.” 얼굴에 의문을 표시하고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녀석에게 손을 뻗어 녀석의 내 무릎에 앉혔다. “이렇게 하면 되잖아.” “병주 형이 보는데…….” “뭐 어때. 어젯밤에 끝내주는 신음소리도 다 들었을 텐데.” 힐끗 형을 쳐다보자 형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사과를 깎고 있다. 사과껍질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얇게 벗겨지고 있으나 예리한 칼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사과 먹을래?” “별로.” “이거 되게 달아. 먹어 봐.” 내 무릎위에 있는 작은 녀석의 뒤통수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며 안에 든 사과를 녀석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른 사람의 앞에서 하는 키스라 몸부림을 치며 작게 반항하는 녀석의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심볼을 손으로 주무르자 반항적이던 몸부림이 점차 쾌락에 젖은 몸놀림으로 변해간다. “흐응……으…….” 입안과 중심을 완전히 내게 맡긴 채로 코로만 비음을 뱉는 녀석의 중심에서 손을 떼 티셔츠 안으로 들어가 벌써 꼿꼿이 선 유두를 만지작거리는 데 옆에서 탁 하는 소리가 들려 입을 떼고 쳐다보니 형이 칼을 던져놓고 벌떡 일어나 있다. “걸리적거렸다면 미안. 나머진 우리 방에서 할게.” “아니, 됐어. 난 밖에 뭣 좀 사러갈 테니까.” “마트 가는 거야? 그럼 콘돔 좀 부탁해. 이왕이면 제일 얇은 걸로. 두꺼운 건 별로 감도가 좋지 않아서. 많이 써야 되니까 셋트로 사와. 젤 좋은 거 있으면 추천 좀 해보고. 아무래도 나보다 경험이 많으니까 잘 알지 않겠어?” “…….” 날 뚫어져라 쳐다보던 형이 방안에서 트렌치 코트를 들고 나오더니 쾅 소리나게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흐응…….” 예쁘게 쌍꺼플진 녀석의 눈두덩이에 입술을 대면서 겨드랑이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렸다. 솜털이 나기 시작하는 겨드랑이를 간질였더니 키득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비비 꼰다. “히힛! 하지 마. 하지 마아―.” 옆으로 돌아누운 녀석의 돌출된 갈비뼈 선을 따라 혀를 내밀어 핥아내려 가다 바지에 손을 대자 황급히 내 손을 부여잡는다. “오늘은 안 하면 안 돼?” 거의 일주일 동안의 하드섹스 탓인지 눈에 공포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감정이 가득했다. “걱정 마.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오늘은 안 할 거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녀석의 아래는 내 애무로 인해 바지 위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불룩 솟아오른 상태다. 조금 장난쳐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고무 줄로 된 바지를 꼭 붙잡고 있는 도엽의 손을 가볍게 떼내곤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겨버렸다. “안 한다고 했잖아, 미친놈아! 사기꾼! 변강쇠같은 놈!” “조용히 좀 해, 좀도둑.” 버둥거리는 다리를 잡아 무릎으로 타누르고 위로 치솟은 녀석의 것을 손으로 잡았다. “흐앙……하지마아…….” 너무 어린 나이부터 남자를 알아서인지 녀석의 신음소리는 여자의 그것처럼 무척이나 교태스럽고 색스러운 느낌이다. 아직도 뒤가 아픈지 눈끝 에 매달린 눈물방울은 또 어떻고. 울려보고 싶은 얼굴이랄까. 짓궂은 마음에 자그마한 녀석의 분신을 손으로 희롱하기 시작했다. 정액이 찔끔거리는 귀두를 손가락으로 자극하고 사타구니 안쪽을 간질이며 자극하다 입안에 덥썩 물어버리자 ‘합’하는 소리를 내더니 입을 손 으로 틀어막는다. 오럴은 처음인가. 하긴, 하룻밤 돈 주고 사는 남창정도에게 오럴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나 역시도 그런 마음이 전혀 없진 않다. 오히려, 형을 강하게 믿을 때도 형에게조차 비위 상한다고 안 해줬던 오럴을 이 녀석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내 자신이 스스 로 놀라울 따름이다. 겨우 이 주 전에 알게 된 녀석인데. 몇 십 명이 거쳐 갔을지도 모르는 더러운 몸인데. 하지만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꾸만 자극 하고 싶고 옆에 있으면 만지고 싶은 기분이다. 단순히 형을 자극하기 위해 안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손이 불쑥불쑥 녀석에게 향 하고 있다. “하앗……그만……응……할 것 같단……빨리 비켜…….” 아주 자지러지는 녀석의 말에 따라 입을 떼고 재빨리 티슈를 뭉쳐 귀두에 갖다대자 팟―하는 느낌과 함께 녀석이 정액을 분출하고 힘없이 쓰러진다. “하아……하아…….” 땀이 배어나와 이마에 드리워진 젖은 머리칼이 색스럽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나 선 것 같애.” 귓가에 대고 작게 말하자 품안에 든 녀석이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녀석을 껴안으며 웃음을 터뜨리는 찰나 방문이 쾅 소리나게 열리며 굳어진 얼굴의 형이 방문을 짚고 섰다. “밥 먹게 나와.” “벌써 갔다 왔어? 난 한 시간 정도 걸릴 줄 알고 그 사이에 한 판 하려고 했더니.” 느물거리며 말해도 굳어진 표정인 채 대답이 없다. “콘돔은 사 왔어?” 주섬주섬 봉지 안에 든 것을 정리하던 형이 내 얼굴에다 대고 뭔가를 휙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걸 받아봤더니 콘돔 셋트다. “이거 몇 개 든 거야? 꽤 많네? 맞다, 이마트에선 뭐든지 큰 셋트로만 팔더라. 이거 부지런히 쓰면 한 달안에 다 쓸 수 있으려나? 저녁 먹고 빨리 자자고 해야지. 저녁은 뭐야?” “……엄마가 오늘 밥 먹고 들어온다고 해서 찜닭 사왔어. 너 아까 닭 먹고 싶다고 했잖아.” “당면 적게 넣으라고 했어? 요즘은 약아서 고기는 반 마리 뿐이고 당면만 많더라. 안 맵게 해달라고도 했어?” “그래.” 형이 동치미를 김치 냉장고에서 꺼내거나 말거나 도엽이를 불러서 뜨끈뜨끈한 김을 내고 있는 찜닭의 다리살을 입안에 물려줬다. “맛있어?” “뜨거어―.” 입안에 다릿살을 가득 넣은 녀석이 혀짧은 소리를 내며 우물우물 턱을 놀린다. “아햐―하아―.” “왜 그래?” “혀 씹었나봐. 아야…….” 입안에서 혀를 굴리며 아픈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입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혀를 만졌다. 돌기 부분이 움푹한 것이 제법 세게 깨문 것 같다. “조심 좀 하지. 덤벙대긴.” 입안을 휘젓던 손가락을 빼내자 벌건 핏물과 함께 길게 타액이 늘어진다. 침과 피가 묻은 손가락을 가져와 내 입안에 넣고 빨자 도엽의 얼굴이 확 벌개졌다. “미친 놈아, 더러운 것도 몰라?” “더한 것도 입안에 넣어봤는데 뭐 어때.” “한 가지만 말해두는데―.” 형이 숟가락을 놀리며 말했다. “니 그 유치한 도발에 말려들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으니 괜히 헛짓하지 마라.” 유치하다고? 내가 형 앞에서 보여줬던 그 도발행위들이 유치하다고. 그래서 자기는 절대 도발당하지 않으니 헛짓은 그만 하라고. 주먹이 꽉 쥐어진다. 알고 있다. 형이란 인간은 나같은 범인보다 훨씬 두뇌가 뛰어나고 스케일이 커서 도저히 흠집을 내기는 무리라는 것을. 이 정도는 형에게 고양이 의 앙탈 정도밖에 비쳐지지 않는 거겠지. 뭔가 형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만한 그런 것 없을까.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내 등을 확 치며 도엽이 앙칼진 목소리를 낸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아―. 뭐라고 했는데?” “내 말이 개 짖는 소리로 들리지?” “미안. 잘못했어. 말해 봐.” 주객전도. 딱 이 말이 어울릴 만한 상황이지만 도엽의 뾰루퉁한 얼굴을 보니 부드러운 말과 함께 손이 뻗어나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도엽은 내 가슴에 안겨오며 작게 말했다. “내일부터 학교 가봐야 한다고. 결석일수 너무 많아서 짤리기 직전이야.” “참, 너 학교 가야지.” 내가 학교를 안 다니기 때문인지 녀석이 하교가야 한다는 걸 완전히 잊고 말았다. 이 녀석이 우리 집에서 묵는 이유가 동생과 자신의 등록금 때문이었는데. “저기, 그래서 말인데 내일 내 등록금 주면 안 돼? 담임이 내 얼굴만 보면 등록금 내라고 성화라서. 그것 때문에도 학교 안 나갔거든.” “알았어. 대신에 학교 끝나면 딴 데 새지 말고 바로 와야 돼. 알았지?” “응.” 품안에 쏙 들어오는 녀석의 머리를 만지작거린다. 단 며칠동안 같이 있었을 뿐인데도 이제 학교 다니느라 낮에는 못 볼 걸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엿같다. “학교에서 딴 놈한테 한눈 팔면 죽을 줄 알아.” 완전히 의처증 남편 같은 말투에 스스로가 경악한다. 내가 왜 이러냐. 정말 미치기라도 했냐. 보낼 땐 어떻게 보냈는데 보내고 나니 내내 손이 허전한다. 계집애보다도 작고 매끈매끈한 몸을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왠지 안정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빨리 학교에서 와줬으면 좋겠다. 오늘 돈을 준 것도 불안하고. 저대로 튀어버리면 찾을 길도 없는데.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고모댁 의 전화번호는 몇 번인지 물어놀 걸. 한없이 떠오르는 불길한 상상들에 머리를 벅벅 긁으며 테레비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려대는데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엄마가 행주에 손을 닦고는 조용히 내 앞에 앉았다. “병권아, 엄마하고 얘기 좀 할래?” 얘기 할 거 있으면 그냥 하면 되지 또 무슨 얘길 하려고 뜸을 들이는 건지. “말해.” “어제 아버지랑 밤에 얘기해 봤는데 너 말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데로 유학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하니?” 유학? 갑작스러운 말에 들고 있던 리모콘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갑자기 유학이라니.” 유학 같은 건 공부 잘 하는 우리 형 같은 사람들이나 가는 거 아니었나? 외국 어느 대학에서 나 같은 꼴통을 받아준다고. “생각해 보니까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선 다니기 힘들 것 같고. 그렇다고 지방으로 보내기도 그렇고. 국내 학교에 적응 못할 것 같으면 가정교사 보다 이왕이면 외국으로 가서 공부를 좀 해보는 건 어떻겠니?” 강간이나 당하고 멀쩡한 애들 서넛 병신 만든 데다 남자애까지 집안으로 끌어들여서. 골치 아픈 아들 외국으로 내쫒으려는 건 아니고? 그러나 빤히 들여다본 엄마의 눈엔 내 걱정 외에 별다른 사심이 없어보였다. “모르겠어. 갑자기 외국이라니 좀 당황스럽네.” 엄마의 손이 내 손을 가볍게 만졌다. “그래. 금방 결정하라는 거 아니니까 시간을 두고 잘 생각해봐. 정 가기 싫다 싶으면 가정교사랑 공부해서 대학가면 되니까.” “응…….” “저녁 때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카레 라이스랑 달걀찜이랑 칼치구이…….” “엄마 시장 갔다 올게. 집 보고 있어.” 엄마가 밖에 나간 뒤 번쩍번쩍거리는 텔레비 영상을 건성으로 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유학……유학이라. 말이 유학이지 한 번 가면 적어도 육 년 정도는 거기서 살아야 하는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위기에 처해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정을 붙일만한 사람 하나 없는 그런 곳에서. 아니,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엄마 말대로 서울 시내 고등학교에서는 더 이상 학교 다니기가 힘드니까.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더 나을지도―. 이것 저것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올 무렵 정말 내 말대로 총알같이 온 건지 회색 교복을 입은 도엽이 녀석이 쪼르르 뛰어와서 내 허리에 팔을 감는다. 사내아이답지 않게 앙탈과 애교가 많은 녀석이다. “벌써 갔다 왔어?” “뭐야, 빨리 오라더니. 그냥 딴데서 놀다 올걸 그랬나?” “가긴 어딜 가.”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녀석의 옷을 잡고 장난조로 슬쩍 배를 툭 쳤는데 녀석이 헉 하는 헛바람을 삼키며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흑…….” “뭐야, 왜 그래?” 그냥 살짝 건드린 것치곤 과잉반응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배를 감싸 쥐고 끙끙 앓는 녀석의 표정이 장난이 아니다. “노도엽, 고개 들어.” 배를 움켜쥔 녀석의 손을 빼내고 옷을 올려본 순간 눈앞이 정말 번쩍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교복 속에 감춰져 있던 녀석의 몸은 형형색색으로 물이 들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입가에도 부은 흔적이 역력하다. “씨발―. 어떤 새끼야. 어떤 놈이 이런 거야?”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잖아.” 황급히 옷을 내리고 방으로 도망치려는 녀석의 손목을 붙들었다. “대단한 게 아니야, 이게? 온몸이 피멍으로 도배를 했구만. 어떻게 된 거야. 학교에서 이지메당하는 거야?” “그냥 실수로 어깨 부딪쳤다가 조금 맞았어. 흔히 있는 일이잖아, 남학교에선. 맞아줬으니까 앞으론 별일 없을 거야.” 씨발. 생각 같아선 도엽이 때린 새끼들 전부 찾아서 딱 도엽이 맞은 만큼만 패주고 싶은데 어째서인지 도엽이 놈의 눈빛이 절박해 어쩔 수가 없다. “왜 널 때린 놈을 감싸줘? 혹시 너 그놈이랑 썸씽 있었냐? 잤었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세상 남자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냐?” “너가……워낙 귀여우니까…….” 내가 말해놓고도 얼굴이 확 붉어진다. “미친 새끼.” “그러길래 왜 맞고 들어와. 도대체 몇 대나 맞은 거야, 엉? 이것 봐. 여긴 칼로―. 안 돼. 도저히 안 되겠다. 엄마 아는 사람 중에 교육청…….” 거기까지 말하다 갑자기 부딪혀온 도엽의 입술에 말이 막히고 말았다. “나 지금 굉장히 하고 싶거든…….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우선 나부터 좀 안아줘.” 나란 놈도 정말 한심한 놈이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오랜 기간 형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배신으로 되돌아온 감정 에 미친 듯이 발광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는 노도엽에 열광해 이제 형의 모습 같은 건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완전히 가장자리로 밀려나 버렸다고나 할까. 가벼운 놈이라고 욕한다고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도엽이란 마약에 빠져버려 겨우 몇 시간 못 만났을 뿐인데도 안절부절 하다가 결국 이렇게 학교 앞까지 찾아오고 말았으니까. 학교까지 찾아오면 죽여 버리겠다고 꼬맹이 녀석이 협박했지만 그래도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다. 전에 학교 다닐 때 교문 앞에 계집애가 찾아오거나 사내놈들이 계집애 학교까지 찾아가 둘이 손을 잡고 하교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었던 기억이 있지만 지금 은 뭐랄까. 누가 보든 말든 나도 도엽이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보고 싶은 기분. 중간에 멋진 까페가 있으면 차도 마시고. 아니, 사내놈이니까 오 락실이나 게임방 같은 걸 더 좋아하겠지. 그것도 좋겠다. 뭔가에 내기를 걸고 둘이 미친 듯이 게임을 하는 거다. 피식거리며 혼자 교문에 기대있자니 수업이 다 끝나 밖으로 빠져나오던 사내놈들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사이에서 유난히 조그마하고 얼굴이 하얀 도엽을 찾으려 열심히 눈을 굴렸지만 녀석의 얼굴은 보이질 않는다. 청소라도 하나? 주번이라면 좀 늦을 수도 있지. 그러나 주머니 에서 꺼내본 휴대폰의 시간은 사십분이 지나있다. 이렇게 늦어지면 전화라도 해야 정상인데. 휴대폰은 꺼져있고 나오지도 않고. 무슨 일인가가 생긴 게 아닐까. 끔찍한 상상에 눈앞이 아찔해진다. 잠잠하기만 한 핸드폰을 손에 쥐고 안절부절하다 마침 교문 밖으로 빠져나오는 녀석을 붙 잡았다. “말 좀 묻겠는데. 혹시 이 학년에 노도엽이라고 알아?” 노도엽이란 이름 흔하지 않으니까 아마 전교에서 한 명 뿐이겠지. “아, 걔. 너네 반 아니야?” “그 하얗고 쪼매난 녀석?” 다행히도 아는 녀석들인 것 같다. “그 애 집에 갔어?” “아까 전에 나간 것 같던데요. 경기고 형들이 찾아와서 같이 나갔는데. 어제도 그 형들 찾아 왔었잖아. 너도 봤지? 경기고의―.” 경기고―. 앞문을 놔두고 뒷문으로―. 연쇄적으로 녀석의 온몸을 장식하고 있던 피멍들이 떠올랐다. “어디로 간다는 얘긴 없었어?” “모르겠는데요. 별로 친한 사이 아니라서.” “그래, 알았다. 고마워.”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고 녀석들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가자 그만 다리가 풀려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대체 어디 있는 거냐, 노도엽. 말 좀 해봐. 괜찮은 거지? 무사한 거지? 응? 멍하니 흙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있는데 손에 꼭 쥔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을 한다. 흠칫 놀라 핸드폰을 반사적으로 바닥에 떨어뜨렸다가 재빨리 주워들어 플립을 열었다. “도엽이냐?” “…….” “여보세요” “저기……여기 여관인데요.” 아무 생각 없이 전화속의 상대방이 불러준 대로 달려가 도착한 곳은 도엽의 학교에서 가까운 허름한 여관방. 내게 전화를 한 사람은 여관 주인의 딸이었던 것 같다. 사내애들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와 한 시간 동안만 방을 빌렸다가 전부 가버렸다고. 방을 치우러 들어간 곳엔 도엽이가 피투 성이가 되어 죽은 듯 누워있었다고. 교복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폰에 내 번호가 입력되어 있어 내게 전화를 한 거라고. 설명을 들으며 난 피범 벅이 되어 사경을 헤매는 도엽을 등에 업었다.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향하며 내내 도엽을 끌어안고 있는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도엽아― 도엽아―. 정신 좀 차려봐, 응? 내가 이렇게 빌게. 눈 좀 떠봐. 내가 한 번이라도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을까. 이렇게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을까. 다행히 도엽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집단구타, 그리고 집단강간에 의한 항문열상과 과다한 출혈로 의식을 잃고 있었을 뿐. 하지만 더 늦게 발견됐더라면 지금쯤 녀석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자 미칠 것만 같다. 수술을 받고 일인실로 옮겨져 파리한 얼굴로 잠이 든 도엽을 내내 지키다 열 두 시가 넘어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불편한 병원침대 때문에 깊이 잠이 들지 못하고 뒤척이려는 찰나―. “병권아.” 귓가에 들리는 형의 목소리.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킬 뻔했으나 겨우 억누르고 잠든 척했다. ‘경기고의 교복을 입은 형들―.’ ‘그래, 꼭 좀 알아봐줘. 이름은 노…….’ 팔을 베고 옆으로 누운 자세로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으려니 형이 도엽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느껴진다. “걸레 같은 새끼.”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작게 실눈을 떴다. “―――!!!” 형이―형이 도엽의 머리에서 빼낸 베개로 의식을 잃고 있는 도엽의 얼굴을 꾹 누르고 있다. 기이한 미소를 띄운 악마 같은 얼굴로. 어떻게―어떻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벌떡 일어나 형을 덮쳤다. 우당탕―. 형을 바닥에 쓰러뜨린 뒤 그 위에 올라타 정신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개새끼, 넌 인간도 아니야. 씨발놈―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정신없이 내게 두들겨 맞으면서 형은 한 번도 반항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범벅이 된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날 바라봤다. “역시 깨어있을 줄 알았어.” “뭐?” “너에 대한 거라면 부모님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머리카락 한 올까지.” “미친 새끼!! 넌 미쳤어!!” “알아. 너한테 미쳤어. 그래서 너와 내 사이 걸리적거리게 하는 건 뭐든지 치워버릴 거야. 서영준 그 새끼도, 노도엽이도 설령 부모님이라고 해도. 알겠어? 그러니까 괜한 사람 피 보는 거 보기 싫으면 나한테로 돌아와.” 잊고 있었다. 홍병주란 인간의 실체는 이러 거란 것을. 나에게 부드럽단 이유로 완전히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서 날 원하고 독점하고 싶어 하는 상대는 이런 소름끼치는 인간인 것이다. “웃기지 마.” 숨을 고르고 형을 노려봤다. “꿈도 꾸지 마, 십새끼야. 세 명 아니라 삼 백 명의 좆이 내 뒤에 쑤셔져도 니가 내민 손 절대 안 잡아. 너 같은 새끼한텐 내가 너무 과분하니까. 너한텐 딱 서영준이가 어울려.” 퇫! 소름 끼칠 정도로 반듯한 그 얼굴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미련을 담아 침을 뱉어주었다. “유학 가겠어요. 미국이든 카나다든 어디라도 상관없어요.” 홍병주란 괴물의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행복할 것 같다. “잘 생각했다. 학교 알아볼 테니 천천히 준비하도록 해라.”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병주랑 같이? 아니면 엄마랑?” “도엽이랑 같이 갈게요.” “…….” “…….” 부모님의 얼굴은 당혹으로, 형의 얼굴은 일그러지다 못해 금방이라도 그 위선의 가면을 던져버릴 듯 위태로워 보였다. “도엽이랑?” “반드시 같이 가야겠어요. 허락해 주세요.” “좀―생각을 해보자.” “생각하고 자시고, 지금 당장 결정해 주세요. 안 된다고 하시면 저―.” “알았다, 알았으니까―.” “몇 년이나?” 아버지와 내 실랑이를 참고 지켜보던 놈이 입을 열었다. “대학 마치고 되도록이면 직장도 그곳에서 얻었으면 해. 적어도 십년 이상.” “후우―십년―? 십년이라고―?” 말을 되풀이하는 놈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미국이 역시 좋을까요? 요즘은 캐나다로도 많이 가던데. 언니도 벤쿠버에 살고 있고.” “병권이 캐나다 비자 만료가 언제지?” 부모님이 상의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날 놈이 붙잡았다. “나랑 얘기 좀 해.” “무슨 얘기? 난 너랑 할 얘기 없는데.” “말로 할 때 따라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내 팔을 확 나꿔채서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문을 잠궈 버린다. 그리고 출구를 봉쇄하려는 듯 문 앞에 떡하니 막아섰다. “엄마도 아빠도 다 밖에 계셔. 여기서 이러는 것 위험하잖아.” “말했잖아. 너와 내 사이 방해한다면 부모님이라도 죽여버리겠다고.” “지랄하네. 니가 엄마 아빠를 죽인다고? 넌 절대 못 해.” 말을 무시하고 나가려는 내 팔을 형이 강하게 움켜쥔다. 손목에 가해지는 강한 악력에 손목이 부러지다 못해 뼈가 완전히 으스러질 것만 같다. “이것……놓고……얘기해…….” 신음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을 간신히 억누르고 잇새로 말했지만 형은 손목을 놓지 않는다. “아프냐? 아프겠지 물론. 장근호도 후영 형도 십 분을 넘기지 않은 손이니까.” 뭐―? “놀랬어? 너가 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게 너무 많아. 그게 뭘까? 응? 더 가르쳐 줘?” 부여잡은 손목을 휙 들어올리더니 뒤쪽으로 확 꺾어버린다. “허억―.” 뼈가 어긋나는 그 엄청난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을 내뱉으며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미……친 새끼…….”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침이 줄줄 새어나오는 것 같다. “십년? 나한테서 완전히 도망가시겠다―. 누가 그렇게 놔둘 것 같아?” 형의 손이 벨트를 풀고 바지 속으로 들어와 내 것을 움켜잡는다. “흐윽―.” “그딴 걸레새끼한테 줄 것 같으면 예전에 널 죽여 버렸어. 넌 처음부터 내꺼야. 이 도도한 눈빛도 차가운 말을 내뱉는 입술도 전부 다 내꺼야.” “이 손 떼……아아―!” 노련한 솜씨로 내 것을 주무르고 있지만 어깨의 통증이 너무 강한 탓에 아무런 쾌감도 느낄 수가 없다. “아아악……아아…….” “안 갈 거지? 안 간다고 말해.” 속삭임과 함께 놈의 손이 내 몸 여기저기를 더듬는다. “이것 놔……이것 놓으라고, 개자식아!” 성한 팔로 형을 떨쳐버리곤 주머니 속에 숨겨둔 칼을 꺼내 그대로 목을 그어버렸다. “―――!!!” 제법 깊게 그어졌는지 손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 느껴진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정도로 니가 싫어. 알겠어? 아님 더 보여줘?!” 피 묻은 칼을 들어 다시 목의 상처에 가져다 대려하자 놈이 번개같이 달려들어 내 손목을 움켜잡아 칼을 떨궈 버린다. “이제 그만해. 충분히 알았으니까.” 바닥에 내던져진 피 묻은 칼을 내려다보며 놈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넌 정말 잔인한 놈이야. 나보다도 더 잔인한 놈이야.” 그런 게 아니야. 난 이미 지옥의 끝을 한 번 봤기 때문에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거야. 그것 뿐이라고.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 그 아이에게도 절대 손대지 않겠다. 맹세해. 그 대신―한 가지만 내 부탁 들어주라.” “뭔데.” “외국 가지 마. 서울에 있어. 적어도 너랑 같은 하늘 아래에 있게는 해줘. 그 정돈 해줄 수 있지?” “나도 하나만 들어줘.” “뭐든지. 너가 원하는 거면 뭐든지.” “나 눈앞에서 영원히 꺼져.” “…….”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계속해서 묵묵히 피 묻은 칼을 보던 형이 이윽고 고개를 들어 날 봤다. 흰자와 검은자가 유난히 또렷해 눈동자마저도 인상적 인 그 눈이 오늘은 붉게 충혈 돼 있다. “그래. 니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니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줄게. 이 순간부터 영원히 니 앞에서 사라져줄게. 그렇지만 이거 하나만 기억해 둬라. 만에 하나,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땐 필사적으로 도망쳐라. 내가 널 죽여 버리기 전에.” “…….” 그 말을 끝으로 놈은 방에서 뛰쳐나갔다. 현관문이 쾅 소리 나게 닫기는 소리가 들리고도 한참동안 얼어붙은 듯이 놈의 방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던 놈이 의식불명이 되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것은 다음날 한밤중이었다. 놈은 혈중 알콜 농도 영점영칠의 만취상태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마주 오는 트럭과 충돌했으며 코카인을 다량 흡입한 상태였다. 밤중에 걸려온 전화로 엄마는 그야말로 실신상 태. 아버지는 마침 야밤에 촬영을 나간 상태였다. 엄마를 겨우 진정시켜 병원으로 향하며 나는 다시 한 번 지옥을 맛봐야만 했다. 예상치 못한 형 의 사고는 부유하고 행복해 보이던 우리 가족을 일순간에 시커먼 진창으로 내몰기에 충분했다. ---------------------------------------------------------------------------- 다른 작가들은 거창하고 멋진 인사말을 쓰더라마는 뭐라고 써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뻘쭘하고 쪽팔리니까 바로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레드럼이 The games 2round를 개인지로 낸답니다. 광고내고 나서부터 개인지에만 수록될 내용을 빈둥거리면서 쓰고 싶어서 예약기간은 무지 길다네요. -_- 가격 : 10,000원 (우편료 별도, 1권 2500원, 2권 이상 3500원) 표지 코팅, 날개, 종이 미색, 신국판, 320~350p 내외 지금 이 시간부터~4월 19일까지 든든한 민족은행 농협-_- 150077-52-105253 허진주 redrum66@hanmail.net으로 메일 주시면 자동응답메일이 발송됩니다. 지난번처럼 돈만 입금하시고 메일 안 주시는 분들은 부디 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시는 분들은 부디 자신이 한 권을 소장하시고 친구 두 분에게 구입을 권하시고 다시 그 친구 네 명에게 여덟 명을 꼬셔주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__) <2부> “이거 아버님한테 꼭 전해드려. 생신 축하한다는 말씀도 드리고. 너무 보잘 것 없는 거라서 실망하실까 겁나네.” “보잘 것 없는 거라니. 어제 몇 시간이나 돌아다녀놓고.” 침대에 누워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도엽의 머리카락을 쓱쓱 쓰다듬었다. “생신인데 안 왔다고 미운털 박히는 거 아닐까?” “이런 얼굴 해갖고 인사드리면 더 화낼 걸.” “하필 이런 날 아프고 지랄이야.” “너 몸도 안 좋은데 나도 안 가면 안 될까?” “안 가기만 해봐. 어떻게 되는지.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확인해보고 안 갔으면 한 달은 나한테 손 못 댈 줄 알아.” “가면 되잖아, 가면. 약 받아놨으니까 꼭 챙겨먹고. 밥 해놨으니까 거르지 말고. 올 때 뭐 사올까? 먹고 싶은 거 없어?” “으음, 하겐다즈 하드 아이스크림. 아몬드랑 초콜렛 많이 들어간 걸로.” “감기 걸린 주제에 무슨 하드야, 귤 사올 테니 그거나 먹어.” “하드 먹고 싶어, 하드! 안 사오면 문 안 열어줄 거야.” “후, 알았어.” 열 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된 도엽의 뺨에 입을 맞추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마자 얇은 옷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소름이 돋아난다. 시간상으로는 가을이라지만 요즘은 봄 가을이란 계절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 얼마 안 있으면 또다시 혹독한 겨울이 오겠지. 추운 걸 유난히 싫어하는 편이라 저절로 한숨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이제는 거우감이 없어진 담배를 피워 물고 투스카니에 시동을 자연스레 걸고 있는 내가 새삼스레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이 있은 지도 삼년이 다 되가는 것 같다. 그 삼 년의 세월동안 내가 살아온 십 몇 년의 세월보다 더 많은 일이 있었지. 형은 마약 중독으로 재활원에 몇 년 있다 최근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아버지와 엄마는 모든 게 서로의 탓이라며 수도 없이 다투고 별거, 이혼, 재결합을 되풀이하다 요즘은 프랜차이즈 사업을 동업하고 있다고. 행복했던 가정이 깨져버리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 후영 형이 내게 지나가듯이 말했었던'댓가는 자신이 알아서 받아가겠다'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놈은 우리 가정을 질투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우리 가정을 순식간에 깨버린 후 형의 미래를 말 그대로 '접수'해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대학생에, 아버지의 사업을 배우기 위해 열심 인 놈이 실제로는 뒤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연예 기획사와 조직 폭력단의 연계. 조폭의 자질구레한 일을 도맡았던 고교 때의 일진 놈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되버린 형이 갈 수 있는 길. 뭐, 나완 상관없는 일이지. 형이 조폭이 되든 강도가 되든.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벨을 꾹 눌렀다. 어쨌거나 나는 그런대로 잘 살고 있으니까. “엄마, 나!” 열려진 문 너머의 아버지와 엄마는 안 본 사이에 무척 늙어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탤런트 부부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고 비참해 보이는 얼굴들. 내가 오기 직전까지 또 싸우고 있었는지 부엌과 거실에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피곤해서 아직 청소를 못 했어.”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중얼거리며 잔뜩 흐트러진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가 안쓰럽기까지 하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려요. 이건 제가 드리는 거고 이건 도엽이가 드리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도엽인 왜 안 왔냐.” “가을 감기에 걸렸는지 완전히 앓아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해요.” “오랜만에 얼굴 좀 보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혀를 차자 가스렌지에 불을 붙이던 엄마가 쏘아붙인다. “아픈 앨 억지로 불러다가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 하여간 저 인간은 자기 생각밖에 안 해.” “내가 뭘 어쨌다고 지랄이야? 그러는 당신은 내가 어제 동창 때문에 늦는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아, 좀 일찍 전화해주면 손에 못이 박히나? 식은 밥 되면 그거 누가 다 먹는데!” “씨발―.” 막 아버지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는 찰나, 잽싸게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녁 뭐예요? 맛있는 거 했어요?” “오징어 무침이랑 부추전이랑 갈비 좀 구워봤다. 병주가 부추전 좋아하잖아. 근데 얘가 좀 늦네?” 접시에 담겨있던 오징어 무침을 손으로 주워 먹다 멈칫했다. “형도 와요?” “넌 형 보기 싫으냐? 그런 형이라서? 그럼 안 된다. 다른 사람 다 그래도 넌 그럼 안 돼.” “아니, 그래서가 아니라…….” 삼 년 전, 내 눈앞에서 사라져달란 내 말에 형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되살아난다. ‘만에 하나,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땐 필사적으로 도망쳐라. 내가 널 죽여 버리기 전에.’ 그 이유에서는 아니었지만 재활원에서 나왔다는 말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는데. 어떻게 변했을까. 그 얼굴, 목소리, 몸짓. 다 내가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해버렸을까. 아니면 아직도 그대로인걸까. ‘형, 그 말 진심이었어? 정말 날 보면 죽일 거야?’ 머릿속의 물음에 스스로 답을 내리려는 찰나, 초인종 소리가 들리며 엄마가 후다닥 뛰어갔다. “병준가 보네. 야, 왜 이렇게 늦었어.” “회사에 일이 있어서요.” “그놈의 회사는 맨날 잔업만 하냐. 아이고, 입가에는 또 왜 이래. 누구한테 맞았냐?” “좀 긁힌 거예요.”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리는 형의 목소리. 고등학교 시절보다 조금 더 깊이가 있어진 부드러운 미성의 음성에 가슴이 박동치기 시작한다. “병권이도 왔어.” “병권이?” 형의 앞에서 웃어야 할까, 찡그려야 할까.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홍병권, 넌 형한테 인사도 안 하냐?” 엄마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려있던 자세에서 몸을 바로 해 형을 쳐다봤다. “형, 오랜만이야. 몸은 건강하고?” 억지로 끌어올린 입기가 경련을 일으킬 것 같지만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는 형은 말이 없다. “…….” “…….” “뭐하냐. 배 안 고파? 밥 먹자, 밥.” 엄마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며 형이 내 곁을 스쳐지나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여전히……하네.” 뭐? 밥을 코로 먹었는지 귀로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신경은 온통 맞은편에 앉은 형에게만 솔려있어 젓가락에 집은 걸 줄줄 흘리기 일쑤였다. 그에 반해 형은 입가에 누군가에게 맞아서 부어있는 상처를 제외하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너무 여자같이 선이 고왔던 얼굴은 몇 년 새 제법 남자다워져 있고 나와 비슷비슷했던 키도 훨씬 커버렸다. 젓가락질을 하는 손도 제법 두툼해 보인다. 요즘 재활원 밥 잘 나오는 모양이네. 입가에 괜히 비웃음을 흘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더 안 먹고?” “됐어. 배불러. 아버지, 저 이제 가볼게요. 도엽이도 걱정되고.” “그래. 어여 가봐라. 내년이면 며느리 될 사람인데.” 아버지의 얼굴에 작게 미소가 떠오른다. 아들의 남자연인인데도 아버지도 엄마도 도엽이를 무척 좋아하신다.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한 아들이 노도엽이란 사람을 만난 뒤로 다시 공부를 하고 꽤 괜찮은 대학에도 들어가게 됐으니까. 이번에 도엽이 수능만 잘 치루면 둘이 무슨 일이 있어도 호주나 미국으로 보내 결혼을 시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을 하신다. “며느리?” 내내 조용히 있던 형이 아버지의 말에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 도엽이랑 나, 미국에서 결혼하려고.” “잘 됐네.” 미소를 띠우며 내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는 형을 보자 맥이 탁 풀린다. “정말 축하한다. 나도 제수씨 보는 거냐.” 뭔가―찜찜한 기분이다. 내 미래에 가장 걸림돌일 형이 축하를 해줬으니 기분이 좋아야 되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 같은 기분.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찝찝한 기분으로 차를 세워둔 지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막 문을 열려는 찰나―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수건인지 뭔지로 거세게 입이 틀어막혀졌다. “읍…….” 몸을 뒤로 돌리려고 했지만 엄청난 힘에 의해 주차장 어두운 구석에 처박혔다. 대체 누구야. 강도인가?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지만 잘못해서 휘두르는 칼에 맞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상상에 목 뒤가 선뜻해진다. “그래, 얌전히 있어, 얌전히.” “―――!!!” “정말 많이 변했구나. 키도 자랐고, 제법 사내다운 티가 나.” 언제 내 뒤를 따라온 거지? 뒤를 쫓긴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조폭 됐다더니 정말 완전 프로급 솜씨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형의 손은 내 목덜미부터 등줄기까지 느른하게 쓸어내리고 있다. “으읍…….” “가만히 있어. 다치기 싫으면.” 한순간 몸을 옆으로 비틀자 내 어깨를 곽 죄인 형의 손에 힘이 더해지며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변한다. 뜸을 들이던 손이 어느 새 남방 단추를 풀고 안으로 들어와 추위에 꼿꼿이 선 유두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여전하네.” 몸은 차가운 벽에 완전히 밀착되어 있고 뒤에는 형의 몸이 붙어있어 샌드위치처럼 옴쭉달싹도 못 하게 껴진 상태. 입에는 수건 같은 것이 꽉 들어차 소리조차 낼 수 없다. ‘만에 하나,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땐 필사적으로 도망쳐라. 내가 널 죽여 버리기 전에.’ 그 말은 괜히 한 말이 아니었어? 정말 날 죽일 셈이야, 형? 유두를 만지던 형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바지버클을 푸른다. “여기도 여전할까?” 형, 제발. 몸부림치며 애원하는 내 마음을 무시한 채 팬티 사이로 손이 쑥 들어온다. “노도엽이었던가? 그 녀석이 잘해줘? 나만큼 널 만족시켜줘?” 형의 손이 내 분신을 쥐고 주물럭거리자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나를 형이 어깨를 옥죄며 강제로 일으켜 세운다. 단 한 팔로만. 정말 굉장한 힘이다. 형은 대체 자신의 어느 부분까지 날 속인 걸까. “읍읍…….” 바지와 팬티를 발목까지 내려버리는 형의 손에 놀라 소리를 내며 빠져나가려 악을 썼지만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온몸이 축 늘어진다. “으으으…….” “여기도 여전히 좋아. 뒤는 나 이후로 한 번도 한 적 없지? 굉장히―조여.” 온몸을 칼로 난자하는 듯한 고통에 저절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마치 처녀같이.” 난폭하게 뒤를 쑤셔대며 내 귀를 혀로 핥는다. “그때 널 그렇게 만든 놈들 어떻게 됐는지 알아?” 알 리가 없잖아. 그보다 제발―. “병원에서 몰래 빼내 아무도 모르는 지하실로 데려간 다음―. 온몸을 칼로 살짝 살짝 그어주는 거야. 그런 다음 사나흘 정도 굶긴 도사견에 던져줬 지. 반 고깃덩어리 되서 피비린내 풍기는 놈들 보더니 완전 눈이 뒤집혀서 흥분하던데. 목줄기를 물어뜯으면 단숨에 절명이니까 목만은 보호해 줬지. 자신의 몸이 개밥이 되는 걸 봐야 하니까. 상상해 봐.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들이 오줌을 지리면서 손발을 뜯기는 장면을―.” 형이 지껄이는 소리 따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분신을 아플 정도로 주무르며 뒤로는 정신없이 쑤셔대는 그 격통에 눈물만 줄줄 흘리며 빨리 끝내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 “아파? 그러기에 왜 내 말을 안 들어. 내 눈에 띄면 위험하댔잖아. 내 경고를 들었어야지.” 낮게 읊조리며 벽에 처박고 있는 내 고개를 옆으로 돌려 뺨으로 턱으로 줄줄 흐르는 눈물을 혀로 핥았다. 감겨진 듯 떠진 듯 몽롱한 시선 속으로 열기를 가득 담은 형의 눈이 강하게 박혀온다. ---------------------------------------------------------------------------- 다른 작가들은 거창하고 멋진 인사말을 쓰더라마는 뭐라고 써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뻘쭘하고 쪽팔리니까 바로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레드럼이 The games 2round를 개인지로 낸답니다. 광고내고 나서부터 개인지에만 수록될 내용을 빈둥거리면서 쓰고 싶어서 예약기간은 무지 길다네요. -_- 가격 : 10,000원 (우편료 별도, 1권 2500원, 2권 이상 3500원) 표지 코팅, 날개, 종이 미색, 신국판, 320~350p 내외 지금 이 시간부터~4월 19일까지 든든한 민족은행 농협-_- 150077-52-105253 허진주 redrum66@hanmail.net으로 메일 주시면 자동응답메일이 발송됩니다. 지난번처럼 돈만 입금하시고 메일 안 주시는 분들은 부디 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시는 분들은 부디 자신이 한 권을 소장하시고 친구 두 분에게 구입을 권하시고 다시 그 친구 네 명에게 여덟 명을 꼬셔주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__)